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만나는 검은 대륙 Africa
태천만 아프리카문화원 원장
당신의 아프리카에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가 우리 곁에 있다. 월드컵 얘기가 아니다. 54개국 10억의 인구, 그리고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품은 아프리카의 속살을 가까이서 만나고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을 가꾸고 꾸려가는 사람 얘기다.
아프리카 하면 여전히 '부시맨의 땅', '문명화되지 않은 미개한 땅'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너른 땅 만큼 다양성을 갖고 있는 미완의 대륙이다. 그만큼 가능성도 풍부하다는 의미다.
스스로를 아프리카와 함께 사는 '아프리칸'으로 표현하는데 서슴치 않는 아프리카문화원 태천만 원장을 만나기 위해 경기도 포천을 찾았다. 그날은 마침 아프리카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할 만큼 뜨거운 태양이 내려쬐는 '6월의 여름'이었다.
경기도 포천시 소홀읍 야트막한 산에 포근하게 둘러싸인 아프리카문화원. 입구에서 기자 일행을 맞이해 준 사람은 늘씬한 몸매와 예쁜 미소를 가진 검은 피부의 직원들이었다. 이곳에서 '추장'으로 살아가는 태천만 관장.
그의 정규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다. 그는 채 머리가 굵기도 전인 10대부터 목수일을 시작해 늘 '배움의 한'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무슨 이유로, 또 어떻게 아프리카문화원을 만들 수 있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열네살 소년. 그는 공부할 형편이 되지 않아 양복 만드는 일이나 사진 찍는 기술을 배우고 싶었다. 그러나 이곳저곳을 전전하던 그는 결국 목공소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다. 어린 몸으로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어깨너머로 틈틈히 기술 배우기에 소홀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한시도 머릿속에서 지워본 적이 없었다고 회고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문 짜는 일부터 시작하게 된다. 그의 재능과 성실함을 눈여겨 보던 주인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장롱만들기, 문갑만들기 등 고난도의 목공일을 익히면서 확고한 자리를 잡아 나중엔 문화재에 관련된 일까지 능수능란하게 처리하는 '기술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목공 기술자에 만족하지 않았다. 또다른 도약을 위해 도전에 나선 것이다. 바로 건설회사 설립이 그것이다. 자신을 '사업'이라는 시험대에 올려놓은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건설현장을 누볐다. 흙투성이로 보낸 무수한 나날이었다. 결국 작은 건설회사를 종합건설회사로 키우는 열매를 맺게 된다.
탄탄한 인생을 열어가던 그에게 큰 변화가 시작된 건 1997년, 외환위기가 시작된 해였다. 그는 돌연 회사를 처분하고 134억을 들고 고향 포천으로 귀향한다. 그의 가슴에 깊게 자리한 '배움의 한' 때문이었다. '고향에 학교를 하나 세워야겠다'는 인생 목표이자 못다 이룬 배움에의 목마름을 채우려는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그러나 학교 설립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술고등학교를 세우려고 지금의 문화원이 위치한 곳에 부지를 마련했지만 인가가 나지 않았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유치원을 지으려고 했지만 결국 그마저도 여러가지 이유로 이루지 못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의미가 사라지려는 순간 그가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문화를 통한 나눔과 봉사였다.
유치원 마당에 놓을 조각을 조사하던 중 우연히 접하게 된 '아프리카 쇼나 조각'이 그를 깨운 것이다. 미개한 줄로만 알았던 아프리카에서 예술적이고 역동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마음이 흔들렸다. "아프리카를 알려야겠구나!"
그때부터 아프리카 대륙 곳곳을 누비며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는 척박한 풍토와 싸우며 책에서는 얻을 수 없는 수많은 지식을 몸으로 익힐 수 있었다. 서툰 언어 때문에 박물관에 전시할 박제 동물들을 개관 날짜에 맞춰 들여오지 못할 뻔도 했지만 그 마저도 소중한 경험이요 재산이 되었다.
개관을 앞두고 '배우지 못한 내가 문화원을 개관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 일까?'하는 생각에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전문가도 놀랄 정도의 '아프리카 전문가'가 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곤 혼자서 쑥쓰러운 미소를 짓곤 한단다.
그렇다면 아프리카문화원이 태천만 관장에게 있어 '배움의 한'을 풀기 위해 계획했던 학교를 포기할 만큼의 가치가 있었던 것일까?
그는 단호하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프리카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그들의 모든 것에서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유럽에서 느꼈던 '완벽한 아름다움'은 아프리카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지만 그 점이 바로 아프리카의 매력이라는 것이다. 건물이나 다리 등 모든 것이 화려한 예술적 감흥으로 충만한 유럽과는 달리 아프리카 예술품에는 투박하고 소박한 '모자람의 미학', '여백의 아름다움'이 숨어 있다. 그 여백에 자신만의 혼을 불어넣었을 때 비로소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또 아프리카 예술품에는 서구나 동양미술이 갖지 못한 역동성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아프리카 특유의 드러나지 않는 아름다움을 우리나라에 알리는 것도 학교 설립에 못지않은 '문화를 매개로 한 나눔과 봉사'라는 신념이 그를 깨우친 것이고, 그것이 곧 아프리카문화원을 열게 된 가장 큰 이유다.
태천만 관장은 또 아프리카문화원 개관을 계기로 아프리카 돕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유통기한 만료를 앞둔 의약품을 수거해 아프리카로 보내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1년에 폐기처분되는 의약품을 값으로 따지면 800억원 어치가 된다고 한다. 이렇게 폐기처분되는 의약품은 대부분 우리나라에서는 사라지거나 발병률이 낮은 질병(장티푸스, 폐렴)에 대비해 의무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유통기한이 지나기 전에 수거하여 의약품 부족으로 고통 받고 있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보낸다는 계획이다.
아프리카문화원을 통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아프리카 문화와 역사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알리고,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임에 틀립없다.
비록 그가 인생의 절반 이상을 연장과 함께 뒹굴고 땀흘리며 키워 왔던 숙원인 '학교 설립'은 포기했지만, 대신 '나눔'이라는 더 큰 가치로 나머지 삶을 보람과 희망으로 일구어가는 모습이 아프리카문화원의 단아한 건물 만큼이나 멋지고 값져 보였다.
문화원을 나서며 나지막히 혼잣소리를 해 본다. "당신의 아프리카에서 아름다운 사랑을 보았습니다"
미니인터뷰
"아프리카의 역동적 숨결을 느껴라"
△월드컵을 계기로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아프리카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조언을 하자면.
-보통 아프리카를 동/서/남/북/중앙 이렇게 5개 권역으로 나누는 경우가 많지만, 좀 더 쉽게 하자면 동남과 서북으로 나눌 수 있다. 동남 아프리카는 영어를 사용하고 현대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이번에 월드컵이 열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아프리카의 메카'라고 불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여행, 레저, 쇼핑을 즐기기를 원한다면 동남쪽으로 가는 것이 좋다.
반면에 서북 아프리카는 불어권으로써, 거친 느낌의 문화가 숨 쉬는 곳이다. 아프리카 토속 유물도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그 아프리카'의 진면목을 보고자 한다면 서북쪽으로 가야 한다.
글/한희준 대학생기자 [email protected]
사진/선승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