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마을 하면 이곳이다. 전통 한옥 700여채 사이로 왕조의 모습, 장군의 풍류, 옛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경기전, 오목대에서 자만마을까지 15세기에서 시작해 21세기의 벽화마을까지 여행해 보자.

◆왕 초상화 모신 궁궐

하마비(下馬碑) 앞에선 일제히 서야 한다. 이것이 경기전 앞을 지날 때의 도리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국보 317호), 즉 초상화를 모셨기에 누구라도 타고 있던 말에서 내려 예를 갖췄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하마비 자체에 묵직한 카리스마가 있다. 암·수 두마리의 동물이 크고 웅장한 이 비를 떠받치며 지나는 사람들의 발을 붙잡는다.

한옥마을 풍남문


경기전은 ‘경사스러운 터에 세워진 궁궐’ 이라는 뜻으로 태종 10년에 어진을 봉안하기 위해 창건했다. 전란이 많아 왕들의 어진을 잘 지키지 못했는데 태조의 것이 보전돼 있고 이를 보관한 궁궐까지 있으니 확실히 소중한 유적이다. 사실은 임진왜란을 피해 내장산으로, 아산객사로, 강화도로, 묘향산으로 옮겨 다니다 소실된 경기전을 광해군 때 중건함으로써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림도 수난을 겪으니 낡고 헐어 백자항아리에 넣어 본전 뒤 북쪽 계단에 묻었다고 한다. 현재의 어진은 1872년에 조중목이 모사한 것인데 이 또한 140년의 세월을 살았다.

어찌됐든 태조의 용안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외신문을 지나면 이곳부터는 지상의 세계가 아니다. 사람들은 신이 다니는 길이라 했던 중앙의 ‘신도’를 밟지 않고 동쪽으로 입장해 서쪽으로 나와야 한다. 그리고 이곳 가장 깊숙이 자리잡은 정전에 어진이 있다. 가만히 서서 한참을 보고 있으면 건국의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오묘하고 신비롭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니 어진을 그리는 절차도 간단한 게 아니었다. 12명의 화공을 뽑고 이들 중 제일 실력이 좋은 사람이 얼굴을 그리고 나머지 부분을 다른 이들이 나눠 그렸다고 한다. 조선의 어진에서 얼굴은 사실적으로 그려야 했다. 뿐만 아니라 그림에서 그 주인의 혼이 느껴져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빛바랜 그림 속의 눈동자에서 태조의 기상이 느껴진다.
어진박물관 어진행렬

이 어진의 특이한 점은 파란색 곤룡포다. 보통은 왕을 상징하는 붉은색 곤룡포를 입는데, 태조는 건국자이기에 푸른 곤룡포를 입은 모습으로 그렸다고 한다. 어진은 본견(비단)에 그렸고, 뒤편에서 그리는 배채법을 썼다. 그러니까 그림을 거꾸로 그려서 물감이 앞으로 스며 나오게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입체감이 살아나는 효과를 가진다.

경기전에선 매년 중양절에 제를 올린다. 이전에는 1년에 여섯번 제사를 지냈다고 하니 이를 준비하는 일만으로도 한해가 빨리 지났겠다. 때문에 왼편으로는 제를 위한 여러 부속건물이 있다. 어정은 오직 왕을 위한 물을 뜨는 신령한 우물이다. 제사음식을 준비하는 수복청, 옷을 보관하는 곳, 제기를 보관하는 곳 등 볼거리가 많다.

◆아름다운 정원과 어진박물관

부속건물의 반대편은 아름다운 정원이다. 경기전의 대나무 숲은 너무도 유명해 각종 드라마와 영화에 나왔다. 구부러진 청매화는 같은 모습으로 100년 이상 자리를 지켰고, 새 순을 단 채 봄을 준비하고 있다.

2층짜리 건물은 전주사고다. 엄밀히 말하면 아래에 공간을 두고 높이 지은 전각이다. 이곳에 조선왕조실록이 있다. 세종대왕이 전국 4곳에 봉안했던 실록 역시 임란을 겪었고, 이곳의 실록만이 소실되지 않고 보존됐다. 뿐만 아니라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 각종 문헌 1344책이 보관된 천금 같은 문화유산이다.

한쪽으로는 예종대왕태실과 비가 있다. 이것은 예종대왕의 탯줄을 보관한 자리다. 그런데 여행을 다니다 보면 왕의 태실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태실을 지방 여러 곳에 나눠 줬다고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방의 백성들이 왕실을 가까이 느끼도록 했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소통의 도구가 많지 않았던 때에 백성들과 통하고자 했던 왕실의 의지를 표현한 듯하다.

뒤편으로는 어진박물관이 있다. 이곳에서 어진과 관련된 여러 유물을 볼 수 있고 세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순종의 면면을 가까이서 대하는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다. 영혼까지 느껴지게 그렸다고 하니 한장의 초상화 만으로도 왕들의 인생이 투영되는 듯한 흥미로운 전시실이다.

