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40대 초반의 직장인 A씨는 며칠 새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건강하시던 어머니께서 갑작스럽게 쓰러지셨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다행히 수술 후에 병이 호전됐지만 문제는 입원비와 수술비였다. 급하게 200만원이 필요하지만 통장 잔고는 그런 여유가 없었다. 마땅히 빌릴 곳도 없어 A씨는 결국 시중 은행의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했다. 급한 대로 은행에서 돈을 빌리고 난 후 A씨의 비상금은 이 마이너스 통장에서 해결했다.

#2. 30대 직장인 B씨는 요새 누구 결혼한다는 소리가 제일 무섭다. 가을이 되니 하나 둘 결혼해 축의금만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9, 10월 2달간만 해도 6번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생활비에서 축의금만으로 30만원을 지출했다. 개그프로그램인 '애정남'이 정해준 대로 성수기 시즌이니 3만원만 내자니 그동안의 관계가 각별하게 느껴진다. 눈 딱 감고 경조사를 피하자니 사람의 도리가 아닌 것 같다.

누구나 살다보면 이와 같이 예기치 않은 일들이 발생한다. 고정지출, 저축과는 별개로 축의금, 병원 등 뜻하지 않은 지출이 생기기 마련이다.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경조사를 대비해 평소 지출에서 예산을 잡아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대비해 미리 유동자금을 확보해 놓는 것이 필요하다. 재무설계사들은 저마다 "비상금 통장을 만들라"고 입을 모은다. '몇 백만원 씩 노는 돈을 만들 바에야 투자하고 말지'하고 생각한다면 오산. 비상금 통장은 돈을 묶어두기도 하지만 신용카드를 사용을 방지해 전체적으로 안정된 재무 설계를 돕는다. 즉 재테크의 시작이 비상금통장을 만드는 것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왜 만들어야 하나?
 


위 사례처럼 급한 돈이 필요한데 빌릴 데가 마땅치 않으면 직장인들은 마이너스 통장을 쉽게 개설한다. 마이너스 통장은 은행에 잔고가 없어도 약정한 한도까지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어 애용하는 직장인들이 많다. 특히 대출보다 개설 절차가 간편해 급한 돈이 필요할 때를 대비, 당장은 쓸 필요가 없어도 미리 마이너스 통장을 열어두기도 한다. 하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개설한 마이너스 통장이 결국엔 저축 습관을 해치는 경우가 많다.

<내통장 사용설명서>의 저자 이천 희망재무설계 대표는 "이자를 내고 쓰는 비상금 통장이 아니라 내 돈으로 쓰는 비상금 통장을 만들어야한다"고 조언했다. 

여유가 있을 때 3~6개월 치의 생활비를 모아놓을 것을 주문했다. 이는 직장을 그만두더라도 다음 직장에 들어가기 전까지 생활할 수 있는 자금으로 쓰일 수 있다. 퇴직까지 염두해 언제 어떻게 벌어질지 모르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다.

또 비상금통장을 적절히 활용하면 자신의 재무 계획을 흐트러뜨리지 않을 수 있다. 급한 일이 생겼을 때 펀드나 적금을 중도 해지할 필요가 없다. 이밖에 비상금통장으로도 돈이 빠져 나가 지출 통장의 잔고를 적게 해 심리적인 억제심이 발동해 과다지출을 막을 수 있다.
 
◇ 어떤 통장을 만들까?

통장을 여러 개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금리의 높고 낮음 보다 타행이체 수수료가 붙지 않는지의 여부다. 시중 은행은 금리가 낮아 타행으로 이체 수수료로 더 손해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재테크 전문가들은 비상금 통장은 다른 통장과 다른 은행에 개설하라고 말한다. 월급통장이나 지출통장은 자주 조회 잔액을 조회해 비상금통장을 같은 은행에 열면 비상금 통장에 자꾸 손이 가게 된다. 돈이 쌓여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편해져 계획 없이 지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 비상금 통장도 스스로 돈이 불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하루만 맡겨도 이자를 지급하는 CMA통장이 적합하다. 비상금통장의 특성상 CMA 체크카드를 만들지 않는 것이 비상금 운용에 효과적이다. 체크카드를 만들면 제2의 지출통장이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급하게 비상금 통장에서 돈을 빼서 사용한 후에는 다시 채워 놓아야 또 다른 비상 상황에 대비할 수 있게 된다. 

■아직도 내 비상금통장이 마이너스 통장이라면?

마이너스 통장의 유혹을 끊기는 쉽지 않다. 돈이 빠져나가는 것이 보이지 않아 소비를 부추긴다. 하지만 마이너스 통장은 저축 습관을 해치는 주범임을 명심해야 한다. 마이너스 통장의 이자는 7%로 시중 은행의 적금 금리보다 높다. 마이너스 통장에 돈을 빌리면 이자 부담 때문에 저축을 미루고 마이너스 통장부터 메우게 된다.

이천 대표는 "갚는 것에 목표를 두지 말고 저축 계획을 세워 갚아나가라"며 "저축 없이 급하게 돈을 갚겠다는 생각보다는 갚을 계획을 천천히 길게 세우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다. 이 대표는 "저축과 빚은 별개"라며 "빚이 있더라도 저축을 해야 빚을 갚고서도 내 돈을 모을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다른 재테크 전문가는 돈을 갚아나가면 마이너스 대출 한도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도를 줄이지 않고 돈만 넣어두면 보통 한 달 내에 다시 쓰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