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매체의 망점과 인터넷의 픽셀이 감정과 정보를 지배하는 시대다. 점(dot)은 찍힌다는 단순한 행위의 차원을 넘어 위치를 점하고 모든 것을 종결한다는, 시작과 끝을 의미하는 포인트(Point)로서의 기능을 갖고 있다.

인쇄기술이 발달해 망점 없는 이미지를 출력하는 시대지만, 망점은 여전히 우리사회의 '볼 것'들을 장악하고 있다. 혹자는 이를 망점시대(dot generation)라 규정짓기도 한다. 망점을 확대해 인간의 심연과 사회의 단면을 표현하고 있는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은 우리에게 삼성가에서 소유한 100억원대의 작품이라는 것으로 더 익숙하다. 만화나 매체에 좌우되는 1950년대 냉전기의 군중심리와 정치적 편향을 꼬집은 이 작품은 '매체는 잉크의 점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작가가 직접화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국내에도 점으로 세상을 만드는 김지선이라는 젊은 화가가 있다. 김지선의 점은 리히텐슈타인의 망점과는 다른 개념이지만 점이 모여 이미지를 구성한다는 맥락은 같다.

김지선에게 점은 작품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는 약간의 색약이상 증세를 가지고 있어 명도와 채도가 분명한 점이 작품 표현의 수단으로 용이하다. 채색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채색보다는 구분이 선명한 '찍기'가 이미지 구현에 훨씬 더 적합한 그만의 기법인 셈이다.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은 복잡하다. 무엇인가를 표현하기 위해 머릿속에 색상표를 만든 후 갖가지 색을 미리 배합한다. 붓으로 물감을 섞는 것과 달리 색을 순간순간 만들어 사용하기엔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만들어놓은 물감을 주사기에 담아 찍어나가면서 물감 방울이 모여 형체를 이루고 색상의 조화를 구성한다. 찍혀지는 물감의 양과 색상에 의해 양감과 질감이 달라지게 된다.

그의 작품 <무궁화 함박꽃 진달래 그리고 달 항아리>에는 꽃이 한무리 담겨 있다.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꽃과 항아리가 마치 하나의 생물체인양 무궁화, 함박꽃, 진달래가 어우러져 캔버스 가득 풍성함이 넘치고 있다. 골목길 담장너머로 슬며시 고개를 내밀던 꽃이 있는 풍경이 그립다.

김지선의 이번 전시회에 작품 소재로 등장하는 항아리나 불상, 반가사유상, 금동향로는 전통의 미감을 보여주는 동시에 역사를 표현하는 그만의 화법이다. 편안한 시선과 안정된 형태가 자연스럽게 와닿는 구성이다.

김지선 씨는 "다양한 문화가 합쳐지고 다시 해체되는 과정을 거쳐 새로운 문화가 탄생된다"며 "이번에 도자기 등 문화재를 소재로 잡으면서 해체됐다가 우리 것이 살아서 재탄생하는 문화를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인사동 갤러리바이올렛에서 9월15일부터 28일까지 전시한다. (문의 02-722-9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