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3일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 주관한 '2010 한국장애인인권상 시상식'에서 펼쳐진 석창우 화백의 수묵 크로키 시연회. 그의 붓놀림에 따라 행사장 안에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구부리고 있는 사람, 서 있는 사람, 팔이 없는 사람 등 화폭 안에는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한데 어울린 모습이 담겼다.
석창우 화백은 이날 시연 작품에 대해 "손이 없어도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 마음 그대로, 장애가 있는 사람들 모두 각자의 개성을 살려 즐겁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고 말했다.
◆ 손 대신 '몸'으로 그리는 예술혼
대한민국 1호 의수화가로 널리 알려진 석창우 화백. 그는 "팔이 없는데 어떻게 그림을 그리냐"는 세상의 고정관념에 통렬한 역설을 던진다.
"손이 없는 게 단점이자 장점이죠. 손이 있다면 그리고자 하는 심상(image)이 손목까지 오는 과정에서 대개 걸러지기 쉽죠. 하지만 손이 없다보니 기교가 안 들어가면서 순수한 선이 나오는 것 같아요."
아닌 게 아니라 손끝으로 그린 기교가 아닌, 의수를 끼운 몸 전체로 붓을 움직여 그려나간 그의 작품에는 진솔함이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하늘에서 건강한 두 팔을 다시 주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그는 에둘러 대답했다.
"몸으로 작업을 한 지 10년이 넘게 흘렀어요. 다시 손이 생긴다면 익숙해지기 위해 또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겠습니까." 양팔을 잃은 것이 운명이라면 의수로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숙명이라는 게 그의 철학이다.
"물에 떠 있는 얼음과 같이 자연스럽게 녹아 사라지는 존재가 되겠다"는 뜻으로 직접 지은 그의 호는 유빙(流氷). 그 삶의 철학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1984년 10월. 전기 기사였던 그는 전기 안전점검을 하다 고압 전기에 감전됐다. 2만2900볼트에 감전된 것. 두 팔이 전선에 척 들어붙는 순간, 몸 안으로 불덩이가 들어오는 것 같았다. 깨어났을 때 두팔은 이미 잘려나가고 없었다. 발가락도 두개가 없다. 그의 나이 29세 때였다.
"아들이 태어난 지 50일 만에 당한 사고였어요. 그 이후로 1년 반을 꼬박 병원에서 보냈죠."
청천벽력 같은 사고였지만 가족들은 그의 곁을 묵묵히 지켰다. 덕분에 일반인이 갑작스레 장애를 갖게 됐을 때 느끼는 "죽고 싶다"는 절망을 그는 무던하게 이겨낼 수 있었다. "워낙 아내가 사고를 덤덤하게 받아들였으니까. 저도 그렇게 됐죠."
그가 사고 이후 붓을 잡은 건 아들 때문이었다. 1988년 초 당시 4세이던 어린 아들이 그림을 그려달라고 졸랐다. 갈고리 모양의 의수에 볼펜을 끼고 동화책의 독수리를 그려줬다. "멋지다"며 좋아하는 아들의 모습에 그림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화실 문을 두드렸지만, 양팔이 없는 모습에 대부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이 화실 저 화실을 전전하다 한 서예화실에 인연이 닿았고, 서예를 배운지 1개월 만에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제의를 받았다.
하루 10시간 이상 붓질에 매달렸다. 동그란 붓이 갈고리에 맞지 않아 처음에는 마음대로 움직이기도 어려웠다. 붓이 자꾸 달아나 붓대에 구멍을 뚫어 고정을 시키기도 했다. 먹을 가는 일도 쉽지 않았다. "발로 먹을 가니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고, 그 발가락으로 다시 먹을 가니 피가 흘렀죠."
인내의 과정은 참으로 고됐으나 열매는 달았다. 1991년 전라북도 서예대전에 입상했다. "5년 안에 손 있는 사람보다 잘 그리겠다고 다짐했는데 3년 만에 이룬 것이죠." 심사위원들도 깜짝 놀랐다. 작품을 보고 뽑았는데, 작가가 양팔이 없다니. 석 화백의 작품과 삶이 세상의 조명을 받는 계기가 됐다.
동양의 서예에 서양의 크로키를 접목시킨 독특한 화법도 주목 받았다. 이른바 '수묵 크로키'라는 독창적인 분야를 개척한 것. 남들이 연필로 크로키를 그린다면 그는 붓으로 크로키를 그렸다. "크로키의 간결함이 인상적이었죠. 짧은 순간에 포착하는 몸동작에 삼라만상(森羅萬象)을 다 담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의 수묵 크로키 작품 속에는 축구나 경륜 같은 스포츠에서부터 누드, 연극 등 예술혼까지 다채로운 주제가 녹아있다. 석 화백이 특히 애정을 보이는 수묵 크로키의 주제는 스포츠. 김연아 선수의 트리플 러츠 등 스포츠선수들의 땀과 열정의 현장을 화폭에 옮기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원래 운동을 좋아했어요. 화폭을 통해 자유를 분출하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죠."
석 화백은 지금까지 29회의 개인전과 50여 회의 시연회를 가졌다. 그룹전은 수백회가 넘을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내년 봄에도 대규모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는 그는 "세계 곳곳의 현장을 온몸으로 누비며 작품 활동을 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그의 활약은 장애에 대한 세상의 두터운 편견을 깨는 데 일조하는 일종의 장애운동이기도 하다. 2008년에는 장애인문화예술대상(문화체육부장관)을 수상했다. 그러나 세간의 특출 난 장애인을 부각하는 '영웅주의'에는 손사래를 친다.
"왜 저 사람은 장애를 갖고도 저렇게 활동하는데, 당신은 못하냐. 그런 비교는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혼자서는 외출할 수 없는 제가 이렇게 작품 활동을 하는 건 아내가 그의 생활을 버리고 저한테 전념했기 때문입니다."
"가족과 함께 하기에 사고 이후 다시 사회로 나갈 힘을 얻었다"는 석 화백. 그는 그처럼 중도장애를 갖게 된 다른 이들에게 진심어린 충고를 남겼다. "예전의 삶을 버리고 다시 시작하세요. 장애 이후를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무(無)에서 하나하나 이뤄가는 성취감이 짜릿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