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에 5남3녀를 뒀던 이 여사는 슬하 형제간에 우애가 두터워 복 많은 어머니였다. 하지만 만년에는 자식들의 우애가 삐그덕거렸다. 남편이 씨를 뿌리고 자식들이 일궈낸 기업들이 흔들리는 것도 지켜봐야 했다.
이 여사가 떠나고 위기와 극복으로 상징될 그룹의 새로운 시기는 아들과 손자들이 맡고 있다. 손자들간의 우애가 조금씩 복원되는 조짐이 보인다고 한다. 의좋은 형제에서 순식간에 의상한 형제가 된 금호아시아나가(家)의 우애 변천사를 들여다봤다.
◇父→ 장남→차남→3남…우애가 빛났던 그 시절
금호아시아나의 박인천 창업주는 지난 1984년 별세했다. 삼양타이어(현재 금호타이어), 광주여객(현재 금호고속), 금호실업 등을 통해 금호를 그룹의 외양으로 키워놓은 후였다. 박 창업주 별세 뒤에 그룹 회장을 이은 것인 장남인 박성용 씨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20여년간 금호가 형제간 우애의 원칙은 빛을 보기 시작했다.
예일대 박사출신으로 대통령 비서실 경제비서관과 경제기획원 장관 보좌관,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등 관계와 학계에 두루 몸을 담았던 박성용 회장은 금호그룹의 본격적인 토대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룹 내에서 제2민항 선정작업에서 발군의 능력을 발휘해 아시아나항공 설립 허가를 이끌어냈다.
평소 소탈한 성격으로 알려진 박성용 회장은 1993년부터 동생인 정구 씨에게 회장자리를 넘기겠다는 생각을 여러 차례 피력했고 실제 1996년 그룹 창사 50주년을 맞는 해에 그룹 경영권을 넘겨주며 선친의 뜻에 따랐다.
형에 이어 그룹 경영권을 이어받은 박정구 3대 회장은 외형성장과 구조조정이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난제를 훌륭히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운송ㆍ화학 중심이었던 그룹 사업을 다각화했다. 아주생명(현 금호생명)을 인수해 보험업에 진출하는가 하면 전국 각지에 콘도를 개장하며 관광ㆍ레저사업을 확대했다.
형인 박성용 회장에 이어 중국시장에 관심을 갖고 중국시장 확대를 추진한 것도 박정구 회장의 업적이다.
하지만 박정구 회장은 형제 중에 가장 단명했다. 화려했던 업적을 남겨둔 채 박정구 회장은 형이 자신에게 회장직을 물려준 65세라는 나이에 폐암으로 사망하고 경영권은 삼남인 박삼구 현 회장에게 ‘평화적’으로 이양된다.
박삼구 회장은 결단력과 추진력을 겸비했다는 긍정적 평가와 목표를 정하면 고집을 꺾지 않는다는 양론적 평가를 받는다. 그는 신성장동력으로 M&A를 선택하고 각각 해당(건설, 물류)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업인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에 성공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는 M&A를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빚을 많이 졌던 금호아시아나 전반을 어렵게 했다.
박삼구 회장의 책임론도 자연스레 제기됐다. 불똥은 동생(박찬구 회장)에게도 튀었다. 형(박삼구 회장)이 주도했지만 대우건설, 대한통운 인수 등은 외부적으로는 박찬구 회장도 측면 지원한 것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그룹이 삐걱거리자 형제간 분란도 생겼다. 대우건설 인수에 따른 유동성 위기가 씨앗이었고 그룹 전반은 위태로워졌다.
◇M&A 독배에 그룹과 형제간도 삐걱…사촌들은?
박삼구 회장은 지난해 7월 그룹 회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나면서 동생(박찬구 회장)을 보직 해임시켜 동반 퇴진으로 몰고 갔다. 자진 사퇴와 해임은 현격한 차이였다. 그룹 일가의 동의 없이 갑작스레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늘린 박찬구 회장의 돌발행동이 문제가 된 것이다.
당시 동반 퇴진으로 가닥을 잡았던 박삼구 회장은 기자간담회(2009년 7월28일)에서 “선대 회장님들, 즉 작고한 두 분 형님과 후임 논의가 있었는데, 나의 유고 때는 내부 경영인 또는 외부의 덕망 있는 인사가 이끌어간다는 합의가 있었고, 그 유지를 받든 것”이라고 얘기했다. 박찬구 회장은 반발했고 법정 공방을 예고하기도 했다. 기저에는 형(박삼구 회장)에 대한 박찬구 회장의 서운함도 작용했다.
박삼구(오른쪽부터)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등 유족들이 빈소에 나란히 서서 조문객을 맞고 있다.
하지만 그룹의 위기와 채권단의 주도로 외형상 평화가 찾아왔다. 채권단은 일단 한시적이긴 하지만 박찬구 회장 쪽에 금호석유화학 등 유화부문을, 박삼구 회장 쪽에 금호타이어 경영을 맡기고 있다. 3세 경영인도 각각 아버지 또는 숙부의 편에서 개별 회사에서 재직 중이다. 박삼구 회장의 아들인 세창 씨는 금호타이어, 박정구 회장의 아들 철완 씨와 박찬구 회장의 아들 준경 씨는 각각 금호석유화학 쪽에서 일하고 있다.
채권단은 이 과정에서 새로운 제안과 권유안을 내놓았다. 그룹이 어려워진데 형제간의 불화가 자리했던 만큼 사촌간에는 화합하라고 비공식적으로 주문한 것.
채권단 고위 관계자는 금호가 3세들과 최근 간단한 식사자리를 했다고 소개했다. 한사람당 1만원도 안 되는 백반과 소주뿐이었지만 30대 초중반의 청년들답게 맛있게 들었고 자리가 무르익자 ‘아버지들과는 달리 우애깊게 지내라’고 주문했다는 것.
그는 “3세들 중 몇명은 계열사 공장이 있는 여수나 울산 같은 곳에 내려가 현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겠노라고 약속했다”며 어려워진 그룹 상황에서 사촌형제간의 화합은 회생의 또 다른 조건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과거 박인천 창업주의 경영원칙은 네가지로 압축된다. 분란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남자에게만 지분을 상속하고 ▲5남 가운데 관계에 진출한 종구(4남)를 제외한 성용(작고), 정구(작고), 삼구, 찬구가 합의해 회장을 선임한다 ▲의결사항이 있을 경우 합의를 원칙으로 하되 불가 시 다수결로 하며 ▲이 때에도 결정이 안날 경우 손윗사람의 의견에 따른다는 것이 핵심이다. 남자 상속 등 몇가지는 조금은 낡은 조항들이다.
우애 경영의 대표였던 금호가의 전통이 허물어진 가운데 사촌형제간에 새롭게 우애가 부활할지 주목된다. 할머니의 빈소에서 아들과 손자인 이들은 며칠 밤낮을 부대꼈다. 눈물도 함께 흘렸을 테고 시선을 맞췄어야 할 터다. 그리고 그들의 화합 결과는 회사와 직원, 채권단, 시장 모두의 관심을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