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부터 선과 악의 대결은 전통적인 테마였다. 대체적으로 고전동화의 경우 권선징악을 모티브로 둔다. 과거뿐만 아니라 지금도 이러한 추세는 크게 다르지 않다.

<해리포터> 시리즈, <반지의 제왕>, <호빗> 같은 판타지 소설이나 얼마 전 개봉한 히어로물인 <아이언맨3> 등도 세부적으로는 다를지 몰라도 선과 악의 싸움이라는, 마르고 닳도록 쓰인 클리셰가 들어가 있다.

심지어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스타워즈> 시리즈도 프리퀄의 주인공은 아나킨 스카이워커고, 클래식의 주인공은 루크 스카이워커지만 시리즈 내내 제다이와 시스라는, 선과 악이라고 콕 집어 단정하기에는 뭣하지만 어쨌거나 대립되는 관계를 지속적으로 보여줬다. 물론 지구와는 관계없는 옛날 옛적, 머나먼 은하계 일이지만 말이다.

이러한 선과 악의 관계는 인간의 모든 욕망이 소용돌이치고 있다는 주식시장에도 존재한다. 사회책임투자(SRI)펀드와 죄악주(Sin Stock)가 바로 그것이다.

◆ SRI, 주목받는 이유

공정사회, 책임투자 등은 더 이상 낯선 용어가 아니다. "어쨌거나 돈만 잘 벌면 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현대사회는 도덕과 윤리를 요구하고 있다.

가까이 보면 이전 팍스콘(Foxconn, 중국명 富士康) 사태가 터졌을 당시 팍스콘뿐만 아니라 이 회사에 하청을 줬던 애플에도 책임의 화살이 돌려졌던 사례가 있다.

국내에서 갑과 을의 관계를 재조명하게 만들었던 남양유업 사태의 경우 기업들의 도덕성 문제를 더이상 좌시할 수 없음을 극명히 보여준다. '영업직원의 폭언'은 결국 기업 회장과 임원들의 사과를 불러왔고, 이 회사를 황제의 자리(주가 100만원대)에서 내려오게 만들었다.

기업들은 이제 단순히 돈만 버는데서 끝나지 않고 환경과 윤리에도 신경을 쓸 것을 요구받고 있다. 재무적 건전성은 기본이고 공공재로서의 역할까지도 해야 하는 것이다.

SRI펀드란 이러한 역할에 충실한, '좋은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평가되는 재무제표나 성장가능성과 더불어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와 같은 비재무적 요소를 고려해 종목선정을 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통상 이는 ESG라 지칭된다.

글로벌 SRI 투자시장의 규모는 지난 2011년 기준으로 13조6000억달러에 달한다. 지역별로는 유럽(64%), 미국(28%), 캐나다(4%) 순이며, 아시아는 0.6%에 그쳐 SRI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족한 편이다. 특히 유럽과 미국의 SRI펀드 규모는 2009년 말 대비 20% 이상 증가하면서 액티브펀드의 부진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 역시 SRI 투자 관련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지난 2008년 UN PRI(Principles for Responsible Investment)에 가입한 국민연금이 SRI형 자산운용의 규모를 꾸준히 늘려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1월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이 운용하는 SRI형 자산규모는 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공시됐다. 또 5년 내 SRI형 투자규모를 11조원가량으로 늘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 사학연금과 공무원연금의 SRI펀드는 1000억원 규모이며, 우정사업본부도 SRI 투자에 참여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진다.

◆ 죄악주, 정체가 뭘까

죄악주란 본래 사악한 기업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의 몸과 정신건강에 해를 끼치는 사업 분야와 관련된 술, 담배, 도박 등의 사업을 영위하는 회사의 주식을 뜻한다. 더불어 방위산업, 성 관련상품회사, 대부업체 등도 포함되며 한국에서는 게임주도 죄악주로 분류된다.

그러나 최근에는 악성 공해를 유발하는 기업이나 노동 및 임금 착취형 불공정 기업들, 진짜 '악'이라고 불릴 만한 기업의 주식들도 죄악주에 포함되는 경우가 있다.

죄악주가 주목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러한 종목은 일반적으로 기업가치에 비해 저렴하게 평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산업은 경기침체나 불황 등 경기상황이 좋지 않을 때 오히려 매출과 이익 등이 늘며 주가가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즉 경기불황으로 인해 우울하기 때문에 술과 담배의 소비가 급증하고, 경제난으로 출산을 피하기 위해 콘돔 소비량이 늘면 죄악주의 주가가 상승한다는 논리다.

시장에서 이들은 사회적 오명 때문에 주가가 낮은 편이고 따라서 기업가치에 비해 저렴한 가격에 주식을 매입할 수 있다는 속설이 있다. 예컨대 연기금이나 자선기관 등은 매력적인 가격에 죄악주가 나와도 비난이 두려워서 선뜻 매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해외에는 Vice Fund(VICEX)처럼 죄악주를 전문으로 하는 뮤추얼펀드도 있다. 필립모리스(알트리아), 칼스버그, 록히드 마틴 등 담배와 주류, 무기회사의 주식을 주로 보유하고 있는 이 펀드는 지난 2009년 3월30일부터 올 5월20일까지 5년여간 118.23%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 선과 악, 승자는 누구인가

그렇다면 SRI펀드와 죄악주의 수익률을 비교했을 때 승자는 누구일까. 애석하게도 현재 승자는 '악'인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상장 종목 가운데 죄악주로 분류할 수 있는 주류, 담배, 도박, 게임, 섹스, 방산 등의 사업을 영위하는 46개 종목의 평균 상승률은 16.56%(5월20일 종가 기준)인 것으로 집계됐다.

죄악주 가운데 연초 이후 가장 수익률이 좋은 것은 조이맥스로 연초 이후 103.88% 급등했다. 그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진로발효(55.56%), 리드코프(52.78%), 바른손게임즈(48.11%), CJ E&M(48.11%), 파라다이스(46.51%), 액토즈소프트(46.24%) 등도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반면 연초대비 주가가 하락한 종목은 13개였다. 가장 많이 떨어진 종목은 플레이위드(-37.64%)다. 라이브플렉스(-36.43%), 네오위즈게임즈(-26.60%), 엠게임(-19.69%), 풍산(-16.49%), 손오공(-16.29%), 드래곤플라이(-11.68%) 등은 두자릿수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SRI펀드는 사정이 달랐다. 국내에 투자하는 설정액 10억원 이상의 SRI펀드 53종 가운데 연초 이후 수익률이 집계되는 51개 펀드의 평균 수익률(21일 기준)은 -1.61%였다. 이는 같은 기간 코스피 수익률(-0.8%)을 밑도는 수준이다.

국내 SRI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 가운데 수익률이 플러스를 기록한 것은 9개뿐이었다. 이들 중 가장 성과가 좋은 것은 신영자산운용의 '신영마라톤그린밸류증권자투자신탁(주식)ClassA'로 연초 이후 7.64%의 수익률을 올린 것으로 집계됐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8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