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검은색 탄가루가 날리던 마을이었다. 지금은 알록달록 벽화들이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목숨을 담보로 가족을 부양하던 광부의 이야기와 독특한 탄광촌 생활 문화를 그대로 엿볼 수 있는 곳, 상장동 벽화마을에서 잊혀지는 것들을 생각해 본다.
벽화골목
◆검은 진주 캐내던 탄광의 메카
80년대는 탄광의 중흥기였다. 전국적으로 340여개 탄광이 있었고, 그 중 강원도에 170여개가 매일 3교대로 탄을 캐 올렸다고 하니 이곳이 얼마나 바쁘고 활기찼을 지 짐작이 간다.
게다가 광부는 고수익을 올리는 직업이었다. 대졸 초임이 5만원 안팎이던 시절, 탄광노동자의 월급이 20만원가량이었다니 지금의 88만원 세대 기준으로 셈을 해보면 350만원이 넘는다는 계산이다.
그러니 고학력 노동자도 많았다. 80년대 초에 칼라TV가 나왔고 집에 칼라TV와 전화기가 있으면 부자였는데, 태백 사택에는 집집마다 이런 가전제품을 갖추고 살았단다. 검은 얼룩을 만들던 석탄은 이들에게 탄이 아니라 검은 진주였다. 오죽하면 전설의 강아지 ‘만복이’ 이야기가 나왔을까. 탄광 중흥기에 마을이 부유하던 시절에는 지나가는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말이 있다.
이곳 상장동 벽화마을은 과거 최대의 민영탄광이었던 함태탄광과 동해산업 등의 광부 4000여명이 살던 광산 사택촌이다. 저탄장에서 탄을 실어 나르던 문곡역에 자리잡은 번화가로, 대포집과 식당 등이 즐비했던 규모가 큰 마을이었다.
지금은 슬레이트 지붕의 1층짜리 집들이 옹기종기 자리한 조용한 마을이다. 현재 태백에는 4개 탄광만이 남았고, 이곳엔 한창 때의 10분의 1인 400여명의 주민만 남아 있다. 90년대 석탄합리화 정책으로 대부분의 탄광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과거 바쁘게 탄을 나르던 문곡역도 폐역이 됐고, 이따금 여행자들만이 이 거리를 왁자하게 만든다.
◆치열했던 탄광촌의 삶을 본다
벽화는 이 마을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목숨을 담보로 출근하는 가장이 매일 살아 돌아오기를 기도하고, 무사히 귀가했음에 감사하던 시절이었다.
질 좋은 탄을 캐는 탄광일수록 일산화탄소의 양이 많고, 그만큼 사고 위험이 많다는 뜻이다. 막장에서는 갑자기 갱도가 무너지거나 가스가 폭발해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았고 지하수가 터지면 석탄이 죽처럼 되어 사람을 매몰시키는, 이른바 ‘죽탄 매몰사고’도 많았다 한마디로 산사람이 매장되는 경우다. 그렇기 때문에 밥을 먹다가도, 숙제를 하다가도 문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모두가 뛰어 나왔다고 한다. 사고가 아니어도 진폐증에 걸려 오랫동안 질병에 신음하다 죽는 경우도 허다했다. 자신의 생명을 걸고 가족을 책임진 우리 가장들의 모습이다.
탄광촌의 생활은 염원을 담고 있다. 광부들이 출근하는 시간에는 길에 부녀자나 어린 아이들이 길을 막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출근길에 행여라도 정신이 산란해지거나 좋지 않은 기운을 느끼게 하지 않으려 했던 배려다. 또 가장의 신발은 코를 들어오는 방향으로 놓았다고 하는데 반드시 살아서 집으로 다시 돌아오라는 기다림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극도의 스트레스만큼 음식과 유흥문화도 발달했다. 이곳에서 ‘돌구이’라고 하는 것은 삼겹살을 돌판에 구워 먹는 것이다. 삼겹살 기름이 목에 낀 먼지를 씻어 내린다는 속설은 진위여부와 관계없이 갱도에서 나온 광부들이 삼겹살에 탁주 한잔을 곁들이며 그날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보통 ‘언제 식사나 한번 하자’ 라는 인사말 대신에 이들은 ‘언제 돌구이 한번 하자’라는 인사를 했다고 한다. 신참 신고식도 돼지고기와 관계가 있다. ‘햇돼지’는 이제 막 광부가 된 초보를 뜻하는데, 처음 광부가 됐을 때 신참들이 선배들에게 인사하며 한턱 내는 날을 ‘햇돼지 잡는 날’이라고 했다고 한다.
