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중소상인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시민사회단체 운영진 신모씨(44)는 2009년 8월 서울의 한 기업형슈퍼마켓(SSM)에 대한 반대시위를 벌이다 영업을 방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신씨는 이 혐의로 2011년 7월 대법원으로부터 벌금형을 확정 받았다.
한씨는 한 방송사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속 인물이고, 실존인물인 신씨가 벌금형을 받은 것은 1년여가 훌쩍 지난 일이다. 그렇지만 한씨와 신씨가 겪은 일을 가상과 과거의 것으로 치부하고 넘길 수는 없다. 거대자본을 앞세운 공룡기업에 생존권과 사회적 지위를 위협받는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 현실 속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전국 곳곳에서는 SSM 반대집회가 열리고 있고 동네 빵집을 둘러싼 다툼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대형유통업체와 정부·지자체의 영업규제 싸움도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부터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면서 협동조합이 대기업으로부터 중소상인이나 사업자 또는 사회적약자들의 생존권을 지켜내기 위한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골목상권의 대표로 꼽히는 슈퍼마켓 상인들이 모여 만든 슈퍼마켓협동조합은 대기업에 집중되는 부(富)를 지역주민들에게 돌려줌으로써 지역경제 및 사회발전에 이바지할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제주도슈퍼마켓협동조합은 기존에 운영 중인 50여개 슈퍼마켓협동조합 가운데서도 가장 성공적인 조합으로 평가된다.
◆도내 슈퍼 절반이 조합원…SSM은 제로
제주도슈퍼마켓협동조합은 전국적으로 대형 유통업체의 골목상권 잠식이 확대되는 상황에서도 대기업 못지않은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다. 다른 곳에서는 SSM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지만 제주도에는 SSM이 한군데도 없다. 제주도슈퍼마켓협동조합 덕분이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1년까지 5년 동안 전국에서 SSM의 숫자는 4배 가까이 늘었고 같은 기간 영세슈퍼는 해마다 약 4000개씩 감소했다.
슈퍼마켓협동조합 제1호인 제주도슈퍼마켓협동조합은 지난 1989년 제주지역 영세상인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설립됐다. 처음 46명이 모여 시작한 제주도슈퍼마켓협동조합의 조합원수는 2012년 12월 말 현재 준조합원 90여곳을 포함해 총 300곳이 넘는다. 제주도슈퍼마켓협동조합에 따르면 제주도 내 슈퍼마켓의 45~50%에 달하는 수치다.
매출액은 지난 3년간 350억원가량을 꾸준히 기록했다. 2010년부터 작년까지 매출액이 각각 348억원, 359억원, 345억원이다. 제주도슈퍼마켓협동조합이 양호한 성과를 유지하고 있는 것과 달리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은 제주지역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약 57만여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제주도에는 대형마트가 7개, 대기업이 운영하는 24시간 편의점이 600여개 정도 있다. 이 중 대형마트는 2곳을 제외하고 적자를 기록 중이며 편의점도 100여곳 이상 적자를 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물류센터, '다윗의 칼'
제주도슈퍼마켓협동조합이 대기업 계열 유통업체들과의 싸움에서 경쟁력을 발휘하는 가장 큰 원동력은 대기업에 뒤지지 않는 물류시스템이다.
이 협동조합은 제주시 이호동에 2개의 물류센터와 4.5톤 트럭·1톤 냉동차 등 총 29대의 배송차량을 보유하고 있다. 물류센터에서는 각종 공산품은 물론이고 채소와 수산물 등 신선식품을 포함해 7000여종의 품목을 제주지역 내 슈퍼조합 공동브랜드 '코사마트'(KOSA MART)와 '나들가게'에 공급한다. 조합원들이 필요한 품목을 오후 3시까지 주문하면 물류센터는 다음날 아침에 차량으로 영업점까지 직접 배송해준다. 제주도 일선 슈퍼마켓에서 취급하는 품목의 40%는 이런 과정을 거친 제품들이다.
조합원들에게 물건을 직접 배송해주는 시스템은 제주도슈퍼마켓조합이 갖고 있는 최대 강점이다. 제주도 외에도 전국의 슈퍼마켓조합들이 20여곳의 물류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직접 물건을 배달해주는 것은 제주도가 유일하다. 나머지 조합은 슈퍼마켓 점주가 찾아와 물건을 사가야 하는 구조다.
또 조합이 필요한 물품을 대량으로 공동구매하기 때문에 조합에 가입한 슈퍼마켓들은 최소 15% 낮은 단가로 물건을 공급받을 수 있다. 이로 인해 동네 슈퍼들은 대기업 유통업체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됐고 물류비용도 절감돼 도내 물가안정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조욱 제주도슈퍼마켓조합 총무팀장은 "우리 조합이 대형유통업체에 맞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물류센터를 통한 공동구매 및 직접 배송에 있다"며 "공산품과 신선식품, PB상품에 대한 담당자를 따로 둬 지역에 맞게 세분화해 매일 배송하고, 각각의 조합점에 대한 배송담당자도 따로 있어 상황에 맞게 유기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쌀과 우유, 건어물, 화장지, 농산물 등 20여종의 자체브랜드(PB) 상품을 개발·공급하고 있다는 점도 조합의 경쟁력을 높인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지자체, 적극 지원 있어야"
제주도슈퍼마켓조합 측은 협동조합이 지역상권, 나아가 주민들의 생존권을 지키고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협동조합에 대한 정부나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
했다.
조 팀장은 "물류센터를 갖추고 판매자와의 직거래를 통해 어느 정도 구매단가를 낮추고는 있지만 자금력이 풍부하지 못해 한계가 있다"며 "정부나 지자체 등이 적극적으로 지원해줘 자금력을 키울 수 있다면 더 낮은 가격으로 물건을 구매·공급해 지역민들의 경제활동과 물가안정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도슈퍼마켓조합은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범에 맞서는 가장 성공적인 협동조합 중 하나로 평가 받으며 20여년 넘게 운영되고 있지만,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물류창고 두곳을 세우면서 국가와 제주시로부터 사업비를 일부 지원받은 것이 전부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6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