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작품 <마라의 죽음>. 1793년에 7월13일 자신의 집에서 지롱파의 열혈 당원 샤를르트 코르데에 의해 살해당한 마라(Marat). 그는 공포정치로 무수한 정적을 만들어낸 혁명가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미술은 대중을 교육시키는 도구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던 신고전주의 작가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 Louis David 1748~1825)의 역작으로, 뛰어난 사실성을 바탕으로 '예술의 순수성'이란 가치에 도전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림 속 마라는 그리스도 순교자의 모습과 같이 처연하게 죽음을 맞이한 듯 묘사돼 있다. 극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 어둡게 표현된 배경에 실제 비례보다 길게 표현된 근육질의 팔은 그의 건강하고도 강인한 육체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하얀 천에 물든 선홍색 피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흔(Stigmata)을 암시하는 쇄골에 난 상처는 그의 죽음이 대의를 위한 숭고한 희생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실 속의 마라는 고질적인 피부병에 시달리는 다혈질의 성격을 가진 괴팍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비드는 마라의 죽음의 현장을 예술 작품으로 표현해, 미술을 아름다움의 표현이라는 기능 이외에도 시대적 상황을 전달하는 정치적 메시지의 수단으로 이용했다.
마라의 죽음을 고귀하고도 억울한 희생으로 묘사해서 민심의 동요를 얻어내려 한 다비드는 그림의 배경과 욕조의 색을 각기 달리해 3개의 작품(현재 이들은 루브르 미술관, 랭소 미술관, 브뤼셀 왕립 미술관에 각각 소장돼 있다)을 대중에게 선보였다.
그의 의도로 많은 사람들이 마라의 죽음에 대한 복수로 지롱파 탄압에 찬성표를 던지며 이를 통해 자코뱅당의 정치적 기반이 더욱 공고해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