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의 명분이냐 현대기아차그룹의 자금력이냐?'

현대건설을 차지하기 위한 현대기아차그룹(이하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간의 팽팽한 기싸움이 본무대에 올랐다.
 
지난 9월24일 채권단의 매각 공고로 개막된 현대건설 인수전은 3일 뒤인 27일 현대차그룹이 입찰참여를 공식화한데 이어, 현대그룹도 독일의 하이테크 전문 엔지니어링 기업 'M+W그룹'을 전략적투자자로 삼아 마감시한인 10월1일 인수의향서를 제출하며 출사표를 던졌다. 
 
비록 독일기업의 참여로 오리지널 현대가(家)의 ‘2파전’이라는 그림이 되진 못했지만 현대그룹이 인수를 주도하는 만큼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의 본격경쟁이 시작된 구도는 변함없다.
 
때문에 최종 인수자가 결정될 향후 2개월 동안의 양측간 사활 건 ‘현대건설 쟁탈전’에 재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불꽃튀는 현대가의 소리없는 총성 속에 짚어볼 세가지 관전포인트를 살펴본다.
 

포인트1 : 누가 더 절실한가 - 정통성 vs 경제논리
 
“잃었던 것을 되찾는 것이죠.(현대그룹 관계자)”
“명분보다는 경제적 논리로 접근해야 합니다.(현대차그룹 관계자)”
 
현대건설 인수전에 뛰어든 양측의 가장 큰 시각차는 바로 정통성과 시장논리다.
 
현대그룹은 지난 9월21일부터 인수합병(M&A)을 앞둔 기업으로서는 이례적으로 TV광고를 내보내며 현대건설 인수에 대한 의지를 일찍부터 불태웠다. 광고 속에서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현대그룹이 지키겠습니다’는 자막을 통해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고 정몽헌 회장에게 현대건설을 물려줬다는 ‘정통성’을 은연중에 강조했다.  
 
특히 현대건설이 채권단에게 넘어가기 전까지 고 정몽헌 회장이 4400억원에 달하는 사재를 털어 유동성 위기를 진화하려 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현대건설 인수는 잃었던 과거의 것을 되찾는 것으로 해석했다.
 
여기에 현대차그룹을 겨냥해서는 “현대건설이 어려웠을 때는 아무런 지원도 않다가 이제 정상화되니 인수하겠다는 것은 유감”이라는 공식입장까지 밝히며 공격 모드를 분명히 했다.  
 
물론 현대그룹이 ‘고 정몽헌 회장의 유산이 현대건설’이라는 정통성만 강조한 건 아니다. 다른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점 역시 인수전에 뛰어든 또 다른 명분으로 꼽았다. 현대상선, 현대엘리베이터, 현대로지엠(현대택배) 등 물류와 수송 중심의 그룹 주력사업에 건설까지 포함시켜 시너지 효과를 이끌어 내겠다는 것.   
 
또 지금은 중단됐지만 30년간 대북사업 독점권을 가진 만큼 현대건설 인수가 향후 북한의 사회간접자본(SOC) 개발 사업에도 플러스 효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통성 중심의 인수명분을 내세운 현대그룹과 달리 현대차그룹은 철저히 '시장'이라는 경제 논리로 현대건설을 인수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룹의 숙원사업이었던 현대제철 일관제철소를 성공적으로 완공했고 자동차사업도 글로벌시장에서 안정적인 궤도에 오른 만큼 현대건설 인수는 미래성장을 위한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는 차원이라는 것.
 
또한 원전 등의 친환경 발전 사업에서부터 주택용 충전 시스템과 연계된 친환경 주택, 하이브리드(HEV) 및 전기차와 같은 친환경 자동차에 이르는 에코 밸류 체인 완성이 가능하다는 점도 인수명분의 한 축으로 내세우고 있다. 
 
현대건설 자체만 해도 세계 150여국가에 공급하면서 8000여곳에 글로벌 생산 설비와 판매 거점을 확보하고 있는 그룹의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한다면 세계적인 종합 엔지니어링 회사로 키우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 현대차그룹의 주장이다.
 
이밖에 현대건설을 인수하면 기존 현대차그룹 사업인 해외 고속철·철도차량 사업과 연계시키고,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로부터 안정적으로 건설 자재를 조달받는 ‘키포인트’로 삼겠다는것을 인수전략의 전면에 배치했다. 
 
현대차그룹은 무엇보다 시공능력 1위 현대건설을 인수해 글로벌 건설업체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견인할 수 있는 적임자임을 분명해 내세우고 있다. 거기에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차원에서라도 건설업과의 넓은 사업 스펙트럼을 보유한 현대차그룹이라는 점도 상기시켰다. 
 
