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하여 생각하고(思) 헤아리는(量) 마음이 한자로 ‘사량(思量)’인데 그것을 오늘날 우리는 ‘사랑’으로 간단히 말하려고 한다.

아무튼 나는 ‘마음재주’로 읽고 싶다. ‘심술(心術)’을 말이다. 그런데 사전적 의미는 좋지 않다. 이른바 ‘온당(穩當)하지 않고 고집(固執)스러운 마음, 또는 남이 잘못되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보’를 뜻한다고 설명하고 있어서다. 어쨌든 ‘마음보’는 쓰기 나름이다. ‘쓰임새’가 어떠하냐에 따라서 결과는 천양지차로 다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음재주’로 읽으려고 하는 거다.

'심술시정(心術始正)'

한양대 정민 교수가 지은 <다산어록청상(茶山語錄靑賞>(푸르메刊)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정민 교수는 ‘마음가짐’으로 뜻을 풀이했다. 여기서 ‘가짐’이란 자기 것으로 손이나 몸에 지니는 ‘소유’를 뜻한다. 그러니 경제학에서 말하는 ‘자산효과’와 다를 바 없다. 마음보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마음이 부정적이기도 하고 혹은 긍정적으로 가치가 얼마든지 변하기 때문이다.

박석무·정해염이 편역한 다산 정약용 선생의 <다산문학선집>(현대실학사刊)에는 ‘부용당기(芙蓉堂記)’가 등장한다. 이를 소개한다.

황해도 관찰사 이공이 부용당에서 잔치를 벌였는데, 수령으로서 이곳에 온 사람이 10여 명이나 되었다. (중략) 내가(정약용을 말한다) 잔치 자리에 도착하자 이공이 술을 권하며 말하기를 “이곳은 선화당(관찰사가 공식 업무를 보는 공간)과는 같지 않으니, 오늘은 흉금을 터놓고 즐기십시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말하기를 “참으로 좋은 말입니다. 비록 그러나 감사가 수령의 잘잘못을 살피는 것이 이 부용당이 선화당(宣化堂)보다 낫다고 생각되는데, 공은 그 까닭을 아십니까?”라고 하였더니, 이 공이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수령이 선화당에 오게 되면 단정한 걸음걸이와 엄숙한 얼굴빛을 하고 말을 삼가며 신분에 따라 예의를 공손히 차리니, 한 사람도 훌륭한 관리가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곳처럼 연꽃 향기가 코를 찌르고 버들빛이 눈에 비치며, 죽순과 고기가 상에 그득하게 놓여 있으며, 기녀들이 많이 모여 있으며, 순주로 창자를 적시며, 회나 구운 고기로 배를 채우는 장소에서는 상관은 얼굴빛을 좋게 꾸미고 환대하고 농담하기에 거침이 없습니다. 이때에 떠들고 웃으면서 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를 살펴보면 그 잡스러움을 알 수 있으니, 그는 반드시 유능하나 가볍게 법을 범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자기 몸을 낮추고 아첨하며 상관을 찬송하고 앙모하여 스스로 아부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를 살펴보면 그 비루함을 알 수 있으니, 그는 반드시 면전에서는 아첨하나 백성들을 속이는 일이 많을 것입니다. (중략) 이와 같으니, 수령(부하)을 살핌에 있어 이곳(부용당)이 선화당보다 낫지 않습니까?”

이처럼 다산 선생은 아랫사람이 인재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다고 관찰사에게 무릇 조언한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사장의 집무실에서 임원회의를 하는 것보다는 룸살롱에서 임원을 살피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이야기다. 즉 장소를 바꿔서 사람을 대하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편견이 없이 사람을 제대로 판별할 수 있다는 심오한 뜻이 행간에 가득 담겨져 있다.


다시 부용당기 나머지를 읽도록 하자.

이공이 이렇게 말하였다.
“참 옳습니다. 비록 그러나 감사(상관)의 일도 수령(부하)이 살핍니다. 나는 공의 말씀을 듣고 스스로 살피려 합니다. 어느 겨를에 다른 사람을 살피리까.”