오목대


◆오목대 지나 이목대, 그리고 자만마을

오목대는 태조 이성계가 고려말 왜구를 정벌하고 개경으로 돌아가던 중 들러 야연을 베푼 곳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고향에 들러 승전보를 알리고 부하들과 문중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입신양명을 축하한 곳이다. 오목대에서는 한옥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한번쯤 올라가 볼만하다.

오목대에서 찻길 쪽으로 내려올 때 오목교가 있다. 이 다리는 이목대로 가는 길이다. 이목대를 시작으로 최근 벽화로 단장한 자만마을이 있다. 옛날식 철대문과 아기자기한 벽화가 끊길 듯 끊길 듯 좁은 골목으로 이어지는데 천사의 길, 시나브로 길, 산성마을, 남고산성을 지나며 거리가 꽤 된다. 한옥마을에서 조선시대 생활상에 푹 빠졌다면 이곳에선 21세기 서민의 골목길을 걷는다. 낮은 담장과 오래된 철문, 전봇대와 전선줄, 슬레이트 지붕, 잠망경처럼 나와 있는 연통으로부터 따스함이 느껴진다. 어쩌다 주민들을 마주쳐도 낯설지가 않다.

한쪽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물감과 붓, 미완성된 그림이 있다. 잠시 자리를 비운 벽화 화가의 흔적이다. 다음에 오면 또 어떤 그림이 기다리고 있을까. 한옥마을의 까만 지붕이 건너다 보이는 곳에서 다리를 쉬게 한다. 해는 기울고 하늘엔 붉은 빛이 스민다. 조금씩 어두워지는 하늘이 잘 어울리는 곳이다. 소란한 마음을 정리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경기전에서 용안을 보았다면 벽화마을에선 고요함 속에 내 얼굴이, 내 마음이 보인다. 가끔 여행을 통해 자신의 가식 없는 모습과 마주칠 때가 있다. 이곳 전주가 그런 기회를 제공할 지도 모르겠다.
자만마을


[여행 정보]

● 전주한옥마을 가는 법
[승용차]
경부고속도로 - 천안논산고속도로 - 호남고속도로 - 익산포항고속도로 - 순천완주고속도로 - 전진로 - 안골네거리에서 ‘병무청, 시청, 시의회’ 방면으로 좌회전 - 견훤로 - 팽나무6길 - 병무청오거리에서 우회전 - 기린대로 - 태조로 - 은행로

[대중교통]
전주고속버스터미널 - 165번 버스(동물원·전주대) 승차 - 전동성당·한옥마을 정류장 하차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전주한옥마을 주변의 명소는 주차장에 차를 놓고 걸어 다니며 관람한다.
한옥마을 주차장: 검색어 ‘전주한옥마을’ / 전주시 완산구 어진길 30-10 / 전주시 완산구 기린대로 99
경기전 주차장: 검색어 ‘경기전’ /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44

● 여행 주요정보
전주문화관광 사이트: http://tour.jeonju.go.kr
한옥마을 해설투어
출발 시간: 평일 오후 2시 / 주말 및 공휴일 오전 10시, 오후 1시, 오후 3시
출발 장소: 오목대 관광안내소
별도 신청 없이 15분 전 인원 점검 후 정시 출발
문의: 063-281-5046

경기전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3가 102 / 063-281-2790
관람시간: 오전 9시 ~ 오후 7시 / (6월~8월) 오전 9시~ 오후8시 / (11월~2월) 오전 9시 ~ 오후 6시
관람료: 어른 1000원 / 청소년, 군인 700원 / 어린이 500원
어진박물관: http://www.eojinmuseum.org

< 음식 >
조점례남문피순대: 선지가 꽉 찬 순대라 ‘피순대’라 부른다. 전주 남부시장에서 가장 유명한 집으로 점심시간이면 길게 늘어선 줄로 위치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순대국밥 6000원 / 피순대 1만~1만5000원 / 모듬고기 1만~1만5000원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전동3가 2-198 / 063-232-5006
함씨네밥상: 유기농 콩을 이용한 건강한 음식들을 뷔폐식으로 제공한다. 점심시간에만 영업을 하고 청국장, 유기농 설탕 등 자체 개발한 식재료를 구입하거나 택배로 주문할 수 있다.
대인 1만5000원 / 초등학생 5000원 / 4~6세 3000원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반월동 849 / 063-212-2112 / 초록마을 판매 070-7549-6262
옛촌막걸리: 막걸리 기본 한 주전자에 딸려 나오는 안주가 족발, 김치찜, 전 등 황송한 상차림이다. 여기에 두번째, 세번째 막걸리를 주문할 때마다 삼계탕, 간장게장, 산낙지 등 그냥 먹기 미안한 새로운 안주가 보태진다.
막걸리 기본상(한 주전자) 2만원 / 추가시 한 주전자 당 1만5000원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인후동1가 856-10 / 063-247-5550

< 숙박 >
상관리조트: 객실 바닥을 천연 운모석으로 마감해 원적외선 방출효과가 뛰어나고, 땅 속 931m에서 올라오는 지장온천수 스파 시설을 갖춘 휴식형 가족 리조트다.
http://www.sanggwanresort.co.kr /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죽림리 612
문의전화: 063-231-4500~5
객실요금: 10만~30만원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2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