포인트 2 :  싸움이 될까 - 재계 2위 vs 재계 21위
 
이번 인수전이 현대가의 전쟁이라는 것 외에 또 하나 관심을 끄는 부분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표현되는 두 인수주체의 현격한 몸집차다.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집계한 재계순위에서 현대차그룹은 2위, 현대그룹은 21위를 차지했다. 순위의 기준이 되는 자산 규모를 보면 현대차그룹은 100조7000억원인데 반해, 현대그룹은 12조4000억원으로 현대그룹이 현대차그룹의 12% 수준에 불과하다.
 
현대건설 인수 가격은 최근 주가 수준과 30% 정도의 경영 프리미엄을 고려할 때 최저 3조5000억원선, 두 그룹간 경쟁이 과열되면 4조원대도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 그럼에도 현대그룹이 현대차그룹과의 ‘머니게임’에서 과연 대등한 경쟁을 벌일 수 있을지가 관전의 하이라이트중 하나다.
 
일단 현대그룹은 1조5000억원 정도의 내부자금을 확보했다. 그래도 앞으로 3조원에 가까운 돈을 더 끌어와야 하는 게 숙제아닌 숙제. 이를 위해 현대그룹은 이번 독일 M+W그룹을 전략적 투자자로 끌어들인 것처럼 향후 전략적·재무적 투자자의 유치에 고삐를 늦추지 않을 전망이다.
 
인수의향서를 제출하기 하루 전까지만 해도 현대그룹을 둘러싸고 유럽 및 중동계 투자자들과의 접촉설이 끊임없이 나온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가능하다.    
 
당시 시장에서는 현대그룹이 현정은 회장의 선친인 고 현영원 현대상선 회장 당시부터 현씨 일가와 친분이 깊은 유럽 금융권과 접촉중이며, 중동지역에서는 현대건설의 인지도를 활용해 복수의 전략적 투자자들과 만나고 있다는 설이 나돌았었다. 
 
추가 자금마련에 집중해야 하는 현대그룹과 달리, 현대차그룹은 적어도 ‘실탄’ 걱정은 하지않아도 될 만큼 여유로운 편이다.
 
현재까지 현대차그룹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지난 3월 기준으로 대략 4조원. 현대건설 인수자금이 3조~4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만큼 현대차그룹은 자체 자금으로 인수가 충분히 가능한 상태다.
 
여기에 전 계열사들의 실적이 호전되고 있고 신용등급 역시 높아 자금동원 능력과 함께 현대차그룹은 이번 인수전에서 확실한 '결정구'는 보유한 셈이다.  
 

포인트 3 :  ‘승자의 저주’  피할 수 있을까
 
현대건설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양측 모두 경계해야 할 ‘함정’이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우건설 인수에서 드러난 ‘승자의 저주’가 그것이다.
 
지난 2006년 11월 금호아시아나그룹은 6조원이 넘는 막대한 인수자금을 들여 대우건설을 인수했다. 하지만 이후 대우건설은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고 급기야 그룹 전체를 뒤흔들어 워크아웃의 길에 들어서게 한 장본인이 됐다.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발목을 잡은 것은 6조원이 넘는 인수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재무적 투자자(FI)에게 제안했던 ‘풋백옵션’의 후폭풍이다. 
 
풋백 옵션은 기업의 인수·합병 계약에서 기업 인수 후 추가부실 발생시 일정 가격에 주식이나 금융자산을 되사주는 방식 등을 통해 손실보전을 해준다는 계약. 따라서 기업 인수 후 주식가격이 떨어질 경우 이를 제안한 쪽에서 큰 손해를 입는 리스크가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현대건설 인수전에서도 두 현대가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사례를 철저히 상기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풋백옵션은 자금동원력이 앞서는 현대차그룹보다는 추가 자금마련에 골몰해야 하는 현대그룹이 더 경계해야할 요소로 꼽힌다. 현재 채권단 안팎에서는 무리하게 차입을 시도하는 후보기업에 본 입찰 평가시 감점을 준다는 얘기도 흘러 나오고 있다.
 
풋백옵션과 함께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고가 낙찰도 현대건설은 물론 해당 인수기업에 독이 되는 '승자의 저주'로 우려되는 요소다.   
 
현대건설의 인수 적정가가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해 4조원 안팎으로 추정되지만 두 그룹간의 경쟁이 과열될 경우 이를 훨씬 넘어서는 금액을 써낼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UBS증권은 “현대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하려는 이유 중 하나는 현대건설이 현대상선 지분 8%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며 "지나친 경쟁을 막기 위해서라도 현대차그룹은 현대건설을 인수한 후 현대상선 지분 8%를 현대그룹에 매각하는 게 나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