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원전 폭발 등 대지진의 후폭풍이 예사롭지 않은 상황이므로 국내외 경제에 미칠 충격을 정확히 내다보는 것은 힘들다. 그렇지만 과거 일본에서 있었던 대지진 사태와 지금의 상황을 비교하고, 현재 글로벌 경기를 고려하면서 재테크의 방향을 어느 정도 잡아볼 필요는 있다.
일본 대지진과 관련한 증시전문가들의 분석과 전망을 통해 주식, 펀드, 채권 등에 대한 유효한 투자전략을 짚어보자.
◆글로벌 경제에 충격은 제한적
이번 대지진은 1995년 1월 고베 대지진을 떠올리게 한다. 금융권에서도 대지진이 경제 및 증시에 미칠 영향을 고베 대지진 때와 비교해 분석, 전망하고 있다.
전지원 키움증권 연구원은 고베 대지진의 여파로 일본 주식시장이 약 6개월 동안 조정양상을 보였지만, 글로벌 증시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이었다고 분석했다. MSCI 세계 지수(MSCI AC WORLD지수)는 오히려 상승했고, MSCI 이머징 지수 및 MSCI 이머징 아시아지수는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
이번 사태도 글로벌 경제에 부정적인 요인만은 아닐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국제유가 급등세가 완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대 원유 소비국인 일본의 에너지 수요가 감소할 것이기 때문이다. 전 연구원은 "최근 글로벌 주식시장의 최대 조정요인이 국제유가 급등이었는데 일본 대지진이 글로벌 증시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일본 경제가 장기적으로 침체될 가능성도 크지 않다. 오히려 한분기가 지난 후 지진복구를 위한 경제활동이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전 연구원은 "고베 대지진 때도 경제성장률이 1995년 2분기를 저점으로 3분기 연속 상승했다. 정부지출이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엔화 강세 현상도 예상된다. 이영원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고베 대지진 당시에도 지진 직후 3개월간 엔화 강세현상이 나타났다"며 "엔화 강세 여부는 지진 피해규모가 일본 경제가 감당할만한 수준 내로 제한될 수 있는지에 좌우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엔화강세가 단기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또 국내 및 글로벌 경제의 안정을 위해선 엔화 약세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 상황. 황나영 토러스투자증권 연구원은 "천문학적인 복구비용 투입과 경기 부양을 위한 일본 정부의 양적완화 정책에 의해 엔화 강세가 장기화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엔화 강세로 원자재가격이 추가 상승할 경우 일본 경제의 회복은 더 느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엔화 강세 억제책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그는 "엔화 추가 강세 시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을 심화시키고, 미국 시중금리 역시 상승시켜 글로벌 경기회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유-철강-자동차 관련주 주목
국내 증시도 대지진의 충격을 피하지 못했다. 대지진이 발생한 11일 코스피지수는 1955로 마감했다. 전날보다 26포인트 떨어진 수치다. 14일에는 1971로 마감하며 회복 기미를 보였지만, 15일에는 1923포인트까지 곤두박질쳤다. 그래도 16일과 17일에는 각각 1957과 1959로 마감하면서 안정될 기미를 보였다.
반면 코스닥시장은 대지진이 발생한 후 일주일 동안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11일에는 전날보다 4포인트 떨어진 518로 마감한 데 이어 14일과 15일에는 각각 502포인트와 489포인트까지 떨어졌다. 그리고 16일 492까지 오르며 회복세를 보이나 싶었지만, 17일에는 다시 487까지 밀리고 말았다.
그렇지만 증권업계는 국내증시의 장기적인 추세를 훼손하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양경식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고베 대지진 당시 단기적으로 국내외 증시는 변동성위험에 노출되며 급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미국은 상승 지속, 한국은 저점을 확인하는 과정, 일본은 장기 하락세로 상이한 모습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베 대지진 후 외국인 매도가 일정기간 지속되기도 했지만 추세적인 매도는 아니었다. 이후 반도체 등 기업 펀더멘털 개선을 반영하며 대규모 순매수로 반전했다"고 덧붙였다.
