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부모님들은 여름에 "입맛이 없다"고 상을 물리면 "밥맛으로라도 한술 뜨라"는 다소 억지스러운 말을 하곤 했다. 여름철 무더위를 견뎌내려면 섭생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휴가철을 맞아 너도나도 해외로 나갈 준비로 분주할 때 우리 땅 우리 강 우리 바다로 떠나는 여행은 알뜰하고 실속있는 피서로 제격이다. 한국관광공사가 7월에 가볼만한 여행지로 충북 영동, 강원 정선, 경북 안동, 전북 부안, 전남 담양 등 5곳을 추천했다. 산과 계곡, 그리고 맑은 물과 인심이 어우러진 천혜의 관광지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곳이 경관 못지 않게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 끄는 이유가 있다. 그 곳에 가야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 있기 때문이다.
음식은 아무리 훌륭한 재료와 솜씨를 가졌다 해도 제철에 산지에서 먹지 않으면 진정한 맛을 느끼지 못하는 오묘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땅의 정기를 받고 자란 농산물과 청정한 물의 기운을 머금은 비린 것들을 그닥 화려할 것 없는 토속적인 요리법으로 지지고 끓여내면 그것 자체로 어떤 진수성찬과도 바꿀 수 없는 맛이 되는 것이다.
휴가철을 이용해 평소 즐기던 서구화된 식사 패턴에서 벗어나 우리의 맛을 느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여름 한철을 거뜬하게 나고, 눈의 호사와 입의 호사를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여행지. 그 곳에서 맛볼 수 있는 다섯가지 요리 속으로 맛 여행을 떠나보자.
충북 영동 어죽 & 도리뱅뱅
영동은 물 맑은 금강 상류를 품고 있다. 금강은 사계절 풍성한 볼거리와 함께 먹거리를 제공해 준다. 특히 여름철 땀을 식혀주는 영동만의 맛이 있다. 예로부터 영동 사람들은 여름철이면 강가에 나와 천렵을 즐겼다. 맑고 시원한 물에 몸을 담그며 요란스럽게 물고기를 잡으면 강가에 솥단지를 걸어 두고 인근 밭에서 고추, 깻잎 등을 '툭툭' 꺾어 넣고 된장 고추장을 풀어 국수와 함께 푹 끓여 죽을 쑤었다. 또 갓 잡은 피라미를 프라이팬에 가지런히 두르고 갖은 양념을 넣은 뒤 지져 먹는 '도리뱅뱅'도 영동지방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별미다.
펄펄 끓는 죽 한사발에 막걸리 한잔으로 고단한 일상을 강물에 흘려 보내고, 쇠잔해진 기력을 채워주었다. 그렇게 즐겨 먹던 일상의 별미가 '어죽'이다. 어죽 한그릇엔 우리 아버지 세대의 추억과 순수가 담긴 소탈한 맛이 있다.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군청 문화공보과 043-740-3213. 가선식당 043-743-8665
강원 정선 올챙이국수
한국의 오지를 얘기할 때면 언제나 첫손으로 꼽던 강원도 정선. 평창에서 비행기재를 넘으면 정선 땅이다. 앞산과 뒷산을 빨랫줄로 이을 수 있을 만큼 첩첩산중인 정선 땅에 들어서면 손바닥만한 밭을 일구며 살던 사람들의 구슬픈 아라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산으로 둘러싸여 논농사를 지을 땅이 없어 쌀이 귀했고, 때문에 옥수수나 감자 등을 주식으로 삼던 시절이 있었다. 옥수수는 그들의 고단한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곡식이다.
요즘은 장날 별식으로 외지사람들이 더 즐겨찾는 음식이 되었지만 여전히 옥수수는 정선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그 옥수수를 불리고 갈아 구멍 낸 바가지에 넣고 누르면 마치 올챙이처럼 동글동글한 모양으로 뽑아져 나와 올챙이국수라 한다.
청춘남녀의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전해지는 아우라지 강가도 빼놓을 수 없는 정선의 명소다. 뗏군이 되어 떠난 총각을 기다리던 여량리 처녀는 아직도 아우라지 강가에서 연인을 기다린다고 하니 휴가철에 한번 만나봄이 어떨까.
강원도 정선군 여량면 여량 5리. 정선군청 관광문화과 033-560-2361
경북 안동 헛제삿밥
지역 특산물에 대한 경계가 대부분 허물어진 요즘, 전국에서 유일하게 '헛제삿밥'이란 메뉴를 맛볼 수 있는 곳이 안동이다. 안동은 유교의 본향이다. 유교문화에서는 제사를 많이 지낸다. 안동에는 지금도 1년에 10여차례 제사를 지내는 종가들이 있다.
