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하나쯤 따라오던 MT, 데이트 여행의 대명사 춘천, 덜컹덜컹 느릿느릿 비둘기호…. 이게 다 옛날 얘기다. ‘청춘열차’라는 이름을 가진 지금의 ITX는 스피드와 편리함이라는 새 옷을 입었다. 서울에서 기차타고 한 시간, 우린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고흥에서 하동까지


가평 자라섬에는 이화원이 있다. 재즈 페스티벌과 캠핑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이맘 때 가면 휑하니 썰렁하기만 하다. 비로소 보이는 것이 이화원. 축제가 한창일 때는 공연이 열리는 작은 정원인 줄만 알았는데 이곳에 유리 온실이 있다. 정문 오른편으로 작은 정자가 있고, 낮은 담장 아래 오래된 장독들이 놓였다. 입춘이 지났지만 아직은 강바람이 차다. 야외정원은 일단 패스, 서둘러 온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화원

이화원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이화정과 초록뜨락, 인공폭포, 일원지를 볼 수 있는 야외정원과 두 개의 온실이 있다. 757평 온실 안에는 200여 종의 꽃과 나무가 짜임새 있게 꾸며져 있다. 하나의 온실은 한국식물원, 다른 온실은 브라질정원으로 크지 않은 정원이지만 두 파트가 전혀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화원(二和園)의 화(和)가 화합, 화목, 평화, 조화를 뜻하듯 이질적일 것 같지만 다양한 꽃과 나무가 어우러져 결국은 평화로운 산책길을 이루고 있다.
실내로 들어서면 첫번째 온실이 한국정원이다. 이곳에는 전라도와 경상도의 화합이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것이 고흥 과수원집이고 반대편 끝에는 하동 다정이 있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산책길로 이어져 있다. 옛 초가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과수원집은 안방의 옷장과 경대 등의 살림살이에서부터 작은 방에 걸린 교복, 요강, 광에 있는 각종 농사기구와 탈곡기, 담장 위에 놓인 바구니와 화장실까지 누군가 살고 있다 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집 앞과 옆으로 고흥 유자원, 석류밭, 비파밭으로 이어지는데 징검다리가 놓인 작은 시내가 하동 다원으로 발길을 안내한다. 녹차동산 앞 죽림다원 안에는 대나무 숲 사이의 석탑이 푸른 이끼를 입고 있다. 들여다보는 사람에게만 허락한 것 같은 신비로운 풍경이다. 거북이 입에서 나오는 작은 물길은 포석정이 생각나고, 마침내 도착한 하동 다정에서는 잠시 앉았다 가도 좋겠다. 과수원집에서 옛사람들의 생활을 상상했다면 다정에서는 선조들의 사색과 감성이 느껴진다. 바로 이어서 녹차박물관이 있는데 이곳은 계절마다 다양한 전시가 열리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화원 브라질정원

◆가장 가까운 브라질 밀림

이제 작은 문과 다리를 지나면 브라질정원이다. 문 하나를 열었을 뿐인데 열대 밀림이다. 커피농원은 물론 야자수, 선인장, 모과동산, 감람나무 등 평소에 보기 힘든 꽃과 나무가 외국의 식물원에 와 있는 것 같은데, 곳곳에 보이는 조형물과 소품들도 이국적인 정취에 한몫을 한다. 이화원은 한국과 브라질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조성한 곳이어서 브라질의 식물뿐 아니라 문화와 환경을 엿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흰 벽에 붉은 지붕을 가진 시음장에는 브라질에서 온 소품들이 분위기를 돋우고, 이어서 기타가 누워있는 작은 무대가 있다.

한 가운데 가장 잘 보이는 연못에는 우리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이 떠 있고 머리 위로는 비행선과 비행기가 떠 있다. 이것은 세계 최초로 비행기를 발명한 브라질 사람, 산토스드몽의 것을 모형화 한 것이다. 시원한 물소리가 나는 곳에는 아주 작은 브라질 이과수폭포가 있고, 길목을 지키는 커다란 침팬지 인형이 여행자를 깜짝 놀라게 한다. 정원 끝 하모니아캐빈에서는 기분좋은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3000원 입장료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입장권을 어느 주머니에 넣었더라? 이것으로 홍삼커피, 유자차, 연잎차 중 원하는 것을 골라 마실 수 있다. 차 한잔을 받아 들고 마음에 드는 벤치에 앉아 지구 반대편의 꽃나무와 물소리를 감상하면 된다.

이화원 녹차동산과 하동다정

◆가평-춘천 잇는 경강역

경강역은 이름이 재미있다. 1939년에 영업을 개시하였는데 이때는 ‘서천역’이었다. 1955년 경기도와 강원도를 잇는 역이라는 뜻의 ‘경강역’으로 이름을 바꿨다. 말 그대로 이곳은 강 건너로 경기도 가평 땅이 보이는 강원도 춘천시다.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붉은 벽돌 건물과 비슷한 세월을 함께 했을 소나무가 멋스러운데, 지금은 폐역 됐다. 2010년에 경춘선 복선전철 사업으로 굴봉산역으로 역사를 이전했고 이곳은 간이역의 기능마저 잃어 버렸다.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역이 문을 닫기 전에는 정말 한가한 곳이었다. 한 때 ‘편지’, ‘천국의 계단’의 촬영지로 알려지며 주목 받기는 했지만 마땅한 놀거리나 맛집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이곳은 그저 지나가는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폐역사를 구경하러 오거나, 폐선로에 생긴 강촌 레일바이크를 타러 여행자들이 찾고 있다.

