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는 적립식펀드 붐이 불어 너나할 것 없이 펀드 하나쯤 가입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그러나 2008년 하반기 미국에서 '서브 프라임' 사태가 터지며 주가는 급락세를 보였다.
급락장에서 미처 손을 쓰지 못한 채 무작정 대기하던 투자자들이 코스피지수가 다시 1800대를 넘보자 대거 환매에 나서는 분위기다. 결국 코스피지수는 1700대 초중반으로 밀렸다. 1800선을 돌파하고도 갈 길이 바쁜 지수를 가로막은 것이 바로 펀드였다니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1800선 돌파를 위해서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환매 대기 물량이 소화돼야 할까? 증권가에서는 아직도 환매 대기물량이 15조~2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펀드 붐' 4년 만에 16배 성장
코스피지수는 2005년 2월 말 1000포인트를 돌파했다. 이후 2007년 10월 말 2064포인트까지 치솟는다. 단 2년8개월 만에 106.4%가 뛰어오른 것이다. 국내 증시 역사에서 15년 이상 지속된 500~1000포인트 사이의 박스권이 깨진 것도 바로 이때다.
당시 대세 상승장을 이끌었던 것은 누가 뭐래도 적립식펀드 열풍이다. 2004년 도입된 적립식펀드는 그해 말 주식형펀드 설정잔액이 8.6조원에 불과했지만 2008년 말에는 140.2조원까지 늘어난다. 무려 16배가 성장한 것이다.
당시 은행에서 펀드 판매를 시작한 것이 펀드 붐의 원동력이었다. 매월 일정금액을 넣을 수 있는 적립식펀드는 은행의 정기적금과 유사한 스타일이어서 은행이 적금의 대안상품으로 팔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품이었다.
이재범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당시 금리가 역사상 최저금리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이라 상당수 투자자들이 정기적금의 대안으로 적립식펀드에 가입했다"며 "주식시장 상승과 더불어 은행의 펀드판매 집중으로 적립식펀드의 성장이 가속화됐다"고 말했다.
지난 6월 말 현재 국내 주식형 적립식펀드 가운데 72%가 은행에서 판매된 것이다.
2009년부터 계속된 펀드 자금 유출
코스피지수 1800선 돌파의 발목을 잡고 있는 환매 대기 물량은 이 가운데서도 2007년 5월 말에서 2008년 8월 사이에 유입된 자금이다. 2006년 11월 말에서 2007년 3월까지 약 5개월간 박스권에서 움직이던 코스피지수는 이후 본격적으로 재상승에 들어간다.
가파른 증시 상승과 함께 주식형펀드에도 자금이 본격적으로 유입됐다. 지수는 2007년 10월 말 2060포인트 전후를 고점으로 찍고 하락세로 돌아섰다. 그래도 지수가 다시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이전 박스권 수준이던 1400포인트대까지 자금이 계속 유입된다.
당시 약 15개월 동안 주식형펀드에 들어온 자금은 무려 35조원 수준이다. 지수대별로 보면 1800포인트 아래에서 15조원의 자금이 유입됐고 1800포인트 이상에서 20조원이 유입됐다. 단순히 생각해도 20조원의 자금이 매물로 대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코스피지수는 이후 속절없이 하락했다. 특히 2008년 하반기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지며 손 쓸 틈도 없이 펀드의 수익률은 마이너스로 곤두박질 쳤다. 손절매할 겨를도 없었다. 2008년 5월부터 2009년 3월까지 10개월간 자유적립식펀드 판매는 6.6조원에 그쳤다.
이후 2009년 4월부터 지수가 다시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마이너스 수익률의 고통 속에 있던 투자자들은 이제 펀드 환매에 나섰다. 손실이 완전히 회복되기 전인데도 손절매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김학균 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3월 이후 강세장이 지속되고 있지만 주식형펀드에서는 기조적으로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며 "주식형펀드 붐 직후 경험했던 2008년 하반기 주가 급락이 투자자들에게 커다란 트라우마를 남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자금 유입 지수대 상승추세 주목해야"
지난 5월 이후 주식시장은 풍부한 글로벌 유동성에 힘입어 재상승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투신권 매물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잇따르고 있다. 이재범 신한금융 애널리스트는 "상승세가 마무리되고 다시 횡보세를 보이며 추가상승 기대감이 줄어들면 환매 대기물량이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투신권 매물이 모두 소화될 때까지 코스피지수가 1800대 위쪽으로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할까?
김학균 애널리스트는 "주목할 점은 주식형펀드로의 자금 유입 지수대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점"이라고 말한다. 올해 초까지는 1600포인트 초반까지 조정을 받아야 펀드로 자금이 유입됐다. 그러나 1700대 중반까지 상승했던 지난 19일에도 국내 주식형펀드 설정액은 전날에 비해 587억원 증가했을 정도로 자금 유입 지수대가 높아졌다.
김 애널리스트는 "주가가 더 오르면 펀드 환매가 늘어날 수도 있겠지만 투자자들이 시장 진입의 기회로 생각하는 지수대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며 "투자자들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주가 움직임에 눈높이를 맞춰가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