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가에서 롯데는 먹깨비로 통한다. 연이은 인수로 덩치를 키우는 모습이 마치 슬라이머의 식성과 비슷하다는 이유에서다. 가장 큰 인수합병은 단연 GS의 유통부분이다.
롯데는 지난 2월9일 롯데쇼핑을 통해 GS리테일이 보유하고 있는 백화점과 마트 부문을 인수했다. 계약금액은 1조34000억원.
이로써 롯데는 백화점 점포 30개를 눈앞에 두게 됐다. 새로 롯데 간판을 달게 된 GS스퀘어 3개 점(부천점, 구리점, 안산점)에 오는 8월 오픈 예정인 서울 청량리점을 합치면 점포수 30개를 달성하게 된다. 이는 당초 스케쥴을 2년 이상 앞당기는 것이다. 이 정도면 2, 3위의 추격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 현대는 11개, 신세계는 8개 점포를 보유하고 있다.
백화점 부분의 올해 예상 매출액도 당초보다 6000억원이 많은 10조6000억원으로 상향조정됐다. 시장점유율은 42~43%에서 45%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롯데는 대형마트 점포수도 선두권과의 격차를 좁혔다. 선두권인 이마트와 홈플러스는 점포수가 각각 127개와 114개다. 롯데마트는 70개로 한참 떨어지는데 이번에 GS마트 14개 점포를 인수함에 따라 40여개 차로 따라붙었다. 해외에서 운영하는 점포까지 포함하면 단숨에 1위로 치고 올라간다. 롯데마트는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에 100여개의 점포망을 구축하고 있다.
◆끊이지 않는 유통업계 빅매치
수년 사이 유통업계서는 정말 '빅매치'가 많았다. 롯데의 아성이라고 할 수 있는 부산에서 신세계가 세계 최대의 유통센터인 해운대 센텀시티를 오픈하면서 전쟁의 서곡을 울렸다. 좀처럼 외부 노출이 없는 신격호 회장이 직접 둘러봤을 정도로 롯데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최근에는 할인마트의 최저가 경쟁이 계속되고 있다. '단돈 10원이라도 경쟁사보다 싸게 팔겠다'는 문구로 대변되는 이마트와 홈플러스, 롯데마트의 '최저가 지존' 전쟁이다. 이들은 하루마다 가격을 바꾸면서 최저가 인식 확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롯데와 신세계의 파주 아울렛 부지 싸움 역시 '파주대첩'으로 명명하는데 전혀 손색이 없다. 롯데가 장기임대차계약을 맺은 부지를 신세계가 매입한 것. 상호 비방까지 치달았지만 결국 롯데가 한 발 물러서며 상황이 정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롯데는 올해 1월 파주출판산업문화단지에 아울렛 부지를 확보하며 2차 파주대전을 준비하고 있다.
유통 전반을 놓고 봤을 때 유통 3사의 지위는 롯데의 우세다. 그러나 최근 신세계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신세계는 이마트가 여전히 마트부분 1위를 지키고 있는데다 공격적인 투자로 롯데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가 영토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다.
◆ 롯데를 이끄는 신동빈 파워
최근 들어 롯데그룹은 그간의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이미지와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GS리테일과의 스퀘어 마트 인수 외에도 올 초에 굵직한 M&A를 차례로 성사시켰다.
편의점 ‘바이더웨이’를 2740억원에 인수했고, 그동안 난항을 겪었던 파주 아울렛 부지를 최종 확정했다.
롯데그룹의 인수합병을 주도하는 인물은 신동빈 부회장이다. 신격호 회장의 차남인 신 부회장이 롯데그룹을 사실상 진두지휘 하면서 적극적인 M&A 사냥을 하고 있는 것. 그동안 신 부회장은 '마이너스 신'이라는 오명을 갖고 있었다. 대표이사로 있던 코리아세븐과 롯데닷컴에서 실적이 부진해서였다. 그런 그가 최근 공격적으로 거함 롯데를 이끌고 있다.
신동빈 파워는 두산주류 인수 때 두드러졌다. 2008년 말 롯데칠성음료가 두산주류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될 때 신 부회장의 적극적인 추진력이 결정적이었다. 신 부회장은 2009년 두산주류를 5030억원에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그해 3월 롯데칠성음료의 해태음료 안성공장 인수(300억원), 10월 롯데제과의 기린 인수(799억원) 등으로 영토를 늘렸다.
지난해 12월에는 중국의 유통업체 타임즈를 7300억원에 인수하며 세계시장에서 롯데 파워를 과시한 것도 신동빈 부회장이 롯데를 이끌고 난 뒤 달라진 변화다.
신 부회장의 공격 경영은 그의 역량을 뒷받침하는 롯데의 막강한 현금보유능력에서 나온다. 신 부회장은 미국 콜롬비아 대학 MBA 출신에다 일본 노무라증권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뛰어난 금융감각을 구사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 게다가 롯데그룹 계열사의 평균부채비율은 50%대에 그친다. 신 부회장에게 날개가 있는 셈이다.
◆ 롯데 품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좋을까?
“그래서 얼마준대?”, “1억원은 주지 않겠어?”
설을 앞두고 롯데와의 M&A가 결정된 지난 10일, GS백화점과 마트 직원들의 관심은 위로보상금에 쏠려 있었다. 물론 GS리테일 측은 갑작스런 결정이라 아무것도 확인된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통상 유통업계에서 인수합병이 결정되면 자의와 무관하게 배지를 바꿔다는 직원들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피인수기업이 격려금을 지급하는 것이 관례다. 업계에서는 GS리테일이 롯데로 자리를 옮기는 직원들에게 개인당 약 8000만원 안팎의 위로보상금이 지급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GS임직원들은 마냥 좋아할 수도 없는 분위기다. M&A 이후 벌어지는 조직개편에서 자리보전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 위기의식이 높아지는 쪽은 주로 간부급 직원이다.
임원이 아닌 직원들도 계약 당시 고용승계가 합의된 상황이지만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이른바 ‘뺑뺑이’로 불리는 지방 순환근무로 중복된 인력 조정을 정리하곤 하기 때문이다. 일부 직원들은 ‘곧 연고지와 무관한 남쪽 지방으로 발령날 것’이라며 마음을 비운 상태다. GS백화점은 점포가 모두 수도권에 있는 반면 롯데백화점은 전국에 분포돼 있다.
롯데의 뺑뺑이 '악명'은 과거 미도파 인수에서 엿볼 수 있다. 롯데는 고용을 유지하는 대신 미도파 노조 간부를 롯데쇼핑 소속으로 발령내는 등 일방적인 인사발령으로 큰 반발을 샀다.
롯데 측은 지방 순환보직이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다고 말한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3년 순환 근무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롯데 직원 가운데는 15번이나 옮긴 사람도 있다"면서 "과거 미도파 인수 후에도 상호 교류가 이뤄졌고 인사의 불평등은 없었다"고 말했다.
고용보장도 걱정거리다. 우려하는 쪽은 고용승계 원칙에도 불구하고 롯데가 미도파를 인수하면서 원칙을 자의적으로 해석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당시 미도파 노조는 전원 고용보장을 약속하고 일부를 비정규직으로 전환했다는 점을 약속을 어겼다고 주장한 반면, 롯데 측은 다른 매장과의 형평성에 비춰볼 때 비슷한 수준에서의 고용이라고 맞선 바 있다.
롯데가 GS백화점과 유통의 직원들을 어떻게 끌어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