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의 이건희 삼성 회장 추대작전이 또 물거품이 될 전망이다. 전경련은 이 회장이 연말이나 내년 초쯤 회장직을 수락하는 것에 일말의 기대감을 갖고 있는 반면 삼성측은 ‘절대불가’를 못박고 있기 때문이다.
◆전경련의 이건희 회장 짝사랑
전경련은 지난 7월 조석래 회장(효성그룹 회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사퇴의사를 밝힌 이후 오매불망 이건희 회장만 바라보고 있다. 조 회장은 공식적인 사퇴 처리가 되지 않아 내년 2월 말까지 임기를 채을 전망이지만 역할로 본다면 지금 전경련 회장직은 거의 공석상태나 마찬가지다.
전경련 회장단은 조 회장이 사퇴의사를 밝힌 직후인 지난 7월15일 삼성그룹의 영빈관 격인 서울 한남동 승지원에서 모임을 갖고 이건희 회장을 전경련 회장으로 공식 추대한 바 있다.
이어 지난달 18일에는 정병철 전경련 상근 부회장이 정례 회장단회의 후 가진 브리핑에서 "당시(7월15일) 이건희 회장께 (전경련)회장직 수락을 부탁드렸고 이에 3~5개월 정도 시간을 갖자고 말씀하셔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며 재차 밑불을 살렸다.
정 부회장은 “(이 회장 수락 답변을)좀 더 기다려 보자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며 “(이 회장이) 수락해줬으면 좋겠다는 게 회장단들이 다 바라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꿈쩍도 않는 이건희 회장
전경련의 구애와 미련에도 불구하고 삼성측은 냉정하다.
삼성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이 3~5개월 정도 시간을 갖자고 말했다는 것은 정병철 부회장이 일방적으로 하는 얘기일 뿐"이라며 "7월 브리핑 때는 그런 말이 없더니 지금 와서 왜 그런 얘기를 꺼내는 건지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 본인이 전경련의 제안에 대해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 9월 일본 와세다대학의 명예박사 학위수여식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하는 자리에서 전경련 회장직 수락 의사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일이 하도 많아서, 그리고 건강도 별로 안좋고"라며 난색을 표한 바 있다.
삼성측은 "현재 삼성의 공식입장은 이건희 회장의 전경련 회장직 수락은 절대 없다는 것"이라며 "회장께서도 단호하게 안 하신다고 한 얘기니 (회장직 수락에 대한) 여지를 두지 말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번에도 이건희 회장이 전경련 회장직을 고사하면 전경련은 지난 2005년 추대에 이어 두번째 퇴짜를 맞는 셈이 된다.
당시 전경련은 강신호 회장과 현명관 상근부회장을 비롯한 회장단을 이끌고 한남동 승지원으로 이건희 회장을 찾아가 전경련 차기 회장직 수락을 수차례 요청했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그때도 건강상의 이유로 수락하지 않아 강 회장의 연임이 결정된 바 있다.
재계에서는 이건희 회장의 전경련 회장직 수락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시각이 없지 않다.
전경련이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로부터 시작된 태생적 이유로 이건희 회장이 나름대로 상당한 애착이 있다는 점, 최근 삼성그룹의 경영이나 인사문제와 관련해 이 회장이 공개적인 발언을 잇따라 쏟나내는 등 공격적인 대외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 등이 그 근거다.
최근 연말인사에서 자녀인 이재용-이부진-이서현 '3인방'을 동반 승진시키며 삼성의 ‘3세 승계’를 공식화하고 인사시스템을 정비한 만큼, 전경련 회장직 수행에도 충분히 눈을 돌릴 수개 됐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삼성측의 ‘불가 입장’이 확고한 만큼 이건희 회장이 전경련호를 지휘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희박해 보인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이 아들인 이재용 사장을 전면에 내세우겠지만 ‘젊은 삼성’을 만들겠다는 의지에 따라 2011년에도 광폭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며 “여기에 생각만큼 건강이 좋지 않은 점,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주력하는 점 등이 이 회장의 전경련호 탑승을 꺼리게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또 연장자 순, 이준용 회장 뽑을까
그렇다면 이건희 회장을 제외한 차기 전경련 회장 후보는 누구일까? 앞으로 전경련이 가장 고심해야 할 부분이다.
그동안 회장단 내부적으로는 4대 그룹 총수 가운데 한명이 회장직을 맡아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그러나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이미 고사 의사를 밝혔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1999년 반도체 빅딜 이후 오랫동안 전경련과 거리를 두고 있는 상황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아직 40대인데다 최근 SK텔레콤 등 주력계열사의 국세청 세무조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어서 회장직 수락 가능성이 낮다.
4대 그룹 총수마저 불발할 경우 결국 관례에 따라 나이가 많은 순서로 회장직 후보가 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전경련 부회장단은 4대 그룹총수를 제외하고는 이준용 대림산업 회장이 1938년생으로 72세의 최고령자다. 이어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1941년)과 박용현 두산그룹 회장(1943년),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1944년) 등의 순이어서 나이 순으로만 놓고 보면 이준용 회장이 후보로 추대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