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손실 '눈덩이'… 채권 '골칫덩이'
증권업계에 대한 우려가 날로 커지고 있다. 이제는 얘깃거리도 못 될 정도로 추락한 거래량과 거래대금으로 인해 증권사들의 실적은 상상이상으로 악화됐다.
거래 악화뿐만이 아니다. 증권사들이 자체적으로 보유 중인 채권도 문제다. 지난 1분기(4~6월) 금리인하에도 불구하고 시장금리가 상승하며 증권사들이 운용하고 있는 채권평가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지난달 26일 국내 증권사 가운데 가장 먼저 실적을 발표한 HMC투자증권의 경우 2013회계연도 1분기 영업이익이 1억2000만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동기 영업이익인 55억5700만원보다 97.8% 감소한 것이며, 전분기 113억2000만원보다도 98.9% 급감한 수치다.
지난 1분기 매출액은 2413억7200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2.6% 줄었다. 매출액이 감소한 것보다 더 크게 영업이익이 급감한 것은 상품운용에서 손실, 즉 채권가격이 하락(금리상승)했기 때문이다.
◆ 버냉키 후폭풍, 이제야 몰려온다
투자자들은 증권시장에 대해 특별한 메리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거래대금과 거래량의 급감으로 나타났다. 결국 브로커리지 중심의 수익구조를 지닌 증권업계는 말 그대로 냉각된 투자심리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증권업계가 버틸 수 있었던 기저에는 채권수익이 있다. 대형사의 경우 평균 10조원대의 채권을 운용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어렵다. 힘들다"가 입에 붙은 상황에서도 증권사들이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각 증권사들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5대 증권사의 채권 보유잔액(당기손익 인식 대상 채무증권)은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약 58조원에 이른다. 또한 2012사업연도 자기자본 5대 증권사의 장부상 채권 평가이익 합산금액은 2230억원으로 집계된다. 여기에 상환·처분이익까지 합치면 4700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지난 1분기에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양적완화 축소 방침이 발표되며 '귀하신 몸'이었던 채권이 '골칫덩이'로 변했다. 시장금리가 일제히 폭등(채권값 하락)하면서 보유 중이던 채권의 평가수익이 급감한 것이다.
국고채 3년물 기준으로 5월 초 2.44%까지 하락, 기준금리를 밑돌던 국고채 금리는 지난 6월 말 3.12%까지 치솟은 뒤 지금도 2%대 후반에 머물고 있다.
증권사들이 막대한 양의 채권을 운용하는 이유는 자체 자산관리 외에도 투자자의 자산을 관리해주기 위해서다. 각 증권사들은 브로커리지 부문의 수익 악화로 인해 자산관리부문 강화에 나섰다.
그렇다보니 수익성이 높은 RP나 ELS 상품 판매가 강화됐고, 이 때문에 기초자산의 성격을 지닌 채권들을 다수 보유하게 됐다. 문제는 이러한 채권들의 수익이 악화된다고 해서 팔아치우는 것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손익을 상계처리 할 수 있는 파생상품 계약도 함께 맺고 있어 평가손익이 그대로 반영되진 않는다. 하지만 지난 1분기에 금리가 급격히 변동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어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 1분기 증권사 실적, 어떻게 나올까
채권 폭탄이 터져 손실을 보게 된다면 증권사들의 1분기 실적 전망은 어떨까. 증권정보업체인 와이즈에프엔에 따르면 실적 컨센서스가 나오는 10개 증권사 중 대부분이 당기순손실을 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컨센서스를 살펴보면 지난 사업연도 4분기(1∼3월)에 5대 증권사 중 유일하게 적자로 돌아섰던 현대증권은 올 1분기에 23억500만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 흑자전환에 성공할 전망이다.
또한 동양증권은 지난해 4분기 지배기준 당기순손실 5억5000만원에서 올 1분기에는 51억8100만원으로 흑자전환에 성공할 것이며, 대신증권도 15억1200만원의 순이익을 기록해 전 분기 9억1400만원의 손실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이외에는 대부분 수익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증권은 전기대비 139억7600만원 감소한 404억7800만원, 한국금융지주는 223억8100만원 줄어든 358억6800만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관측됐다. 또한 미래에셋증권은 257억6900만원, 우리투자증권은 203억8000만원, 키움증권은 140억6300만원, KDB대우증권은 225억4500만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그러나 채권 폭탄이 어느 정도까지 실적에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현시점에서 실적 컨센서스가 맞을 것으로 단언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 증권주, 꿈도 희망도 없을까
이렇듯 장기적인 업황 부진에 채권 폭탄 우려까지 불거짐에 따라 증권주는 주식시장에서 매력 없는 종목으로 치부되고 있다. 코스피시장의 증권업종지수를 보면 지난 5일 기준으로 연초대비 8.54% 떨어진 상태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4.53% 하락했다. 시장대비 4% 이상 언더퍼폼한 것이다.
증권주가 최저치를 향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은 장기적으로 국내시장이 회복될 것임을 감안할 때 매력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회복시점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증권주에 대한 매력은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1분기 실적 발표로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김고은 아이엠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향후 중장기적인 컨센서스 역시 시장금리 상승을 전망하고 있어 향후 채권운용 손실이 지속될 가능성이 존재해 채권보유액이 큰 대형 증권사에 부담이 되고 있다"며 "채권보유액의 증가는 증권사들이 자산관리부문을 강화하면서 ELS, RP 상품을 판매함에 따라 나타난 현상이기 때문에 채권보유액을 급격하게 줄이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박선호 메리츠종금증권 애널리스트는 1분기 금리상승으로 채권평가 손실이 발생해 증권사들이 최대의 이익감소폭을 기록할 것으로 분석했다.
다만 그는 "현재 증권업계의 PBR(주가순자산비율) 0.6배는 이를 선반영한 수준이어서 추가적인 급락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내다봤다. 너무 저렴해진 탓에 더 이상 떨어지기도 쉽지 않다는 소리다.
윤태호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업황 부진을 반영해 투자의견 중립(Neutral)을 제시하지만, 박스권 하단에서 추가적인 하락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서 매수 기회는 존재한다"고 말했다.
윤 애널리스트는 "증권업종 평균 4분기 선행 PBR은 0.85배(6개 증권사 평균) 수준까지 하락해 미국 신용등급 이후 세번째 돌아온 최저 밸류에이션 구간에 진입했다"며 "증권업종 펀더멘털 개선에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판단되며 따라서 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보다는 PBR 구간 트레이딩을 권고한다"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9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