제사를 정성껏 받들기 위해서는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종부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제사 음식은 많이, 급하게 먹어도 체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조상이 돌봐주는 음식으로 인식돼 왔다. 이런 문화를 반영하는 음식이 바로 헛제삿밥이다. 옛날 유생들이 출출한 속을 달래고 싶어 어려운 이웃의 눈치를 살피며 제사를 지내지 않고 제사 음식과 똑같이 해서 먹는 음식에서 유래된 것이 헛제삿밥이다.
제삿상에 오르던 각종 나물과 어물, 육류를 끼운 산적에 탕국이 곁들여진다. 일반 음식과 달리 소금, 국간장, 참기름, 깨소금 등 자극성을 피한 식재료를 양념으로 사용한다. 안동 헛제사밥은 채소, 단백질 등이 골고루 어울리며 유교적 제례문화의 정신이 깃든 일품요리다.
헛제삿밥으로 배를 채웠다면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등 지나치기 아까운 안동의 명소를 구경하는 것도 잊지 말자.
경북 안동시. 안동시청 관광산업과 054-840-6391
전북 부안 백합죽 & 백합탕
변산반도가 새만금방조제 완공으로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다. 방조제가 시작되는 부안은 원래 갯것이 풍부한 고장으로 특히 '백합죽'은 부안에서 맛볼 수 있는 향토음식 중 최고로 꼽히는 음식이다. 전복보다 영양가가 풍부하다는 7월 백합죽은 쌀과 백합의 조갯살을 넣고 쑨 죽이다. 백합은 변산반도 서북부 연안에 많이 서식하고 있는 조개로 흔히 생합이라 부르며 어른의 주먹만큼 큰 백합을 대합(大蛤)이라 한다.
백합죽은 4, 5년생의 백합 조갯살을 잘게 썰어 넣어 죽을 쑤는데 참기름을 약간 넣고 깨소금과 김으로 고명을 쓰기도 한다. 맛이 담백하고 부드러우며 철분과 핵산이 많아 담석증과 간에도 좋다고 한다. 백합은 4~5월에 살이 가장 오르고 백합이 머금고 있는 염도나 영양섭취가 왕성해 타포닌 성분이 있어서 알코올을 분해하고 간 기능을 좋게 해준다고 한다.
특히 부안군 일대 식당에서는 기존의 백합탕과 백합죽 외에 부안의 특산품인 뽕과 오디를 이용한 새로운 레시피인 참뽕백합죽을 선보여 여름 별미로 인기를 얻고 있다. 격포는 특히 주꾸미와 바지락, 백합 등의 조개류가 맛이 좋다. 변산반도 연안의 자연산 바지락을 시원하게 우려낸 바지락칼국수와 바지락죽 그리고 쫄깃한 조개의 왕 백합이 입속 가득 씹히는 백합죽은 일대 식당 어디에서든 맛볼 수 있는 향토음식이다.
전북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 일대. 부안군 관광정보 안내 063-580-4434
전남 담양 죽순요리
청정한 대나무골 담양의 7월은 무척이나 분주하다. 바로 죽순 때문이다. 비 개인 날 뒷뜰로 통하는 방문을 열고 귀 기울이면 '사라락 사라락' 죽순 자라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많은 죽순이 솟는다. '우후죽순'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고장이다.
하루 최대 150㎝를 자란다는 죽순이 땅 위에 쌓인 댓잎을 밀치고 빠르게 자라며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아이들의 대밭출입이 금해진다. 행여 실수로라도 죽순을 밟아 다치게 할까 싶어서다. '대나무밭 세 마지기면 부럽지 않은 부자다'라는 말이 있었을 만큼 대나무는 담양사람들의 중요한 농산물이었다.
그 귀한 죽순은 이제 죽순나물, 죽순회, 죽순된장국, 죽순전 등 다양한 음식으로 변신하며 담양 대나무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향긋하고 구수한 향과 사각사각 씹히는 식감이 일품이다.
담양에 갔다면 관방제림을 빼놓을 수 없다. 담양 10경의 하나로 300년 수령의 갖가지 나무들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아름다운 우리 숲이다. 수백년생 푸조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음나무, 개서어나무, 곰의말채나무, 벚나무, 은단풍 등 낙엽성 활엽수들로 이루어져 담양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과 편안한 안식을 가져다 주는 쉼터가 돼주고 있다. 또 메타세쿼이아 길도 운치 있고 내력 깊은 숲으로 지금 초록이 한창이라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곳이다. 내친 김에 소쇄원에 들러 자연을 생활 속으로 끌어들인 선조들의 조경미에 감탄해 보는 것도 좋다.
담양군청 문화관광과 061-380-3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