대합실 매표소에서는 아직도 티켓을 팔고 있다. 기차는 탈 수 없다. 대신 가평철교까지 운행하는 레일바이크를 탄다. 전국에 레일바이크가 많지만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두 가지다. 북한강의 아름다운 경관을 강 위에서 즐긴다는 점과 오르막길에서는 힘들이지 않도록 자동운행을 하는 점이다. 2인승이건 4인승이건 함께 페달을 밟다 보면 혼자 열심히 해야 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특히 여자친구를 위해 봉사하기로 한 남자들에게 비밀리에 알려주고 싶은 정보다. 강의 이쪽과 저쪽을 즐기며 가평철교까지 가면 다리 위에서 회차하게 되는데 이 또한 다른 곳과 구별되는 재미이다. 강 위에서 바이크가 반바퀴를 도는 아슬아슬한 경험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출발지로 돌아오면 구역사 휴게실에서 조금 쉬었다 가자. 하늘색 나무 문 유리창에 진지한 궁체로 쓴 ‘경강휴게실’, 한쪽 벽을 장식한 경강역의 사계절 풍경과 아이들의 그림, 여행자의 사연을 담은 낙서, 메시지, 소원지…. 잠시 쉬러 들어와서 자신도 모르게 사연 하나를 보태고 있을는지 모른다.

하루동안 꽤 많은 곳을 다녔다. 경기도 가평의 온실에서 고흥, 하동, 브라질을 보았고, 강원도로 건너와선 강 위의 철교까지 페달을 밟았다. 따뜻한 빛이 감도는 온실에서 차 한잔을 마셨고, 온기를 찾은 폐역에서 사람들의 사연을 만났다. 경춘선의 덜컹거리는 낭만은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새로운 추억거리를 만들고 간다.

경강역

[여행 정보]

가평 이화원 가는 법
[승용차]
서울춘천고속도로 - 마석IC에서 ‘춘천, 청평’ 방면으로 좌측 - 경춘북로 - 가평오거리에서 ‘김화, 사창, 가평군청, 가평경찰서’ 방면으로 우측 - 가화로 - ‘자라섬캠핑장’ 방면으로 우측
[대중교통]
1. 용산역이나 청량리역에서 ITX 청춘열차나 지하철 경춘선 탑승 - 가평역 하차 - 이화원까지 도보로 이동 가능
2. 가평시외버스터미널 - 33-3버스 승차 - 남이오거리 정류장하차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이화원: 검색어 ‘가평이화원’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대곡리 57-3
경강역: 검색어 ‘경강역’ / 강원도 춘천시 남산읍 서천1리 230번지

< 여행 주요정보 >
가평 이화원
http://www.ewhawon.com / 031-581-0228
관람시간: (동절기) 오전 9시~ 오후5시 / (하절기) 오전 9시 ~ 오후 6시
매주 월요일 휴관
입장료: 성인 3000원 / 청소년(14~18세) 1500원 / 어린이(6세~13세) 1000원
애완동물 입장 불가, 식물 체취 불가, 금연, 쓰레기 수거

경강역-강촌레일바이크
http://www.railpark.co.kr / 033-245-1000~2
강촌레일바이크 사이트에서는 강촌역, 김유정역, 경강역에서 출발하는 3가지 레일바이크 중 원하는 것을 선택해 예약할 수 있다. 강촌역과 김유정역은 연결돼 있어 출발지점을 선택해 탑승하고, 셔틀버스를 이용해 출발역으로 돌아간다. 경강역에서 출발하는 레일바이크는 가평철교까지 다녀오는 왕복코스다. 아직 강바람이 차가우니 옷을 따뜻하게 입고 간다.
레일바이크 탑승예약: 출발 20분 전까지 인터넷, 전화, 현장 예약
레일바이크 탑승시간: 오전 9시부터 매시 정각출발 (동절기 8회, 하절기 10회 운행)
이용요금: 2인승 2만5000원 / 4인승 3만5000원
우천시 정상 운행, 애완동물 탑승 불가

< 음식 >
송원막국수: 손님이 들어오면 주인은 재빠르게 사람 수를 세고, 그때부터 손으로 직접 눌러 막국수 면을 뽑는다. 메뉴는 막국수와 수육이 전부. 면이 쫄깃하고 매끈매끈하며 퍼지지 않는다.
막국수 6000~7000원 / 사리 3500원 / 수육 1만5000원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 363-1 / 031-582-1408

< 숙박 >
자라섬 캠핑장: 이화원 앞은 자라섬 캠핑장이다. 오토캠핑이나 캐라반을 이용할 수 있고 샤워실, 공동 조리실, 공동 세탁실 등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http://www.jarasumworld.net
캐라반: 6만~18만원
캐라반사이트: 2만~2만5000원
오토캠핑 사이트: 1만~1만5000원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1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