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도, 뒤도 지평선이었다. 차는 분명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지만, 지평선과 도로가 만난 소실점은 하염없이 멀어졌다. 그곳은 러시아 연해주. 천년 전 발해인이 말 달리던 땅. 73년 전 고려인 18만명이 일본인 첩자란 누명을 쓰고 중앙아시아로 쫓겨났던 땅.
 
2006년 6월 한국의 여행객들이 동북아평화연대 현지법인인 '동평기금'이 운영하는 솔빈문화센터를 방문했을 때, 고려인인 나스차 마마(러시아어의 '엄마')는 김치를 내놨다. 아삭아삭하고 시원했다. 일행 중 누군가 "황해도 김치 맛이다, 엄마 김치 같다" 말했다.


일행은 한국으로 돌아와 강제이주 고려인의 연해주 재이주와 정착을 돕는 캠페인에 참여했다. 기부금을 모아 고려인이 입주할 집을 사고 곡물종자와 소, 닭 따위 가축을 보냈다.
 
연해주에 씨 뿌릴 땅은 넓었지만 시장은 좁았다. 동북아평화연대는 고려인들이 연해주 벌판에서 키운 콩으로 전통식 청국장을 띄우게 해 한국으로 들여왔다. 판매법인이자 사회적기업인 바리의꿈도 설립했다.

청국장은 '대박'이었다. 변비로 고생하던 한 베스트셀러작가가 먹고 장이 좋아졌다는 소문이 나면서 바리의꿈 청국장은 불티나게 팔렸다. 덕분에 판매이익 일부가 고려인마을에 재투자됐다.
 
막막한 광야와 빈 집뿐이던 고려인마을에 돈이 돌기 시작했다. 먼저 재이주한 고려인들은 중앙아시아에 남아 있던 친지와 친구를 불러들였다. 나스차 마마도 우즈벡의 친구들을 초청했다. "중국에서 옷 떼다 파는 일보다 낫다"면서. 동평기금이 지원하는 고려인마을은 6곳으로, 청국장 생산 가구는 50곳으로 늘었다.
 
2009년 5월, 공정무역축제 참가차 서울에 온 나스차 마마와 친구들은 덕수궁 돌담길에서 청국장을 팔다 말고 러시아 스텝을 밟았다. 휴대전화 벨소리에도 춤을 췄다. 우리는 잊고 살던 한민족의 신명이었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웃었다.
 
얼마 전, 바리의꿈 사무실에 갔다가 우연히 나스차 마마와 친구들의 근황을 들었다. 마마의 제안으로, 1명 분량의 일을 3명의 친구들이 나눠서 하고 있다고 했다. 급여도 1명치를 3명이 나눠 받는단다. 한국에서 청국장 인기가 시들면서 연해주 고려인의 일거리가 줄어든 탓이었다.
국내 건강식 트렌드가 바뀌자, 바리의꿈은 올해 2월 '청시'를 출시했다. 연해주 차가청국장과 효모로 만든 천연영양제다. 우리 어릴 적 먹던 원기소처럼 고소한 맛이다. 아토피 아이를 둔 어느 아나운서 부부가 매달 대놓고 먹을 정도로 소비자 반응이 좋은데, 이런 걸 알릴 광고비가 바리의꿈엔 없다. 
 

이 글을 쓰고 있자니, 자꾸만 나스챠 마마의 김치 맛이 입 안에 돈다. 앞뒤 없이 광활한 연해주 벌판, 덕수궁 처마 밑에서 신명 넘치던 마마들의 춤사위가 눈에 어른거린다. 이 곳 소비자의 선택이 멀리 고려인 마마들을 춤추게 하는, 시장의 신비로운 '에코시스템'을 어찌 살릴까. '마마, 포기하지 마세요. 다시 춤을 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