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적도 없는데 나는 그 길이 그리워졌다. 넉넉하게 팔을 벌리고 선 밤나무들이 푸른 숨결을 피우고, 안개비에 젖은 땅이 아스팔트길에 지친 발을 폭신하게 안아주는 그 길. 사진 속 충주 소태밤농장의 산책로는 가족 같았다. 본 적 없는 마음의 연인 같았다.
그런데 결국 나는 그 길을 걷지 못했다. 돈이 아니라 시간이 없었다.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자고 하는 일인데 일에 몰두하다보니 시간이 없고, 시간이 없어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
아쉬운 마음으로 소태밤농장 체험프로그램에 다녀온 동료가 찍어온 사진을 봤다. 노부모와 함께 허브족탕기에 발을 담근 부부, '보물'이 적힌 쪽지를 찾아든 흙 묻은 작은 손, 우산 하나 받치고 숲길을 걷는 모녀의 고즈넉한 뒤태가 미소를 불러냈다. 부러움과 함께.
올 여름부터 충주시 농민들은 농촌 체험 프로그램을 '1만 원'에 제공한다. 보쌈과 된장찌개로 차린 시골 점심상부터 장난감 만들기까지 서비스도 다양하다. 이런 서비스를 도시에서 받았다면 족히 3만~4만 원은 할 것이다. 원가도 못 버는 장사를 왜 할까.
이 프로그램 운영자는 충주 농촌체험연구회다. 충주땅에 발 묻고 사는 농민 30여 명과 예술인 10명이 뭉쳐 만든 모임이다. 이들은 자신을 '체험디자이너'라고 부른다. 체험을 통해 도시손님들에게 충주의 삶과 충주의 농산물을 만나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와유바유' 웹사이트를 만들어 도시민과 인터넷으로도 소통한다.
회원들의 사연을 들어봤다. 소태밤농장 주인 김의충 대표는 대를 이어 농사를 짓는 '세습 농민'이다. 19세부터 밤숲에서 움막생활을 하면서 맛있는 밤을 거두는 법을 연구했다. 4만 평 농장을 제초제 없이 가꿔냈다. 도시사람은 걸어서 돌아보기에도 넓은 땅에서 그는 풀을 베며 나무를 돌본다.
충주농민들은 도시소비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힘든 농사 일에도 불구하고 흙에 발 묻고 사는 보람, 농촌 삶의 아름다움, 친환경 농산물이 지닌 가격 이상의 가치를 이해받고 싶었을 것이다.
이들이 권하는 7월 코스는 탄금호다. 우륵이 가야금을 탔다던 호숫가다. 제 고향 가야에서 도망친 악사, 우륵은 신라 진흥왕의 명을 받고 신라사람들한테 가야금을 가르쳤다. 가야는 사라졌지만 가야금은 남았다. 우륵은 갔지만 탄금호 물결은 무연히 잔잔하다. 그래선가. 여행가들은 충주를 소개할 때 탄금호에서 출발하라고 권한다.
탄금대 아래엔 충주가 한반도의 정중앙에 자리했다 하여 이름 붙여진 '중앙탑'이 있고, 남한에 남은 유일한 고구려비석인 중원고구려비가 있다. 술 종합 박물관 '리쿼리움'은 세계 갖가지 술 문화를 소개한다. 이곳 야외탁자에선 탄금호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며 술 한잔 하는 풍류를 즐길 수 있다.
가족, 연인과 함께 즐기는 코스를 원한다면 7월31일 오후 3시부터 시작되는 '야(夜)한 축제' 1만 원 체험권을 살 수 있다. 조정 체험, 목초액탕, 블루베리 아이스크림이나 농가과일칵테일 만들기, 자전거 타기, 보물찾기 등 아기자기한 프로그램이 실속 있다. 연잎찰밥, 막걸리와 빈대떡 따위 시골먹거리도 준단다.
이번달 말엔 기어코 농장길을 걸으려 한다. '1만원짜리 여행 가자'고 좋은 사람들을 꼬셔내어 고즈넉한 산길을 함께 걷거나, 내친 김에 인근 수안보온천에서 몸을 풀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