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통영 가오치 여객선터미널에서 뱃길로 40분 거리에 있는 사량도(蛇梁島)는 윗섬(상도)과 아랫섬(하도) 두개로 이루어져 있다. 사량(蛇梁)은 두섬 사이 해협이 마치 뱀처럼 구불구불하다 해서 붙은 이름. 이 해협은 또 오동나무처럼 푸른 강줄기 같다 해서 동강(桐江)이라고도 불린다.
뾰족바위…암릉과 바다 풍경에 놀라
사량도엔 지리산(398m)이 있다. 본래의 이름은 지리망산(智異望山). 이곳에 오르면 북서쪽 저 멀리로 지리산(1915m)이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요즘은 '망'자를 빼고 그냥 지리산으로 부른다.
섬이면서도 지리산의 능선을 닮은 긴 능선, 설악산의 용아장성을 축소해놓은 듯한 옹골찬 암릉은 한려해상의 아름다움을 한껏 빛내준다. 배를 타고 사량도로 들어가다 멀리 암릉이 보이기 시작하면 누구라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불쑥불쑥 솟은 암봉과 능선은 마치 '수반에 얹은 수석'처럼 아름답기 때문에 설렘은 더하다. 그렇지만 높이가 400m도 안 되는 산이라고 우습게보면 절대 안 된다. 매년 한두차례 추락사고가 발생할 정도로 암릉이 제법 날카롭기 때문이다.
물뱀 같다는 두 섬 사이로 들어선 배가 윗섬의 금평항에 닿는다. 면사무소와 중학교 등이 모두 금평항 근처에 있으니 이곳은 윗섬과 아랫섬을 포함한 행정·교육의 중심지인 셈이다. 이 항구가 사량도 지리산 산행의 베이스캠프가 된다.
금평항에 배가 도착하면 돈지행 버스가 부두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 버스를 타면 10여분만에 산행 들머리인 돈지마을에 닿는다. 이곳은 포구를 껴안고 있는 마을이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아담한 돈지분교 정문 왼쪽으로 난 길을 따르면 산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초입의 작은 계곡에 물이 흐르지만 갈수기엔 말라버렸을 수도 있으므로 미리 식수를 준비하는 게 좋다.
빽빽한 숲길의 가파른 비탈을 20~30분쯤 오르면 숲이 걷히면서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지리산 주릉에 올라선 것이다. 북쪽의 눈앞으론 쪽빛 바다 너머 사천 와룡산이 가깝고, 그 너머로 지리산 천왕봉이 아련하다. 남쪽을 돌아보면 둥글게 해안선을 이룬 돈지항이 작은 연못처럼 아름답다. 돈지항 남쪽 옆 왕관 모양의 작은 섬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대나무 화살을 얻었다는 대섬(죽도)이다. 유럽의 유명한 해안 휴양지에 뒤지지 않는 아름다운 풍광이다.
능선에 올라선 다음엔 계속 동쪽으로 간다. 왼쪽 어깨 너머로는 사천, 지리산에 시선을 빼앗기고, 오른쪽으로는 돈지항 너머 망망대해에 마음을 빼앗긴다. 가끔 돌아보면 수우도 너머로 남해도, 창선도가 여전히 뒤따르고 있다. 능선길을 이렇게 1시간쯤 헤엄치듯 걷다보면 어느덧 지리산 정상에 닿는다. '지리산 해발 397.8'이라 적힌 표석이 박힌 정상의 조망은 역시 빼어나다.
탁 트인 한려수도 바다를 즐긴 뒤 30~40분쯤 내려오면 촛대바위 직전 안부 사거리. 오른쪽은 물을 구할 수 있는 자그마한 암자인 성자암을 거쳐 옥동마을로, 왼쪽은 삼천포항에서 온 배가 하루 한차례 닿는 내지항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사량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불모산(달바위봉, 399m)까지는 사방으로의 조망을 여유롭게 즐기면서 걸을 수 있다. 약간 아슬아슬한 바위지대를 지나면 '달바위 400m'란 표석이 있는 불모산 정상. 역시 조망이 좋다.
이후로 산길은 거칠어진다. 가까이서부터 메주봉, 톱바위, 가마봉, 향봉(탄금바위), 그리고 뾰족하게 솟은 옥녀봉…. 각각 옹골차고 암팡진 모습의 암봉들이다. 감히 설악의 용아장성에 빗대 '남해의 용아장성'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다.
불모산 바윗길을 내려서면 갈림길 안부. 이제 메주봉, 가마봉, 가마봉, 탄금바위, 옥녀봉이 남아있다. 예전엔 담이 약한 노약자들은 여기서 왼쪽(북쪽)의 대항마을로 하산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최근 계단과 우회로를 만들고 정비한 덕에 예전보다는 안전하므로 경험자와 동행했다면 도전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탄금대를 내려서는 길엔 10m 정도 높이의 수직 절벽에 줄사다리가 걸려 있다. 공포감을 느낀다면 그 전에 우회로를 이용하면 된다. 이어 또 암릉이 가로 막는다. 밧줄이 설치돼 있고, 암벽등반 경험자라면 무난하게 넘어설 수 있다. 역시 공포감이 든다면 암릉을 우회하면 된다.
