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정확히 10년의 세월이 흐른 2009년 8월. 각지에 흩어져 있던 ‘대우맨’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기존 임원 친목모임인 대우인회를 발전시켜 대리급 이상의 직원들까지 가세한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올 10월19일.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창립 1주년 기념행사를 열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도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베트남 하노이에서 급히 귀국해 250여명의 회원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대우맨들엔 가슴뭉클한 행사로 기억될 이날, 누구보다 남다른 소회를 느낀 사람은 바로 장병주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회장이다. 그는 대우그룹 해체 당시 ‘마지막 지휘봉’을 잡았던 인물이다. 지난 1년간 연구회의 초대 회장을 맡으며 불철주야 ‘대우’의 역사적 재해석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던 선봉장이기도 하다.
그를 만나 대우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향후 계획을 물었다.
Q.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어느덧 첫 돌을 맞았다.
A. 김우중 전 회장을 비롯해 250여명의 대우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창립 1주년을 자축했다. 우리는 아직도 ‘대우’라는 두 글자만 봐도 가슴이 뭉클하다. 올해까지 회원이 3000명 가까이 될 것 같은데 이번 1주년을 계기로 더욱 의무감과 책임감을 갖고 대우의 ‘세계경영’ 정신을 알리는데 노력하겠다.
Q. 연구회를 설립하게 된 배경은?
A. 대우그룹이 지난 1999년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해체됐다. 이후 10년의 세월이 흐르며 전직 임원들의 상조모임인 대우인회마저 신입회원이 끊였고, 기존 회원들도 나이가 들면서 세상을 뜨는 등 모임 규모가 작아졌다. ‘대우’ 이름이 점차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안되겠다 싶어 기존 임원들 외에 직원들까지 참여하는 조직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연구회를 설립했다.
Q. 1년 동안 회원들은 많이 늘었나?
A. 3개월간 준비해서 창립했을 당시(2009년 10월) 1400명의 회원이 있었으나 1년이 지난 지금은 2700여명으로 늘었다. 해외에도 12개의 지회가 생겼고, 연말까지 총 30개의 해외지회가 만들어 질 것으로 기대한다.
Q. ‘대우 30년사’를 출간하고 세미나도 개최하는 등 지난 1년간 나름 많은 활동을 했다. 구체적인 성과를 짚어본다면?
A. 크게 3가지 성과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우선 회원수가 많아졌고 해외지회도 늘어 조직이 더 탄탄해졌다.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다양한 정책들을 펼친 것도 성과다. 연구회의 사단법인 등록활동이나 투자펀드 회사인 프리미어파트너스를 통해 중소기업 금융지원 사업을 펼친 게 대표적이다. 마지막으로 대우의 ‘세계경영’에 대한 이론과 자료 정리 작업을 수행한 일도 보람을 느낀다. (지난 3월 연구회는 ‘대우그룹 43주년 기념행사’에서 600쪽이 넘는 분량의 ‘대우 30년사’를 발간, 공개했고 10월에는 ‘대우 세계경영, 내용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도 발간했다.)
Q. 청년실업자들을 위해 해외취업 알설을 추진한다고 들었는데.
A. 사실 우리 연구회가 제일 역점을 두고 진행하는 사업으로, 내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내년에만 미취업자 1000명을 해외로 보내 현지기업에 취업시켜 글로벌 인재로 양성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물론 처음에는 현지거주 한국기업에 한해 취업을 알선하겠지만 향후에는 현지에서 스스로 회사를 설립하는 데도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다.
Q. 지난 8월에는 연구회를 지식경제부 소속 사단법인으로 정식 등록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A. 아무래도 연구회 차원에서는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데 재정적인 한계를 느꼈다. 정부나 지자체가 중소기업 육성이나 청년 실업자 구제를 위한 계획이 많아 그 곳과 제휴를 맺고 운영자금을 지원받고 있다. 그 전에는 운영자금을 전적으로 회원들의 후원금에 의지했지만 이제는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할 수 있게 됐다.
Q. 연구회의 활동을 ‘대우 부활’을 위한 활동으로 해석해도 되나?
A. 엄밀히 말해 ‘대우 부활’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사훈으로 삼았던 창조, 도전, 희생정신과 같은 기업가 정신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 ‘대우’라는 이름을 통해 그같은 정신을 다시 세워보자는 의지의 활동으로 봤으면 한다. 즉, 비즈니스적인 대우 부활이 아닌 기업가 정신의 부활로 평가해줬으면 좋겠다.
Q. 개인적으로 ‘대우’ 브랜드가 국가 자산이라는 말을 자주 피력한 것으로 아는데.
A. 당연히 아깝다. 대우그룹은 없어졌지만 ‘대우'라는 브랜드는 아직 남아있지 않은가. 물론 앞으로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대우 이름이 사라질 지도 모르지만 ’국가브랜드위원회‘와 같은 곳도 있는데 ’대우‘라는 브랜드가 없어진다는 사실은 분명 안타깝다.
Q. 연구회를 보는 또 다른 시각 중 하나는 김우중 전 회장의 재기로 해석하는 것이다.
A. 그건 아니다. (김 전 회장이)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나이가 있지 않은가. 또한 사업을 한다는 얘기는 조직과 자금이 받쳐줘야 한다는 말인데, 현재 우리 연구회의 회원들 대부분은 따로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 연구회의 상근직원이라봐야 고작 5명(남 3명, 여 2명)이 전부다. 자금도 그렇지만 특히 조직면에서 (김 전 회장의 재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
Q. 현재 3조7000만원의 추징금을 갚고 있지 않은가?
A. 매달 고문료의 50~65%가 자동으로 은행계좌에서 추징금 납부 명목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장 회장은 현재 SK그룹의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그런데 3조7000만원이라는 금액을 따져보니 매일 100만원씩 갚아도 대략 1만년이 걸리는 액수다.
Q.추징금에 대해 할 말이 있을 것 같은데.
A. 대법원 판결까지 난 마당에 결과를 뒤집을 순 없지만 재산의 해외도피 혐의에 대해선 나름 억울한 점이 있다. 외환위기 당시 대우의 해외법인들은 현지 금융기관으로부터 차입해 사업을 벌였는데 IMF 지원 이후 해외 금융기관들이 대우의 현지법인에 차입금을 빨리 상환하라고 압박했다. 이에 차입비용을 줄이기 위해 한국 본사에서 해외법인에 지급보증을 섰고, 해외 차입금을 못 갚으면 본사가 부도날 처지여서 당시 본사가 100% 투자한 해외법인에 송금해 상환한 게 문제가 됐다.(당시 외환관리법상 해외에서 빌린 돈은 국내에서 못 갚게 돼 있다.)
Q. 내년도 계획은.
A. 내년 역시 올해처럼 '대우' 자료화 작업, 중소기업 지원 등에 신경쓰겠지만 무엇보다 청년 실업자들의 해외 취업에 가장 역점을 둘 계획이다.
장병주 회장은
1945년 서울 출생으로 경기고, 서울대 섬유공학과를 나와 1972년부터 상공부에서 근무했다. 1974년에는 대통령비서실, 재무부 과장으로 재임하다 1979년 (주)대우 화학부 부장으로 입사하면서 대우와 연을 맺었다. 이후 상무(철강금속 담당), 전무(기획조정실), 부사장을 거쳐 1998년 1월부터 1999년 11월까지 (주)대우 무역부문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다. IMF 외환위기 직후 금모으기 운동을 주도하는 등 대우 살리기에 앞장섰고 IMF 위기 속에서도 (주)대우의 무역흑자 달성을 주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