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와 단호함으로 엄동설한을 이겨내는 '매화'처럼 거대한 변화에 당당히 맞서겠다. 또 봄을 부르는 은은한 향기로 조직 내 소통과 화합을 이뤄내겠다."
 
금융권에 여풍(女風)을 몰고 온 권선주 IBK기업은행장(59)의 취임사다. '최초', '첫'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 붙는 권선주 행장. 그가 또 한번 대형사고(?)를 쳤다. 국내 금융 역사 115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은행장에 오른 것.

그가 지금까지 '여성도 고속승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면 이제는 '은행권 최고경영자(CEO)도 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것이다. 그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유리천장을 깨고 금녀(禁女)의 벽을 허물었다'는 평을 내놓았다. 그리고 이는 금융권의 여성임원 발탁 바람으로 확대됐다. 시중은행들은 지난해 연말 정기인사에서 한두명 이상의 여성 임원을 배출했다. 은행권에서 여성임원이 이토록 많이 나온 것 역시 115년 만에 처음이다.


◆"외풍 바람막이 되겠다"

구랍 30일 오전. 기업은행 본점에서 권선주 신임 은행장의 취임식이 열렸다. 수십여명의 부행장과 수백여명의 임직원들은 그에게 환호를 보냈다. 평소 겸손하고 상대방을 존중할 줄 안다는 평가를 받아서일까. 취임사를 하는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푸근했다. 하지만 그가 취임사를 통해 제시한 메시지는 단호했다.

그는 "외풍으로부터, 또 수많은 도전으로부터 당당히 맞서 싸울 것"이라며 스스로 '바람막이'가 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의 특성상 임원 인사 시 외부의 입김이 작용할 가능성에 대해 배격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소통과 화합을 앞세운 전략도 제시했다. 권 행장은 "최후에 승리하는 조직은 결국 서로 협력하는 조직"이라며 "경계와 칸막이를 넘어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조직이야말로 가장 강한 조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어떤 조직도 단합하고 협력하는 조직을 이길 수 없고 그 협력의 전제조건은 소통이라고 생각한다"며 "부서와 상하 간에 아무런 벽이 없이 완전한 소통이 이뤄지는데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올해 경영전략에 대해서도 명확히 밝혔다. 그는 변화보다는 안정에 초점을 두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업은행 임직원에 대한 믿음이 크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1월 중·하순으로 예정된 내부 인사다.

권 행장은 "그동안 기업은행이 공정한 인사를 해왔기 때문에 (올해) 큰 변화를 줄 필요가 없다"면서 "변화와 혁신은 한꺼번에 하는 것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꾸준히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잘 해왔기 때문에 부족한 자리만 채우는 방식으로 인사를 진행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기업은행 내 인력구조에 대해서는 개선해야 할 점을 지적했다. 권 행장은 "기업은행의 인력구조는 매우 불안정하고 시간이 갈수록 그 불균형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미리 제도를 정비하는 등 대비책을 세우고 전 직원이 공감하고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말 권선주 행장을 내정할 당시만 해도 금융권에는 기대보다 우려의 시각이 많았다. 보수적인 은행권에서 여성 행장 선임은 시기상조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세심하면서도 때론 당당함으로 무장한 권 행장이 본격 취임한 이래 내부 분위기는 조금씩 바뀌고 있다. "외풍에 맞서고 소통과 화합에 초점을 두겠다"는 그의 경영전략에 대해 내부 직원들도 하나둘 공감하는 모양새다.

◆여성 임원의 역사를 만들다

권선주 행장은 경기여고(1974년)와 연세대 영문과(1978년)를 졸업하고 그해 기업은행에 입행했다. 내부 출신인 만큼 현장 경험도 풍부하다. 방이역지점장, 역삼1동지점장, 서초남지점장 등을 두루 거치고 고객만족(CS)센터장을 역임했다.

권 행장에게 가장 기억에 남았던 시기는 2007년 1월. 그는 여성 행원으로서는 처음으로 1급 승진과 함께 PB사업단 부사업단장을 맡았다. 현재까지도 기업은행 내 여성 1급 행원은 김성미 남중지역본부장 한명에 불과하다. 이후 권 행장은 여신·외환지점센터장과 외환사업부장, 중부지역본부장, 카드사업본부장(부행장), 리스크관리본부장 겸 금융소비자보호센터장 등 주요 요직을 역임했다.

그를 두고 '최초', '첫'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 이유는 '첫 여성 1급 승진', '첫 여성 지역본부장' 등 여성 1호 임원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업적을 보면 이미 기업은행과 금융권의 역사를 수차례 갈아치운 셈이다.

그렇다면 권 행장이 지금의 자리에 오르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그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 인상적이다. "항상 우리 아이들한테도 '남을 기쁘게 하라'고 가르친다.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 그런 것으로써 남을 기쁘게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게 좌우명이라면 좌우명이다."

하지만 첫 여성 행장이기에 쏠리는 관심과 시선은 그가 부담해야 할 짐이다. 그가 '최초' 타이틀뿐만 아니라 '최고'라는 찬사도 받을 수 있을지 금융권의 관심이 기업은행으로 향하고 있다.

☞ 권선주 행장 프로필

▲서울 출생(58) ▲경기여고 ▲연세대학교 영문학과 ▲기업은행 CS센터장 ▲외환사업부장 ▲중부지역본부장 ▲카드사업본부 부행장 ▲리스크관리본부 부행장 겸 금융소비자보호센터장 XML ▲(현) 기업은행장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1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