이렇게 아슬아슬한 암릉을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면 어느덧 옥녀봉. 사량도 지리산 산행에서 만나는 마지막 봉우리다. 돌아보면 우람한 암봉들이 하늘로 뾰족뾰족 솟구쳐 있다. 저길 어찌 지나왔는지 놀랍기만 하다.
슬픈 전설 전하는 옥녀봉
옥녀봉엔 욕정에 눈이 먼 아버지를 피해온 옥녀가 벼랑 아래로 몸을 던졌다는 안타까운 전설이 전한다. 옥녀가 겪었을 두려움과 슬픔을 위로하듯 주변 조망이 장관이다. 그런데 풍수로 보면 사량도의 산세가 여인이 거문고를 타는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의 명당이라 옥녀봉이라 불리는 것이라 한다. 가만히 보면 산봉우리 형상이 여인의 젖가슴을 닮았을 뿐 아니라 향봉이 탄금바위로도 불리고, 아랫마을 지명이 금평(琴坪)이니 천인공노할 전설보다는 옥녀탄금형이라는 풍수설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에 더 힘이 실린다.
옥녀봉의 거대한 바위 오른쪽에 놓인 긴 철계단을 내려서면 호젓한 숲길이 펼쳐진다. 이어 바다가 보이는 작은 밭둑을 지나면 KT사량지사 건물이 보인다. 5시간에 걸친 긴 산행이 끝난 것이다.
지리산의 여러 코스 중 돈지마을~지리산~촛대바위~불모산~메주봉~가마봉~향봉(탄금바위)~옥녀봉~금평항 코스는 가장 길게, 그리고 가장 제대로 사량도의 아름다움을 음미할 수 있는 코스다. 지리산 능선 구간은 돈지항 조망이 아주 빼어나면서도 비교적 안전한 산길이지만, 불모산(달바위)∼옥녀봉 구간은 뾰족뾰족 솟은 암봉이 많아 조망이 좋으면서도 추락 위험이 높다. 그렇지만 최근 쇠사다리나 밧줄 등 안전시설을 잘 갖춰놓았고 우회하는 짧은 길도 정비해 놓은 덕에 예전보다 비교적 안전하게 산행에 나설 수 있다.
이 코스는 8km 밖에 안 되지만 암봉 구간에서 의외로 시간을 많이 빼앗기므로 산행 시간을 5시간 정도로 넉넉하게 잡는 게 좋다.
여행정보
●교통 경부고속도로→비룡분기점→통영돚대전고속도로→동고성 나들목→1009번 지방도(고성 방면 우회전)→14번 국도(통영 방면 좌회전)→도산 삼거리(우회전)→77번 국도→가오치(사량도여객선터미널) <수도권 기준 5시간 소요>
●배편 통영→사량도(금평항)는 가오치항에서 평일엔 2시간 간격 6회(07:00~17:00), 3월~10월 주말엔 1시간 간격 11회(07:00~17:00) 운항한다. 사량도(금평)에서 나오는 배는 평일엔 6회(08:00~18:00), 3월~10월 주말엔 11회(08:00~18:00) 운항. 요금 편도 4500원, 승용차 1만3000원. 전화 055-642-6016
이외에도 삼천포항(일신해운 055-832-5033)에서 06:30(돈지), 08:00(내지), 11:00(내지), 13:30(내지), 16:30(내지)에 운항한다. 요금 왕복 8000원. 승용차 1만2000원
●현지교통 사량도 금평→돈지(06:30, 07:50, 09:50, 11:50, 15:50, 17:50) 마을버스가 금평항 배시각에 맞춰 운행한다. 요금 1000원. 버스기사 전화 010-5166-8684
●숙식 사량도엔 숙식할 곳이 항구마다 있다. 가장 큰 금평항엔 사량섬유스호스텔(055-641-8247), 사량여관(055-642-6056), 신형제식당(055-643-3876), 우리식당(055-642-6103), 미화횟집(055-648-7006), 대가식당(055-642-7259) 등 숙식할 곳이 많다. 금평항 부둣가엔 포장마차형 횟집이 늘어서 있다.
이외에도 돈지항의 우리횟집(055-644-9331), 사금횟집(055-642-7162), 대항의 자연산횟집(055-641-7588), 사량비치횟집(055-641-7729), 옥동마을의 옥동횟집(055-642-7328) 등에서 숙식이 가능하다.
●참조 통영시청 안내전화 1577-0557, 사량면사무소 055-650-3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