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고다 숲 속으로
미얀마 하면 이곳이 떠오를 것이다. 올드바간(Old Bagan). 고터에 가득한 건물들은 사람 살던 도시가 아니라 파고다, 절, 사원이다. 수천개의 파고다는 대부분 숫자로 이름을 대신했고, 여행자가 식별할 수 있는 곳은 열개 남짓이다. 그것도 버겁다. 이 넓은 유적지에서 트래킹도 한계가 있으니 마차를 타기로 한다. 한가로운 흙 길로 또각또각…. 재래시장, 레스토랑, 호텔들을 지나고 몇개의 파고다들을 지나니 올드바간의 관문이라는 따라바게이트(Tharabar Gate)다. 생활자들의 공간에서 성지로 가는 길은 조금씩 소란함의 강도를 낮춘다. 이미 파고다들을 지나쳐 왔는데 이제 시작이라고 하니 저 문 안에 어떤 대단한 그림이 있는지….
붉은 흙의 넓은 평야다.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으니 조금만 높이 올라가도 여기가 어떤 곳인지 한눈에 들어온다. 듣던 대로다. 아무렇게나 사진을 찍어도 엽서에서 본 그 그림이다. ‘200년 왕조’ 동안이라고 하지만, 그중에서도 약 20년간이다. 왕이 아이를 낳아도, 몸이 아파도, 사랑의 표시로도 탑을 쌓았다. 그 시절엔 모든 인구가 파고다 건설자였겠다. 이 때문일까. 왕조는 급속히 몰락했고, 흰 칠을 했던 성지는 붉은 몸통만 남아 옛 시절의 영화를 말해주고 있다.
◆올드바간의 ‘가장’을 찾아
불자가 아니어도 된다. 탑과 절과 사원이 워낙 많으니 모두가 성지순례자가 된다. 그렇다면 일정은? 미리 공부를 해 와서 가보고 싶은 곳을 지정하거나 마부에게 조언을 구하는 수밖에 없다.
쉐지곤(shwezigon) 파고다. 따라바게이트를 지나기도 전에 있는 사원으로 규모가 상당하다. 1059년부터 아노라타왕이 시작해서 손자인 잔시타왕 때 완성한 곳이다. 이곳은 단순히 유적이 아니고 지금도 순례와 기도가 있는 곳으로 금불탑 안에는 부처의 치아 유골이 있다고 한다. 금이 햇빛을 받아 눈이 부시는데, 화려함으로 그치지 않고 주변에 부속 건물들이 있어 볼거리가 많다. 재미있는 것은 미얀마의 모든 사원에서 볼 수 있는 낫(Nat)이다. 이것은 미얀마의 민간신앙인데, 우리나라 사찰로 보자면 삼신각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불교사원에 토착신앙이 어우러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아난다(Ananda) 사원은 올드바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다. 1090년 세워진 사원으로 천년이 넘었는데 보존도 상당히 잘 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동서남북 사방으로 서로 다른 부처 입상이 있는데 모두가 우아하고 여성스럽다. 이 불상은 신기하게도 멀리 떨어질수록 입술 모양이 다르게 보여 웃는 얼굴이 된다.
불상을 도는 길은 세개인데 가장 안쪽은 왕이, 중간은 귀족이, 가장 바깥쪽은 백성들이 다녔다고 한다. 백성의 위치에서 보면 불상은 늘 웃고 있다. 왕에게는 엄하고, 민초에게 자애로운 부처가 이곳을 찾는 모두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는 듯하다. 이밖에도 조각 작품을 보는 듯한 외관과 벽, 내벽에 모셔진 1000개의 불상, 부처의 발자국, 화려한 낫, 사자상 등 부처님의 애제자 ‘아난다’의 이름이 아깝지 않게 웅장하고 사랑스럽다.
담마양지(Dhammauyan Gyi) 사원은 가장 크다. 그리고 악명이 높다. 1170년에 나라투왕이 건립하기 시작했는데 미완성으로 남았다. 볼펜심 하나도 들어갈 수 없도록 탄탄히 쌓은 벽돌 건축물로 복도에서 만나는 십자모양의 돌기구는 건축가들의 팔을 자르던 형틀이다. 벽돌 사이로 바늘이 들어가면 팔을 자르겠다고 했으니 치밀한 역작 뒤에는 무시무시한 협박이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건축 기술이 알려질까 봐 장인들의 손을 잘랐다고 한다. 이런 왕조가 잘 됐을 리 있겠는가. 나라마다 ‘최고, 최대, 최상’을 자랑하는 고건축물이 그러하듯 이 또한 폐망의 서막을 알렸다. 그래서인지 천년 전 와불을 봐도, 엄청난 규모의 불상과 테라코타를 봐도 어둡고 을씨년스러울 뿐이다.
탓빈뉴(Thatbyinnu) 사원은 바간에서 가장 높은 사원으로 높이가 61m다. 아쉽게도 꼭대기까지 올라가 볼 수는 없고, 아래쪽에서 탑 윗부분에 달아놓은 CCTV 화면을 볼 수 있다. 한편 이라와디 강변에는 860년경 세워져 가장 오래 됐다는 부파야(Bupaya)가 있다.쉐산도(Shwesandaw) 파고다는 일출과 일몰이 가장 아름답다. 올드바간에서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기 때문이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테라스에 사람들이 붐빈다. 일몰이라면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 시야는 탁 트였고, 하루 종일 둘러봤던 사원들이 가깝고 먼 곳에 툭툭 흩어져 있다. 멀리 이라와디강이 보인다. 앞뒤로 나무와 파고다가 그러데이션을 이룬다. 떨어지는 해를 배경으로 파노라마 사진에 도전해 보지만 아무리 해도 눈 안에 담아 오는 것만 못하다.
