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어른의 지갑에서 현금이 나오는 순간, 올해도 어김없이 아들과 엄마의 불꽃 튀는 전쟁이 시작된다.
“용돈 받은 거 엄마 줘. 네가 갖고 있으면 잘 잃어버리니까 엄마가 지켜 줄게.” “싫어!”
“너는 그거 다 써버리잖아. 엄마가 갖고 있다가 너 필요할 때 줄게.” “싫어! 내 거야!”
엄마의 갖은 회유와 협박에도 이미 ‘엄마 손에 들어간 용돈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는 불변의 진리(?)를 알아버린 아이들은 쉽게 넘어올 리 없다.
“엄마랑 그거 같이 통장에 넣자. 네 통장에 있으니까 네 돈 맞잖아.”
엄마의 계속되는 채근에 아이가 결국 못 이긴 척 얼마간의 돈을 내민다. 2만원.
“아까 너 삼촌한테 용돈 3만원 받았잖아. 나머지도 줘야지.”
“아니야. 나 2만원밖에 안 받았어. 엄마한테 다 준거야!”
애써 우기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엄마의 마음이 복잡해진다. 자기 돈을 지키겠다고 거짓말까지 하는 모습에 따끔하게 혼을 내야겠다 싶으면서도 어딘지 안쓰럽다. 용돈처럼 정기적인 수입이 아니라 횡재 하듯 아이들에게 떨어진 그야말로 공돈이니 아이가 평소보다 과한 돈을 낭비해 버리진 않을까 걱정이 되는 건 당연하다. 아이들이 감당하기엔 액수가 적지 않고, 그렇다고 펀드와 같은 금융상품을 찾기엔 액수가 그리 크지 않다.
명절만 되면 찾아 오는 엄마들의 고민, 이 참에 아이들에게 좋은 소비 습관을 들여 줄 수 있는 경제 교육의 기회를 잡을 순 없을까. 현명한 엄마가 되기 위한 우리 아이들 ‘명절 공돈(?) 경제 교육’의 비법을 알아보았다.
◆명절 아이 용돈, 그냥 두는 것이 정답!
아이들의 경제 교육 지침서 <경제홈스쿨링>의 저자 조혜경 컨설턴트는 “명절 때 아이들이 받은 돈은 어른이 자신에게 사용하라고 준 자신들의 돈이다”는 것을 가장 먼저 강조한다.
어떤 이유를 붙이든 부모가 아이의 돈을 가져가는 것은 아이의 입장에서는 ‘내 돈을 빼앗기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경제교육전문가 김지룡 소장은 “내 것과 네 것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것은 경제 교육에서 가장 피해야 할 일”이라며 “아이가 아무리 어리더라도 자신들의 소유권만큼은 인정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래야 ‘나의 소유’ 뿐 아니라 ‘남의 소유’에 대해서도 인정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다는 것.
비슷한 일이 반복될 경우 초등학교 고학년쯤이 되면 부모의 통제를 피하기 위해 용돈을 받자마자 엉뚱한 것이라도 사서 돈을 소진시키려고 드는 등 오히려 충동적 소비 습관을 부축일 수 있다.
단, 이때 중요한 것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주는 것이다. 조 컨설턴트는 “명절 때 친지들에게서 받는 용돈은 말 그대로 대가를 치르지 않고 생기는 공돈”이라며 “친지분들이 용돈을 주는 의미를 확실히, 구체적으로 얘기해 주고 그에 따른 노동을 치르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집안일을 거들게 하는 식이다. “친지 분들이 주는 용돈은 공부 열심히 하고 부모 말씀도 잘 들으라는 의미란 사실을 너도 잘 알거야. 그러니 추석명절을 치르느라 부쩍 많아진 집안일 좀 도와주렴! 그럼 네가 용돈을 받은 이유에 충실해지겠지."
◆아이가 직접 관리하고, 실패할 기회를 줘라!
조혜경 컨설턴트는 “대량 생산과 소비를 권장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경제 교육이란 절약이나 저축, 투자도 중요하지만 소비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명절 용돈은 아이들에게 올바른 소비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한다.
‘소비=낭비’ 라는 도식에서 벗어나 돈을 쓰되, 원하는 곳에 잘 쓸 수 있도록 ‘통제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핵심. 한 마디로 아이들이 명절 용돈을 자기가 원하는 곳에 마음껏 쓸 수 있는 기회를 주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주의할 것이 있다. “네 돈이니 네 마음대로 써라”가 아니다. 자신들의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 소비 계획을 물어보고 약속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모두 10만원의 용돈을 받았다면 ‘한 달에 2만원씩 5개월에 걸쳐 쓰겠다’거나 ‘지금까지 모아 둔 용돈을 보태서 장난감을 사는 데 쓰겠다’는 등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물론, 결과는? 당연히 실패할 것이다. 김지룡 소장은 “10만원의 용돈을 아이들에게 자율적으로 맡겨놓고 쓰라고 하면 대부분은 계획과 달리 2개월 만에 없어지는 것이 정상이다”고 말한다. 하지만 부모는 이러한 실패 과정을 지켜봐 주는 것이 중요하다.
김 소장은 “아이들이 계획을 지킬 수 있도록 부모가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10만원의 용돈을 부모가 관리하고 매달 2만원씩 준다든지 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돈을 관리하고 실패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소비의 경험이고, 교육이다”고 말했다.
아이가 만약 원하는 걸 사고 싶다고 한다면, 이때도 원칙이 있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 ‘언제까지 기다린 뒤’에 물건을 사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달 네 생일에 사자’ 라든지 ‘지금은 액수가 2만원 정도 모자라니까 너 스스로 용돈을 벌어서 돈이 다 모이거든 사자’라는 식이다.
김 소장은 “지금 당장 살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액수가 있다 하더라도 ‘시간’이나 ‘상황’등을 조건으로 주고 기다렸다 사게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다른 것들을 포기하는 덕목을 스스로 익히고, 인내가 성취감으로 이어진다는 것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명절 용돈, 똑똑한 소비 교육 4원칙
1. 아이들과 약속을 정해라. 테두리 잡아주기
아이들이라도 ‘세상에 원하는 것을 다 얻을 수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아이의 연령대에 맞게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것의 테두리를 아이와 상의하고 정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소비의 경험이 방종으로 흐르는 것을 막아줄 수 있다.
2.비교능력 및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준다.
아이가 원하는 물건을 사기 전, 그 제품에 대해 오프라인매장,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 다양하게 가격비교를 하도록 해 그 중 최적의 조건을 찾아내도록 유도한다. 그 후에 일주일 정도 정말 필요한 것인가 아이에게 생각하는 시간을 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3.용돈사용계획서를 작성하기
부수적인 용돈에 대한 용돈사용계획서를 작성하게 하는 것이 좋다. 왜 그것이 필요한 것인지의 구체적인 이유를 함께 적도록 한다. 그러는 중에 아이가 정말 필요한 것인가를 돌아보는 판단력이 키워진다.
4. 일부는 현금대신 문화상품권 등으로 바꿔준다.
아이가 사용하기에 많은 액수라면 일부를 선불카드나 문화상품권으로 바꿔주는 것도 좋다. 현금을 수중에 지니고 있을 때와 사용범위가 어느 정도 통제된 지불 수단을 지니고 있을 때는 각각 소비행태가 다르다. 다만 아이들이 순순히 동의하지 않으면 소유를 인정해주는 조건을 처음부터 확실히 하거나, 부모가 돈을 보태 조금 더 사준다는 식으로 아이의 동의를 유도해 내는 것이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