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에서도 그렇다. 한때 건설·무역주와 함께 증시 상승세를 이끌던 트로이카주로 불렸던 은행주는 온데간데없다. 남은 것이라곤 투자자들의 싸늘한 시선뿐이다. 올해 들어 은행주 수익률은 -10%에 달한다.
이런 부진이 어제오늘 일만은 아니다. 국내 증시가 외국인에게 문호를 개방한 1992년 이후를 보자. 이때부터 20년 동안 코스피지수가 3.3배 오르는 동안 은행업종지수는 오히려 52.8% 하락했다. 보험주가 10배 올랐고 증권주는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지만 은행주가 '급락'하면서 금융업종지수도 반토막이 났다.
이 기간 철강·금속업종지수가 12배 넘게 올랐고 화학업종지수와 전기·전자업종지수는 각각 11배, 9배 오른 데 비하면 부진이 더 두드러진다. 최근 은행주 투자자들의 한숨이 있기 한참 전부터 은행주 투자의 '쓴맛'이 계속됐던 셈이다.
◆은행주, 나홀로 반토막…왜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은행의 최대 고객인 기업이 예전만큼 은행에 기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일단 1997년 IMF 외환위기로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통해 대대적으로 체질을 바꾸면서 내부자금이 늘었다. 짜임새 있는 '몸매'로 탈바꿈한 만큼 새는 돈은 줄고 쌓이는 돈은 늘면서 은행에서 돈 빌릴 일이 줄었다는 얘기다.
필요한 돈을 구하는 방식도 다양해졌다. '은행 밖' 자금조달 비중이 늘었다. 금융권에 따르면 1980년부터 외환위기 전까지는 은행을 통한 자금조달 비중이 평균 36%에 달했지만 외환위기 이후부터 그 비중이 낮아지고 있다. 이보다는 주식이나 채권 발행 등 직접금융 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늘어 42% 안팎에 이른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에 굽실거리며 돈을 빌리느니 직접 융통하겠다는 얘기"라며 "그만큼 국내 채권시장이나 증시가 성장했다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이익이 늘어난 데 비해 투자는 상대적으로 줄면서 전만큼 은행 돈이 많이 필요하지도 않게 됐다. 설비투자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0~1996년 12%까지 올랐다가 그 이후 9% 정도로 떨어졌다. 이러다 보니 은행 대출에서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1996년 71%에서 2002년 52%까지 하락했다.
저금리 상황이 10년여째 이어지고 있는 것도 은행 입장에선 아픈 부분이다. 외환위기 전 국내 경제는 만성적인 자금 부족과 고금리의 경제였다. 고금리의 원인은 저축에 비해 투자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투자, 즉 돈의 수요가 저축(공급)보다 많았기 때문에 고금리가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외환위기로 기업의 줄도산이 빚어지면서 저축률이 투자율을 넘어섰고 1998년 15%를 웃돌던 대출금리는 2002년 6~7%까지 떨어졌다. 대표적인 시장금리인 국고채 3년물 수익률은 1998년 12.9%(연평균)에서 2010년 3.7%로 하락했다. 저금리가 이어지면서 가계마저 은행에서 등을 돌리자 은행에는 이중고가 되고 있다.
일각에선 은행 스스로 역량을 키우지 못했다는 책임론도 나온다. 삼성전자, 현대차, LG화학 등이 해외로 진출해 얻어맞고 깨지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동안 고금리의 열매 따먹기에 안주했다는 지적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꾸준히 메카뱅크론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인식에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은행 담당 애널리스트는 "솔직히 지금 상태로 계속 간다면 이렇다 할 실적 모멘텀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단기매매 대응 노려볼 만
이런 이슈가 짧은 시간 안에 개선되긴 어려운 만큼 앞으로 1~2년 안에 은행주가 증시 주도주로 올라서긴 힘들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다만 단기적으로 보면 하반기 주가 상승을 노려볼 만하다는 전망이 적잖다.
올해 들어 은행주 주가를 발목잡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에 따른 자산건전성 우려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PF 전담 배드뱅크로 이런 우려가 해소되면 은행주 반등을 기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외환위기와 대우사태 당시 공적자금을 조성했을 때도 은행주는 급등하거나 강세 전환했다.
구경회 현대증권 연구원은 "부동산 PF 정상화를 위해 배드뱅크가 설립되는 다음달쯤엔 은행주가 바닥권을 벗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황석규 교보증권 연구원도 "최근 정부 대책과 은행권의 보수적인 충당금 적립 현황을 감안할 때 5~6월에는 은행주가 반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3월 단행된 금리 인상 효과가 2분기부터 본격적으로 반영될 것이란 기대감도 나온다. 전재곤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은행권에서 명목성장률 수준의 무난한 대출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경쟁심화에 따른 조달금리 상승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은행의 이자이익 개선세는 2분기에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 하반기 증시 재상승 국면이 찾아오면 은행주도 동반 오름세를 보일 가능성을 전망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영익 한국창의투자자문 대표는 "2000년 이후 통계를 분석해 보면 경기선행지수가 1% 증가했을 때 코스피는 3.0%, 은행주는 3.1% 올랐다"며 "경기선행지수가 5월 이후 증가세로 돌아서면 하반기를 기대해 볼 만하다"고 밝혔다.
한편 현대증권, 신한금융투자, 메리츠종금증권 등 대부분의 증권사는 이달 들어 낸 보고서에서도 은행업종 '비중확대'를 유지했다. 삼성증권, 하나대투증권, 대신증권, 우리투자증권 등은 이달엔 아직 보고서를 내지 않았지만 지난달 보고서에서 '비중확대'를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