◆낭우에서 사는 사람들
그렇다면 지금을 사는 사람들은 어떨까. 낭우(NyaungU) 시장에는 바간의 지금이 있다. 매일 아침 일찍 그날의 ‘살(living) 것’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시장으로 온다. 쿰쿰한 냄새가 나는 삭힌 죽순은 이곳 사람들의 김치와 같은 역할을 하고, 고소한 냄새는 모든 음식에 쓰인다는 땅콩기름이다. 망고, 바나나 등 과일이 싸고 달다. 한류스타가 인쇄된 학용품과 소품이 반갑고, 조그맣게 소포장해 매달아 놓은 양념들이 귀엽다. 가끔 탁발 스님을 만날 수도 있다. 노점에서 발견하는 굵은 나뭇가지는 한약제가 아니다. 천연 자외선차단제로 쓰이는 따나카이다. 연적과 같은 돌판에 물을 뿌리고 나무줄기를 갈아 피부에 바르는데, 여자와 아이들 얼굴에서 봤던 베이지색 얼룩이 바로 이거다.
바간은 특히 칠기가 유명하다. 라카웨어(Lacquer Ware)라고 하는데 공이 많이 들어가는 물건이다. 대나무를 엮어 얇은 본체를 만들고, 여기에 천을 덧대어 초벌칠을 한 후 그늘에서 말린다. 이렇게 안쪽에 12번, 바깥쪽에 12번 칠하고 건조하는 과정을 되풀이 한다. 무늬가 없다면 여기서 끝. 약 6개월이 걸린다. 무늬를 넣을 경우엔 그림을 그려 넣고 색을 입히는데, 총 10개월에서 1년이 걸린다. 대나무로 만들었다고 해서 바구니를 연상하겠지만 옻칠을 반복하는 사이 빈틈없이 가볍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탄생한다. 제품도 다양해 작은 컵에서 수납장이나 식탁까지 없는 게 없다.
시장은 오후 3시면 대부분 문을 닫는다. 이곳 사람들의 진짜 모습을 만나려면 시간을 그들에게 맞추는 수밖에 없다. 역시 살아 있어서 좋다. 주인 없는 수천개의 사원을 거닐며 어쩌면 허무했을 지도 모를 여정에 에너지를 얻는다. 그런 이유로 바간에 왔다면 반드시 시장을 둘러 볼 것. 올드바간의 쓸쓸한 감동 후에 낭우 시장의 생동감 있는 공감이라야 이 여행은 완전해 진다.
[여행정보]
<한국에서 미얀마·바간 가는 방법>
인천에서 미얀마 직항은 시즌에 따라 있기도 하고, 없을 때가 많다. 보통 동남아(베트남, 방콕 등)를 경유해 양곤이나 만달레이로 입국한다.
미얀마에는 에어바간, 양곤에어웨이즈, 에어만달레이 등 몇가지 국내선이 있다. 이들은 시계방향이나 반시계방향으로 미얀마 지역에 취항한다. 가장 대표적인 여행지인 바간행 비행기가 시간·항공사 별로 많이 있다.
인터넷 항공권 구입(한국에서 미얀마)
넥스투어: http://www.nextour.co.kr 특가항공권과 할인항공권 함께 조회 가능
현대카드 프리비아 항공: http://www.priviatravel.com 현대카드 결제 시 라운지 이용, 여행자 보험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미얀마 국내 항공사(양곤이나 만달레이에서 바간으로)
에어바간: http://www.airbagan.com
에어만달레이: http://www.airmandalay.com
양곤에어웨이즈: http://www.yangonair.com
< 미얀마 여행 정보 >
언어: 미얀마어
시차: 2시간30분 느림
수도: 네피도
환율: 1달러=980~990짯 (2014년 1월 기준)
< 바간 여행 정보 >
바간 지역 입장료: 15달러(또는 15유로)
마차투어: 1일 2만짯 내외
승용차투어: 1일 2만5000짯 내외
< 음식 >
파고다 여행 중 먹게 되는 음식은 올드바간 내에 있는 고급식당일 가능성이 높다. 낭우 시장에서는 망고나 바나나 같은 과일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고, 미얀마 사람들의 군것질 거리를 맛볼 수 있다.
타마네: 타마네는 찹쌀, 땅콩, 생강, 코코넛, 마늘 등을 섞어 만든 미얀마인의 전통 간식이다. 접시에 덜어 땅콩과 볶은 양파를 올려 먹기도 하며 우리나라 약밥 맛이다. 가을에는 타마네 축제가 있고 타마네 만들기 대회가 있을 정도로 대중적이며 사랑 받는 미얀마인의 음식이다.
Sarabha II Restaurant: 올드 바간의 레스토랑으로 로컬, 중국음식 및 서양 요리를 제공한다. 아난다 사원 근처에 위치해 파고다 여행 중에 들르기 좋다. 예산은 1200~8000짯
< 숙소 >
탄테(Thante) 호텔 낭우: 낭우 시장과 가깝고 독립된 방갈로와 수영장 등 가격대비 서비스가 좋고 정원도 예쁘다. http://www.thantenyu.com 45~90달러(1방, 1박, 조식 포함)
인와(Inn wa) 게스트하우스: 낭우시장과 올드바간으로 향하는 삼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숙소 가까이에 비행기 티켓을 살 수 있는 여행사와 식당 등이 있어 저녁 시간을 보내기도 좋다. 20~30달러(1방, 1박, 조식 포함)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설합본호(제315·31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