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은 지난 3월 공채(1980년 입행, 행원) 출신의 조준희 행장을 은행장으로 임명했다. 주로 차관급 관료 출신들이 앉았던 국책은행장 자리에 행원 출신이 선임된 것은 조 행장이 처음이었다. 창립 50년 만에 배출된 첫 공채 내부행장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무엇보다 그동안 관행처럼 여겨진 밀실인사를 타파할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졌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4월부터는 기업은행과 자회사에 정부 여당과 청와대 출신의 인사가 속속 자리했다. 조용 기업은행 사외이사(한나라당 대표특보 출신), 이교관 IBK캐피탈 감사(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선임행정관 출신), 이재환 IBK신용정보 대표이사(청와대 정무수석실 정무2비서관)와 류명열 부사장(한나라당 상근전략기획위원회 위원), 이진동 IBK자산운용 사외이사(18대 총선출마 후 낙선)까지 올 들어 5명의 정부·여당 출신이 자리를 매웠다.
이에 대해 기업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주인이기 때문인 것 같다"며 "올해만 유독 많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유택윤 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계열사까지 자리가 워낙 많기 때문에 낙하산 인사를 100% 배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특히 사외이사는 실질적으로 판단할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유 위원장은 "일정부분 유관업무를 했거나 경험했던 인사는 면밀히 검토한 후 찬성한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임명된 이들이 관련 업무를 수행한 경험이 있느냐는 것이다. 사외이사는 기업경영을 감시하는 등 포괄적인 업무를 한다지만 감사와 대표의 자리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기업은행은 이들 5명 외에도 수차례 정부·여당 출신의 인사를 내정하려다 노조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올해와 내년 초에 있을 기업은행의 인사에도 현 정부 인사가 자리를 메울지 귀추가 주목된다. 올해 12월에는 IBK투자증권의 사외이사가, 내년 초에는 IBK자산운용 대표이사와 부사장, 사외이사 인사가 예정돼 있다. IBK자산운용은 이진동 씨가 지난 11월1일 사외이사에서 물러난 바 있다.
유 위원장은 "얼마 전 청와대가 감사원 출신의 국책은행 이동을 막아놓고 청와대 출신들을 대거 내려보낸 것이 문제"라며 "앞으로 인사에 대해 면밀히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은행 금융권은 낙하산 인사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대한주택보증공사가 낙하산 논란이 일고 있는 것. 대한주택보증은 오는 12월 임기가 만료되는 사장의 후임을 정하기 위해 10월4일부터 18일까지 2주에 걸쳐 사장 모집공고와 접수를 받기로 했다. 하지만 모집공고 전부터 국토해양부 본부장 출신으로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원회에서 활약했던 S씨의 내정설이 언론을 통해 불거졌다.
이후 모집공고를 시작한지 채 이틀도 지나지 않아 대통령의 또 다른 측근인 현대건설 부사장 출신의 김선규 씨가 내정자로 변경됐다는 설이 돌고 있다. 대한주택보증 노조 측은 "정권차원에서 이미 금융과 보증에 비전문가인 현대건설 출신의 김선규 씨를 낙점하고 이른바 현대건설 낙하산 인사를 강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