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쌀쌀해진 날씨 탓인지 벌써 연말 분위기가 느껴진다. 사람들은 가을이 실종됐다며 아우성이다. 저물어가는 다사다난했던 2010년, 올해의 컬러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녹색'을 선택할 것이다. '녹색성장', 녹색창업', '녹색경영'... 온통 녹색 구호가 난무했던 한 해였으니까.
아무도 녹색을 이야기하지 않고 관심을 두지 않던 때부터 초록 찬연한 사회적 비즈니스를 일구어 온 필자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이제는 외롭지 않아도 되니까.
 
좀 거품이 껴 있지 않냐는 의심 어린 시선은 잠시 거두어도 좋다. 모든 것의 발흥기에는 언제나 거품이 끼기 마련이니까. 단 거품이 실체를 압도하지만 않으면 된다. 거품이 싫다고 목욕까지 거부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릴 수 또한 없지 않은가.
 
그리하여 필자는 2010년의 '그린붐'이 좀 더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다만 그것이 앵무새처럼 "녹색" "녹색"을 입으로만 반복하는 수준이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경제활동의 모든 프로세스가 녹색화되는 것은 이제 필연적인 일로 인식되고 있다.

그것의 당위성을 말로만 강조하는 것은 아무런 감흥도 일으키지 못한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창의적인 실천과 경험, 그것을 통해 대중의 녹색 상상력을 자극할 때 그 기업 또는 정부는 녹색리더로 인정 받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거창한 마스터플랜도 아니요, 복잡한 5개년 계획도 아닌, '녹색 감수성'이다.
 
프로야구단 SK와이번스는 올 시즌 최고의 한 해를 맞았다. 정규시즌과 코리안 시리즈를 제패, 통합우승의 역사을 썼다. 성적만 좋은 게 아니다. SK는 올해를 그린스포츠 원년으로 선포하고 다양한 활동을 펼쳐 명문구단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모습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수십억의 예산을 들여 홈구장을 환경친화적인 구조로 개조했고 야구장을 찾는 팬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하지만 이런 투자와 활동이 단지 당위성을 강조하는데 그쳤다면 사회의 관심과 팬들의 호응을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SK의 그린스포츠에 대한 의지가 가장 설득력있게, 그리고 임팩트 있게 표현된 것은 다름아닌 선수들의 유니폼이었다. 갑자기 (여느 때 입던 빨간색이 아닌) 녹색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등장한 선수들. 이 보다 더 인상적인 캠페인이 어디 있겠는가. 이 보다 더 설득력있게 그린스포츠를 역설하는 수단이 또 어디있겠는가. 금상첨화, 성적도 좋아서 이 유니폼을 입고 뛴 경기에서 선수들은 7승 1패의 놀라운 승률을 보여주었다.
 
88년 역사를 지닌 토종 기업인 메리츠 금융그룹은 올 해를 그린비즈니스의 원년으로 선포했다. 하지만 그룹의 새로운 방향성에 대한 임직원의 이해도 그리 높지 않았다. 피부로 느껴지는 무언가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10월초 메리츠금융그룹은 4천여명의 전 임직원이 모이는 행사를 준비하며 아주 특별한 피케셔츠를 제작했다. 버려진 페트병을 재활용해서 만든 기능성 피케셔츠를 전 임직원에게 선물했다. 이 보다 더 쉽고 확실하게 달라지는 비즈니스의 미래를 느끼게 하는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녹색성장을 외쳐 온 청와대도 최근 한글날을 맞아 어린이 4천여명을 초대한 행사에서 대통령의 친필 메시지가 새겨진 친환경 티셔츠를 선물했다. 지금까지는 청와대 역시 중국에서 만들어진 저가의 티셔츠, 환경에 큰 피해를 주는 디자인 제품을 이용해왔다. 구하기 쉽고 싸다는 이유 때문에.  어느 정부기관이나 다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번을 계기로 구호가 아니라 감성을 담은 디자인으로 국민들과 소통해야 된다는 걸 청와대 또한 느꼈을 것이다. 
 
말로는 녹색 경영과 성장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환경에 피해를 주는 방식을 고수해선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작은 부분에서부터 녹색을 실천하는 것, 그리고 그린디자인의 감수성으로 구성원과 고객, 대중에게 녹색 변화를 감성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것. 녹색미래를 고민하는 리더라면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