투자전략과 관련해선 시장보다는 섹터로 접근할 것을 권했다. 특히 자동차, 화학, 철강, 반도체업종 등의 수혜를 예상했다. 양 연구원은 "다양한 불확실성 변수에 노출돼 있으므로 업종별 명암이 뚜렷할 것"이라며 "시장 전반이 아닌 수혜업종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고 당부했다.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정유, 철강, 자동차를 3대 수혜업종으로 압축했다. 강 연구원은 "피해가 예상되는 일본 기업들이 대부분 국내 기업들과 경쟁관계에 있으므로 관련 업종은 단기적인 수혜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그는 "정유 업종의 경우 일본의 원전 가동중단 및 경쟁 정유공장 가동차질로 인해 경유, 벙커C유 판매량 증가 및 마진 확대의 반사이익을 볼 전망이다. 또 빠른 복구 작업에 의한 철강수요 증가는 철강업종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자동차 산업의 가동손실, 수출지연 등에 따라 글로벌시장에서 한국 자동차기업의 수혜도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와 반대로 항공운송 및 유틸리티 업종 등은 대지진으로 인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대표적인 업종으로 꼽힌다. 또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국내 원전 관련주의 가격도 떨어졌다. 대표적인 기업이 한전KPS, 한전기술, 모건코리아, 비에이치아이 등이다.
반면 화석연료에 수요가 몰릴 것이란 예상에 따라 탄소배출 관련주들은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 이건산업, 휴켐스, 에코프로, 후성 등이 최근 관심을 받고 있는 종목들. 다만 원전 관련주의 가격 하락은 심리적 요인에 의한 단기적인 현상이란 의견도 있어 앞으로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주식형 및 원자재펀드 비중 확대
가장 속 타는 투자자는 일본펀드에 가입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동안 손실만 컸던 일본펀드가 조금이라도 회복하기 기다렸겠지만, 이번 대지진을 계기로 일본펀드의 비중 축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임세찬 하나금융그룹 웰스케어센터 차장은 "그동안 엔화강세에 따른 수출부진, 높은 정부부채 등을 이유로 일본 증시에 대한 투자비중 축소 관점을 유지해 왔다"며 "이번 대지진으로 일본 증시에 대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 그는"일본펀드의 수익률 회복 속도가 완만할 전망이므로 반등 시 일본펀드 비중을 축소하는 전략을 권한다"고 덧붙였다 .
그는 대외 불확실성으로 인한 1분기의 주가 조정 국면이 국내주식형펀드의 저가 매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임 차장은 "향후 주가 상승 시 기대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국내성장형펀드나 압축포트폴리오펀드 등에 대한 비중 확대가 바람직하다"며 "해외주식형 중에선 미국 및 원자재 펀드의 비중을 늘려도 좋다"고 권했다.
김후정 동양종금증권 펀드애널리스트 역시 "국내증시도 일본의 영향을 받겠지만 미국 경기회복을 기대할 수 있는 만큼 국내주식형펀드의 저가매수 기회로 봐도 좋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일본에서 진행될 대규모 재건사업을 생각했을 때 원자재 가격 상승이 기대되므로 원자재펀드의 비중 확대도 생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3월17일 현재 일본펀드(95개)의 최근 1주일 평균 수익률은 -12.43%다. 같은 기간 다른 해외펀드들이 적게는 -1% 안팎, 많게는 -5%대의 손실을 기록한 것에 비하면 대지진의 여파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개별펀드별로는 '우리일본SmallCap증권투자신탁 1[주식]Class C 1'와 '신한BNPP탑스일본증권투자신탁 1[주식-재간접형]'가 1주일간 각각 -18.08%와 -18.18%의 수익률을 기록, 대지진 발생 후 가장 손실이 큰 일본펀드인 것으로 조사됐다.
◆단기채권보다 중장기채권에 관심
채권 투자와 관련해선 중장기 채권에 관심을 가질 만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이정범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 대지진이 국제금융시장 불안으로 이어질 경우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높아지면서 국내 채권금리가 일시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는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국제금융시장 신용경색으로 확대되지는 않을 것으로 진단하며, 중장기 채권시장에 관심을 가지라고 당부했다.
이 연구원은 "대지진은 글로벌 경기의 불확실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중장기적인 금리하락 요인"이라며 "향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감안하면 정책금리에 민감한 단기금리보다는 경기둔화 기대에 수혜를 받을 수 있는 중장기 채권이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국공채 3년 금리의 목표금리가 3.6% 이하로 하락할 경우 비중을 줄이고, 5년 이상 중장기채권의 비중을 늘릴 것을 권한다"고 덧붙였다.
박종연 우리투자증권 연구원 역시 대지진이 채권시장에는 우호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보며, 중장기 채권시장에 주목할 것을 권했다. 박 연구원은 "대외 불확실성 증가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심리는 채권시장에 우호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다만 중단기 영역은 스프레드 축소로 추가강세 여지가 적어 중장기물에 대한 투자가 유망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언제든지 위험관리에 나설 수 있도록 중장기물 중에서도 유동성이 좋은 5년물을 중심으로 단기 딜링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