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의 드라마틱한 배신
외국인들은 4월까지 코스피시장에서만 11조2236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같은 기간 개인이 3조1926억원어치의 주식을 팔아 치웠고, 환매에 시달리고 있는 기관은 5조9486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사는 사람이 있어야 주가가 오를 수 있으니 사실상 올해 주식시장 상승은 외국인이 끌어 올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외국인에 의한, 외국인을 위한 시장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러던 외국인이 5월 들어 배신(?)했다. 5월 첫거래일에 2311억원어치를 순매도하더니 5일 연속 순매도 행진을 벌였다. 외국인의 5일 연속 순매도는 올 들어 처음이다. 게다가 7일에는 하루 매도 규모로는 사상 최대인 1조2459억원의 순매도를 기록했다. 외국인이 5월 들어 순매도한 규모는 2조8853억원(13일 기준)에 달한다. 5월 이래봐야 8거래일 지났을 뿐인데 올해 순매수한 금액의 약 4분의 1을 팔아 치운 셈이다.
특히 외국인의 순매도는 하이닉스반도체,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현대모비스, 현대차 등 시가총액이 크고 그동안 시장의 주도주였던 IT와 자동차에 집중돼 코스피지수에 미치는 영향력도 컸다.
신한금융투자는 "국내 증시에서 최근 외국인 투자가들의 매도 공세는 사실상 가장 직접적이고 위협적인 변수"라며 "국내 주식형펀드의 환매가 크게 줄어들기는 했으나 신규자금의 유입은 매우 제한적인 상황이고 연기금 및 정부기관자금의 안전판 역할은 수조원 단위의 외국인 매도세가 장기화될 경우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만약 지난해 FTSE선진국지수 편입을 계기로 유입된 유럽계 자금(영국계 4.6조원) 등 외국인 자금이 추가로 빠져나간다면 국내 증시는 추가적인 충격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어떤 자금의 이탈인가
외국인 매도는 유럽계 자금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증권가는 풀이하고 있다. 유럽의 재정 위기로 인해 우선 유럽계 자금들이 위험자산을 줄이고 있는 과정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금융위원회도 최근 남유럽위기와 관련해 "국내 증시에서 최근 유럽계 자금이 많이 빠져나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오태동 토러스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올해 초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가 부각됐을 때도 유럽계 자금이 이탈했었다"며 "이후 3~4월 폭발적으로 외국인 매수가 증가했던 것은 이 자금들의 복귀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코스피시장에서 대규모로 순매수했던 지난 1월 영국계 자금은 9437억원, 스위스 2897억원, 네덜란드 1335억원 등의 순매도를 기록했다. 2월에도 영국계 자금은 1조498억원, 네덜란드 4243억원, 프랑스 1203억원, 독일은 884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오 팀장은 미국계 자금은 전체적으로 아시아시장에서 현금비중을 늘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현지에서 펀드 환매가 증가하기 시작했고 펀드의 이머징마켓 내 현금비중이 3.1%까지 줄어들어 현금비중을 확대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외국인의 최근 모습이 '셀 코리아'는 아니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외국인의 매도가 우리 증시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대만, 인도 등 주변 신흥국 증시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점은 한국 비중 축소가 아니라 '주식 비중 축소'라는 설명이다.
박승진 삼성증권 연구원은 "주식을 매도하는 동안에도 한국 국채에 대한 외국인의 매수 기조가 지속됐다는 점은 한국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들은 언제 돌아올까
관건은 외국인의 매도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그리고 그들은 언제 돌아올 것인지다. 환매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관의 적극적인 매수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급락한 시기에 선별적으로 집행되는 연기금도 안전판 이상의 역할을 바라기는 어렵다. 결국 외국인이 돌아와야 우리 증시의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은 지금 우리 증시가 안고 있는 수급의 한계임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증시 전문가들은 외국인들의 순매도는 점차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외국인 이탈을 일으킨 방아쇠가 결국 유럽의 재정위기 가능성이었고 유럽 위기는 한고비를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선엽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이번 남유럽발 위기가 잦아들어야 외국인 매물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며 "남유럽발 위기가 큰 고비를 넘김에 따라서 유럽계 자금의 매물은 감소하고 재차 진입 시기를 노릴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이번 유럽발 위기로 인해 외국인 투자자들의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강해졌겠지만 전반적인 위험회피 수준이 그리스 위기가 불거질 때보다 덜하고 EMBI+스프레드(이머징 마켓을 대표하는 채권 인덱스인 EMBI와 안전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선진국 채권 인덱스의 스프레드)가 하향세를 보이고 있어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는 점진적으로 강화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특히 위기 국면이 진정되고 나면 상대적으로 아시아시장의 안전성이 더욱 부각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금융위기 발발 이후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인 아시아 이머징 마켓은 그동안 여러 차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한 시장이라는 것이 증명돼 왔다는 분석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지난 13일 코스피시장에서 775억원 순매수로 돌아섰다. 4월까지 보면 적은 규모지만 이달 들어서는 최대 규모의 순매수였다. 특히 13일 하루동안 삼성전자, 현대차, KB금융, LG전자} 등 주도주들을 다시 주워 담는 모습이었다.
황빈아 교보증권 연구원은 "외국인 수급은 단기적으로는 뉴스플로우에 민감하게 움직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국내외 경기와 환율에 밀접하게 영향을 받는다"며 "풍부한 국내외 유동성으로 자금이 갈 곳이 없고 한국증시는 상대적 밸류에이션 메리트, 양호한 재정건전성이라는 강점이 있어 중장기적 외국인 순매수 기조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