나는 마침내 묻고 대답한 말을 기록하여 부용당기(芙蓉堂記)라 한다.

결론은 이렇다. 다산은 틈만 나면 기록(述)했다. 즉 술(述)을 중심으로 한 ‘술술(酒術)’로 학문과 독서 그리고 처세와 정치 등에 임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시와 문학과 역사학 등에서도 많은 뛰어난 글을 우리에게 남길 수가 있었으니 재주가 보통이 아니었던 뛰어난 인물인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여기서 나는 황해도 관찰사 이공(조선 영-정조시대에 활약한 문신으로 대사간까지 역임한 이의준(李義駿. 1738-1798)을 말한다)에 눈을 크게 뜨고 주목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마음재주’가 보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참 옳습니다. 비록 그러나 감사(상관)의 일도 수령(부하)이 살핍니다. 나는 공의 말씀을 듣고 스스로 살피려 합니다. 어느 겨를에 다른 사람을 살피리까.”라고 대답하는 대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선화당과 부용당을 아주 적절하게 이용할 줄 아는 용의주도하고 세심한 인물로 그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부하도 상사를 살핀다. 사장이 임원을 살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임원이 사장을 살필 수도 있기 때문에 최고경영자(CEO)라면 무릇 자기의 마음을 ‘스스로 살피는’ 재주부터 가지고 볼 일이다. 다음에 ‘다른 사람을 살피는 마음’을 갖춤이 물론이다. 그래야지 ‘술술술 풀리는 경영자’로서 자리가 흔들리지 않고 세워질 것이다. 

관찰사의 역할처럼 경영자에게도 해야 할 역할이란 게 있다. 유능한 사람, 능력이나 경험이 많고 뛰어난 인재는 보통 경영자 주변으로 다가서지도 머물려고 하지도 않는다. ‘보통 경영자’는 ‘사장실’에서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하지만 뛰어난 경영자는 ‘술집’에서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이는 마음가짐 때문이다. 고객과 현장이 있는 장소로 다가서려는 경영자는 기업을 반석 위에 올려놓을 것이다. 하지만 고객과 현장을 외면하고 ‘사장실’에만 안주하려는 경영자는 기업을 바람 위에 올려놓을 게 뻔하다.

한양대 정민 교수는 <다산어록청상>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그대로 옮긴다.

“마음이 하는 일을 낯빛이 닮아간다. 얼굴은 얼의 꼴, 즉 마음의 모습이다. 공부하는 학생의 얼굴은 해맑다. 매일 듣고 보는 글의 표정을 닮았다. 어찌하면 돈을 많이 벌까하는 궁리만 하는 장사치는 그 검은 속을 닮아 얼굴조차 시커멓다. 꼴 먹이고 소똥을 치우는 목동은 모습도 덩달아 지저분하다. 노름꾼의 눈동자는 잠시도 쉬지 않고 희번덕거린다. 해맑던 아이의 표정 위에 어느덧 장사치의 시커먼 속과 노름꾼의 교활한 눈빛이 깃든다. 사람은 생긴 대로 노는 것이 아니다. 노는 대로 생긴다. 상은 자꾸 변한다. 사람은 나이 들면서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여기서 나는 ‘노는 대로’에 주목한다. 마음도 논다.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음공부가 ‘재주’다. 곧 ‘심술’인 거다. 심술이 바른지 아닌지는 ‘자기’가 먼저 살필 일이다. 어느 겨를에 다른 사람의 심술부터 살피려고 하시는가. 다른 사람도 내 심술을 살피니 마땅히 스스로를 살피려고 날이면 날마다 ‘성실(誠實)’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지 사람들이 ‘나’를 따르고 인생과 비즈니스가 ‘술술술 풀리기’ 때문이다. 하여 자기부터 사랑할 일이다. 그래서다. 자기의 마음을 생각하지 못하고 헤아리지 못하면서 상대를 대하면 무시당하는 거다. 그런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