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조르주 쇠라(Georges Pierre Seurat, 1859~91)는 중절모와 단정한 검은 양복차림을 즐겼던 파리 미술계의 신사였다. 그는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으로 예술가라기 보다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과학자로 보여지길 원했다. 에콜 데 보자르에서 2년 간 수학 한 후 파리 살롱계에 문을 두드렸으나 실패한 뒤 주류의 미술경향이 아닌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했다. 그는 이후 혼합되지 않은 순색의 작은 점들을 캔버스에 찍어가며 형태를 완성해 가는 점묘주의 기법(Pointillism)을 발전시켰다.

대표적인 점묘주의 작품인 <그랑드 자르트섬의 오후>는 40여점의 습작과 2년여의 작업기간이 소요된 대작이다. 당시 유행하는 의상으로 한껏 멋을 낸 여인들과 중절모를 쓴 신사들, 노동 계층으로 보이는 남자들은 전형적인 파리지앵의 모습이었다. 뱃놀이를 즐기거나 애완동물과 함께 산책을 즐기는 모습은 현대의 여가 활동과 별반 다르지 않다. 파리 센강 주변의 그랑드 자르트섬은 19세기 후반 파리지앵들의 대표적인 휴식 공간이었다.

조르주 쇠라. 그랑드 자르트섬의 오후. 1884~86년. 207х308cm. 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소장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의 그랑드 자르트섬을 정밀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쇠라는 19세기를 주도한 광학이론과 색채학에 주목했다. 그는 세상을 이루고 있는 사물들을 단색으로 표현하는데 여러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팔레트에서 색을 혼합해서 캔버스에 칠하는 방법이 아닌 각각의 순수한 색들을 캔버스에 색점으로 나란히 배치해 그 안에서 융합돼 보이도록 표현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멀리서 바라보면 하나의 멋진 화면으로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색점 하나하나가 살아 숨쉬고 있는 듯 각각의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점묘법을 이용해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화면을 구성했던 그의 작업 방식은 굉장한 수고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어서, 그는 10년간의 작업 기간 동안 오직 7점의 작품 밖에 완성할 수 없었다. 서른한살에 요절한 쇠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급진적인 작업방식을 고수해 자신의 회화기법을 공유하기를 꺼려해서 그의 죽음 이후 점묘주의는 쇠락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