어떤 조직이든 ‘사람이 모자란다’는 말을 하기 마련이다. 인재를 귀하게 여기는 조직일수록 수장은 분주히 움직인다. 생존을 위한 글로벌 전쟁이 치열한 대기업이라면 최고경영자나 총수는 더더욱 인재 확보에 열을 올린다.
 
대기업 중에 특별한 새내기 맞이를 하는 곳이 있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에서 정몽구 현대ㆍ기아차 회장,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 등으로 이어지는 범현대家가 그곳이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해마다 여름이면 신입사원들과 동해 백사장을 뒹굴었다. 황소 같은 힘으로 30~40년 차이가 나는 아들뻘의 신입사원을 백사장에 메다꽂기도 했고, 그들에게 질 때는 ‘나이 탓인가’라며 막걸리사발을 기울이곤 했다.
 
정몽구 회장은 신입사원 연수에 참석해 미래형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한다. 최근에는 아들인 정의선 부회장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정몽윤 회장은 신입사원과 그 부모님들을 함께 배려하는 스타일이다. 그는 최근 수년간 매해 신입사원 모임의 마지막 일정에 식사자리를 마련해 새내기 사원들에게 직접 배지를 달아주고 있다.
 
◇경포대 백사장에서 샅바 맨 회장님
 
신입사원과 부대끼는 것을 범현대가에서 가장 좋아했던 이는 역시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었다.
매해 여름 7~8월경에는 정주영 회장이 강원도 경포대에서 열린 현대그룹 신입사원 수련회에 참석하고 2~3일 뒤 귀경한다는 동정 기사가 실리곤 했다. 심지어 1990년 8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해 오일쇼크의 우려가 있을 때조차 고 정 회장은 강릉에 있었고, 사태 발발 뒤 본사로 급거 귀경하기도 했다. 그 어떤 일정도 신입사원 만나는 일에 우선하지 않았던 것.
 
당시 고 정 회장은 매년 여름 한차례씩 동해안 모래밭에서 신입사원들과 어울려 씨름으로 힘을 겨뤘다. 소나기가 거세게 내리는 가운데서도 샅바를 잡았고 백사장을 뛰었다. 배구, 달리기시합 등도 빠지지 않았다. 일벌레인 그에게는 황금 같은 동해안의 휴가도 회사 업무의 연장선상이었던 셈이다.
 
자신의 휴가를 대신해 동해안을 찾아 신입사원들을 만나면 남은 시간만큼 일을 더 할 수 있고 가족들에게는 바다에 다녀오지 않았냐며 얼버무릴 수 있었던 것.
 
신입사원들에게라면 마이크를 잡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밤에는 항상 숙면할 준비를 갖추고 잠자리에 듭니다. 날이 밝을 때 일을 즐겁고 또 힘차게 해치워야겠다고 생각하는 겁니다.”(83년 7월29일, 동해관광호텔 신입사원 수련대회). 정주영다운 훈시였고 그다운 화법이었다.
 
신입사원들과 맞붙는 자리는 고 정 회장에게 스스로의 생기와 열정을 시험해 보는 자리기도 했다. 그는 새내기 사원들과의 사원에서 언제나 배지기 같은 큰 기술로 승부를 냈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에 장사가 없는지 1980년대 중반에 그는 씨름경기에서 어느 사원한테 한번 진적이 있었다. 당시 고 정 회장 입에서는 ‘나도 이제 늙었나 보다’는 탄식이 모처럼 나왔다는 후문이다.
 
해변으로의 일정이 그에게는 때때로 친교의 자리기도 했다. 신입사원들뿐만 아니라 문인들도 자주 바닷가로 모셨다. 원로 작가인 송지영, 모윤숙, 김남조, 김동리, 조경희씨 등은 고 정 회장과 함께 문학 얘기, 인생 얘기를 나누던 교우들이었다.
 
살을 부비던 가족들만큼이나 신입사원들을 아꼈던 고 정 회장의 행보는 정몽구 현대ㆍ기아차 회장,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 등에게로 이어진다.
 

◇정몽구 회장 "글로벌 메이커 주역은 새내기"
 
새내기 사원들과의 교감 등 스킨십을 중시하는 태도는 정몽윤 회장이 아버지를 더 닮았다. 정몽윤 회장은 배지를 달아주기도 하고, 꼭 신입사원들과는 아니지만 자신의 취미인 야구경기도 직원들과 함께 한다.
 
반면 신입사원들을 만나는 시기는 정몽구 회장이 아버지와 더 비슷하다. 정몽구 회장은 매해 8월 전후에 현대ㆍ기아차그룹 하계수련대회를 열고 가급적 직접 참석한다. 장소만 동해에서 남해(제주 해비치호텔(콘도))로 달라졌을 뿐이다.
 
정몽구 회장은 "기업경쟁력은 무엇보다 사람에 달려 있다. 치열한 세계 자동차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려면 미래지향적인 21세기형 인재를 많이 확보해야 한다"고 매해 강조하곤 했다. 몇해 전부터는 정 회장과 신입사원들과의 만남에는 아들인 정의선 부회장도 동석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정 부회장은 "어렸을 때 할아버지와 씨름을 하는 등 스킨십을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았고, 할아버지의 얘기 한마디 한마디를 되새기곤 했다"고 말하곤 한다.
 
정몽구 회장은 GM, 포드, 토요타 등 글로벌 메이커에 육박할 정도로 성장한 현대ㆍ기아차의 성공을 사원들의 공으로 돌리며 신입사원들의 동참도 주문한다. ▲도전과 개척의 벤처정신 ▲현대ㆍ기아인으로서 자부심과 사명감 ▲차세대 자동차산업 주역이 된다는 각오 등은 현대차 신입사원들의 기본자세로 자주 언급된다.
 
◇정몽윤 회장 "소중한 자녀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입사원 교육과정을 모두 마친 58명의 현대해상 새내기 사원들은 지난 2월2일 특별한 가족모임 행사를 가졌다. 정몽윤 회장이 자녀를 훌륭하게 성장시켜 회사에 보내준 부모님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정 회장은 이 자리에서 “기업의 일원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직장생활에서는 창조적인 의지와 도전 정신으로 변화의 흐름을 주도하는 능동적인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새내기 사원들이 능력을 발휘해 회사의 핵심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신입사원의 가장 돋보이는 자질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순수한 열정과 포기하지 않는 패기와 젊음, 자기 자신에 대한 무한한 믿음이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있는 가장 큰 힘”이라고도 했다.
 
청년 실업자 100만명 시대에 부모님들은 부모님들대로, 새내기 사원은 사원들대로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사원들은 부모님들께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명함을 전달하는 순서를 가졌고, 사원들은 정 회장이 직접 달아주는 배지를 받게 된 것.
 
신입사원 유주연 씨의 어머니 김혜자 씨는 행사장에서 “어리게만 여겼던 자식이 어려운 경제환경에도 좋은 회사에 취업해 너무나 대견하다”며 “최고경영자가 감사편지와 꽃다발로 부모에게 합격 소식을 알려주고 호텔에서의 행사도 열어줘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신입사원 교육과정에 보험이론 등이 끼어있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지리산 정상 등반, 연탄배달 봉사활동, 현대와 현대해상 정신에 대한 교육 등 다양한 체험활동을 하도록 한 것은 범현대가의 전통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 자신이 그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정 회장의 말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