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고속도로 금산사 나들목으로 빠져나와 금산면의 원평장터 삼거리에서 동쪽으로 향하면 김제, 만경 평야지대를 보듬고 있는 높은 산 하나가 반긴다. 호남정맥의 묵방산(538m)에서 갈라져 나온 '모악지맥(母岳支脈)'의 맹주, 모악산(母岳山, 794m)이다. 모악산은 '엄뫼', 곧 '어미산'이란 우리말을 한자로 바꾼 것이니, 넓고 기름진 평야에 터를 잡고 대대로 살아온 사람들에게 이 산은 곧 어머니와 같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고은 시인은 모악산을 '내 고장 모악산은 산이 아니외다. 어머니외다'하고 노래했다.

모악산 자락에 작업실을 마련한 안도현 시인은 어느 날 모악산을 오르다 문득 인생의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 산은 위로 오를수록 더 깊어지는데 / 나는 저 아래 도시에서 한 뼘이라도 아파트 평수를 늘리려고 / 얼마나 얕은 물가에서 첨벙대기만 했던가 / (…) / 칡넝쿨을 만나면 칡넝쿨로 누워 얼크러지다가 / 시누대숲을 만나면 시누대로 서서 흔들리면서 / 산을 오른다 (…)
-안도현 시인의 '모악산을 오르며' 중에서
 
 


후백제의 견훤이 갇혀 있던 미륵전 

예전 모악산 자락엔 금산사 귀신사 대원사 수왕사 등의 사찰과 80여개의 암자가 있었다. 모악산의 품은 여느 산에 비해 그다지 크지는 않으나 평야지대 백성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는 역할을 충실히 해왔음을 알 수 있다.

모악산의 대표 사찰인 금산사(金山寺)는 599년(백제 법왕 1)에 세워진 것이라 전한다. 이후 통일신라시대인 766년 진표율사가 중창하면서 민초의 꿈이 서린 절집으로 바뀌게 된다. 율사는 석가모니가 입멸한 56억7000만년이 흐른 뒤 미륵이 이 땅에 내려와 용화수 아래서 세번의 설법을 통해 모든 중생을 구제한다는 신앙을 설파했는데, 이후 금산사는 미륵신앙인 법상종(法相宗)의 대표적인 근본 도량이 됐다.

고려시대인 1069년엔 혜덕왕사가 절을 중수해 88당 711칸의 대사찰로 변모시키면서 금산사는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금산사에서 만나는 목조 건축물들은 거의 임진왜란 이후의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서산대사, 사명대사와 함께 '구국 3화상'이라 불리는 처영대사가 금산사를 중심으로 승병을 일으켜 활동하자 정유재란 때 왜군이 금산사를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현재 경내엔 국보와 보물 등 나라에서 지정한 문화재가 많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미륵전(국보 제62호)이다. 미륵전은 겉에서 보면 3층이지만 안쪽은 하나로 트인 통층팔작지붕의 다포집이다. 1층엔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엔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엔 미륵전(彌勒殿)이라는 각기 다른 편액이 걸린 게 특이하다. 미륵은 본래 대승불교의 대표적 보살 중 하나로 자씨(慈氏)보살이라 불리기도 하니 존칭해 대자보전이 됐고, 용화지회는 용화수 아래서 성불해 미륵불이 된 후 세차례의 설법을 통해 중생을 제도한다는 용화삼회(龍華三會)의 다른 표현이다. 모두 미륵을 모신 법당이란 뜻임을 알 수 있다. 법당 안에 모셔진 삼존불 중 미륵불상은 11.82m, 좌우불상은 8.8m나 된다. 옥내 입불로는 세계 최대라 하는데, 통층이라 이렇게 큰 부처님을 모실 수 있는 것이다.

혜덕왕사탑비 앞으로 이어지는 모악산 산길

이외에도 승려들의 수계의식을 집행했던 방등계단의 석종형부도(보물 제26호)와 오층석탑(보물 제25호)을 비롯해 대장전(보물 제827호) 등 수많은 보물급 문화재가 있는 넓은 절마당을 한 바퀴 돈 다음, 절 뒤편으로 돌아가 옛 봉천원이 있던 부도전에서 혜덕왕사진응탑비(보물 제24호)의 거북이 조각을 감상하면 모악산 오르는 산길이 시작된다.

모악산에서 가장 대표적인 코스는 모악정으로 이어지는 금산사 계곡 길이다. 맑은 계류가 흐르는 계곡 주변엔 물봉선이 가득하다. 이끼 낀 바위 사이를 흘러내리는 계류는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수량도 적지 않은 편이다.



KBS송신소가 자리하고 있는 모악산 정상은 30년 동안 일반인들의 출입이 불가능했으나 몇년 전부터 송신소 건물 옥상을 개방하고 있다.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또 정상 직전의 갈림길에서 왼쪽 길을 따라 50m 정도 가면 KBS송신소 옥상을 개방하기 전에 정상 역할을 하던 전망 바위가 나온다. 사람들은 이곳을 '구 정상'이라 부른다.

전주 쪽에서 올라온 등산인들도 많은데, 이들은 대부분 이곳 바위턱에 앉아 주변 조망을 즐긴다. 북쪽으론 전주 시내가 한눈에 쏙 들어오고, 동쪽으론 경각산(659m)~치마산(568m)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이 장하다. 아쉽게도 서쪽의 김만평야를 한눈에 담을 수는 없지만 한참을 앉아있어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다.

모악산의 등산로는 여러 갈래다. 금산사에서 원점 회귀산행을 하려면 주차장~금산사~모악정~케이블카탑~정상~장근재~케이블카탑~모악정~금산사~주차장 코스를 이용하는 게 좋다. 4시간 정도 걸린다. 또 올라가는 길은 같지만 하산길을 조금 변형한, 주차장~금산사~모악정~케이블카탑~정상~헬기장~심원암~금산사~주차장 코스는 3시간30분 정도 잡으면 된다. 산행 시간을 절약하려면 상가단지의 주차장보다 매표소 안쪽에 있는 주차장을 이용하는 게 좋다. 금산사 문화재관람료는 어른 25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 관리사무소 063-540-3539

여행정보

●교통 서해안고속도로→서김제 나들목→29번 국도→김제→712번 지방도→금산사 / 경부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금산사 나들목→원평→금산사 <수도권 기준 3시간~3시간30분 소요>

●숙박 금산사에서 템플스테이를 운영한다. 예불 참선 산행 신행상담 다도 108배를 기본 프로그램으로 하며, 차나무 관리와 거름주기, 찻잎 따기와 덖기, 차 마시기, 그리고 직접 덖은 차를 가져갈 수 있는 차밭 체험 프로그램 등이 마련됐다. 2박3일 기본 프로그램이 9만원. 전화 063-542-0048, 010-6589-0108 www.geumsansa.org

모악산 인근엔 모악산유스호스텔(063-548-4401), 모악산장(063-548-4411) 등을 비롯한 숙박시설과 10여곳의 민박집이 있다.

●별미 금산사 주차장 상가지역엔 호박정(063-548-0861), 광주회관(063-548-4038), 군산식당(063-548-0069), 한국회관(063-548-0217) 등 식당이 스무 집 정도 있다. 백반 6000원, 산채비빔밥 7000원, 산채·더덕정식 1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