물닭갈비도 유명하다. 원래 닭갈비는 닭고기를 매콤한 양념에 볶아 먹는 것이다. 그런데 하루 종일 먼지 먹은 광부들의 입에는 볶음 음식이 뻑뻑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래서 닭갈비에 육수를 부어 먹기 시작했다는 것. 여기에 집집마다 양념 비법이나 첨가하는 나물이나 야채를 달리 해서 개성있게 발달했다. 물닭갈비는 차림새가 푸짐하고 전체적으로 양념이 강한 편이다. 강한 양념은 태백지역 음식의 특징이기도 하여 이 또한 광부들의 입맛에 맞춘 것이다.
태백한우 또한 빼 놓을 수 없다. 태백한우는 특히 갈비살이 유명해 생고기를 연탄불에 구워먹는 맛이 일품이다. 구이는 불맛이라 하듯 너무 세지도 약하지도 않은 연탄불에 육즙을 모아가며 익혀 먹는 것은 늦게까지 봄이 오지 않는 태백과 꽤 어울리는 메뉴이다.
◆못다한 이야기 들려주는 석탄박물관
석탄박물관은 생생했던 벽화마을의 이야기를 정리해 들려준다. 전시실 외부에 있는 갱도 입구는 재현이 생생해 정말 저 굴을 따라 들어가면 컴컴한 막장에 다다를 것만 같다. 전체적으로 전시실도 짜임새 있게 구성돼 있어 태백산도립공원 입장료로 함께 이용하기에 조금 미안할 정도이다. 그러니 빠트리지 말고 관람해야 할 코스이다.
지질과 광물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는 전시실에선 세계 각국의 다양한 원석을 볼 수 있다. 시커먼 석탄만 볼 줄 알았는데 각종 보석과 다이아몬드까지 화려한 볼거리가 있다. 석탄의 채굴과정과 함께 전시된 채굴도구도 다양하고 석탄을 사용했던 옛날식 난로나 연탄 만드는 과정 등을 자세히 볼 수 있다. 난로 위에 쌓아 올린 도시락이나 구공탄, 19공탄을 보며 잠시 과거로의 여행을 떠난다.
탄광생활에 대한 전시도 흥미롭다. 상장동 벽화마을에서 마을의 외관과 그림으로 봤다면 이곳에서는 생활상의 내부와 면면을 전시물과 디오라마 등으로 자세히 볼 수 있다. 체험 갱도관에서는 막장의 치열함과 절박함이 느껴지고, 진폐증 환자의 모습과 진료 기록을 살펴보며 알 수 없는 먹먹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제는 문을 닫은 광산들의 옛날식 간판을 보며 지난날의 영화를 더듬는다.
이제 돌아갈 시간. 멀지 않았던 과거와 지금을 생각한다. 나는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나. 매일매일 생명을 걸었던 광부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조금은 부지런해진 모습으로 일상을 살아야겠다. 떠날 때마다 고마운 여행의 가르침은 다시 돌아갈 이유와 다시 떠날 기대를 만든다. 내일부터는 조금 더 성실하게 살아야겠다. 또 멋진 여행을 기대하며….
[ 여행정보 ]
승용차
서울 - 경부고속도로 - 영동고속도로 - 중앙고속도로 - 북부로 - 신당삼거리에서 의림지, 경찰서 방면으로 좌회전 - 용두대로 - 용두교사거리에서 시외·고속터미널 의림지 방면으로 우회전 - 청전대로 - 장락삼거리에서 영월·주천 방면으로 좌회전 - 내토로 - 느릅재터널 진입 후 북부로 - 각한터널 진입 후 강원남로를 따라 두문동재터널까지 - 우회전
고속버스
동서울종합터미널 - 태백시외버스터미널 - 1번 버스 - 상장동주민센터 정류장 하차
기차
청량리역 새마을호 - 태백역 - 1번 버스 - 상장동주민센터 정류장 하차
< 상장동 벽화마을에서 태백석탄박물관 가는 방법 >
승용차
상장로→태백로로 우회전→상장삼거리에서 영월·문곡소도동·태백산도립공원·석탄박물관 방면으로 우회전→태백산로→태백산도립공원·석탄박물관으로 좌회전→천제단길
버스
상장동 주민센터에서 버스 7→태백산도립공원 요금소 하차
< 태백석탄박물관 >
홈페이지 : http://www.coalmuseum.or.kr
강원도 태백시 천제단길 195 / 033-552-7720
이용요금 : 태백산도립공원 입장료로 이용
일반 2000원 / 중고생 1500원 / 초등생 700원
이용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 음식 >
태백 물닭갈비 : 1인분 6000원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44-63 / 033-553-8119
태백한우골 : 생갈비살 2만5000원 육회 2만3000원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405-15 / 033-554-4599
해조림 : 고등어조림 7000원 두부조림 6000원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418-16 / 033-553-7791
< 숙박 >
오투리조트 http://www.o2resort.com / 033-580-7000 / 강원도 태백시 서학로 86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6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