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의 한 전문가(크리스 개프니 에버뱅크 수석 부대표)가 최근 한 말이다. 이 말처럼 8월 뉴욕증시는 푸틴이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7일(이하 현지시간) 러시아가 미국과 유럽연합(EU)산 농산물과 식품에 대해 수입금지 조치를 내리자 뉴욕증시의 3대 지수가 일제히 하락했다. 반면 8일에는 미국이 이라크 북부지역을 공습했음에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에서 군사훈련을 종료했다는 소식에 3대 지수가 1% 내외로 반등했다. 우크라이나 긴장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이라크 악재를 덮은 것이다.
하지만 12일에는 푸틴 대통령이 서방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에 착수했다는 소식에 3대 지수가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인도주의 물품을 실은 러시아 수송 차량들의 자국 진입을 허가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다시 부각됐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미국과 EU 등 서방국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개입이 국제법 위반이라며 러시아를 고립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지만 시장은 오히려 러시아의 맞대응 조치에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러시아의 조치가 유럽경제에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 러, 미·EU산 수입금지 파장 우려… 독일 경제지표 부진
러시아가 지난 7일 서방의 경제제재에 맞서 미국과 유럽연합(EU)산 농산물과 식품 수입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함에 따라 그 파장이 우려된다.
수입금지 대상은 EU, 미국, 호주, 캐나다, 노르웨이 등에서 생산된 육류와 과일, 채소, 우유를 포함한 유제품이다. 앞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 경제제재에 동참한 국가에서 생산된 일부 식품에 대해 수입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러시아는 또 미국과 유럽연합 항공사들의 러시아 영공 통과를 금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아시아지역 등으로 취항하는 서방 항공사들이 러시아 영공을 통과하지 못하면 많은 비용이 들고 비행시간도 늘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농산물과 식품 금수조치 시행으로 미국과 유럽 수출업자들의 타격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 이번 금수 조치는 러시아에도 만만찮은 역풍을 일으킬 전망이다. 러시아가 국내에서 소비하는 식품의 4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탓이다. 러시아는 EU의 과일·채소 수출업자들에겐 가장 큰 시장이고 미국 가금류업체들에겐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시장이다.
경제·산업분석업체인 IHS에 따르면 러시아의 유럽산 과일·채소 수입액은 한해 20억유로(약 2조7660억원)에 이른다. 또 미국의 가금류 수입액은 연간 3억300만달러로 미국 전체 가금류 수출의 7%를 차지한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지정학적 리스크가 높아지는 것은 이머징 국가들의 경제뿐 아니라 글로벌 금융시장과 유럽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상황은 유로존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러시아의 수입금지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은 벌써부터 독일 경제지표에서 확인됐다. 독일 소재 민간 유럽경제연구센터(ZEW)는 지난 12일 8월 투자자신뢰지수가 전월보다 18.5포인트 하락한 8.6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이는 시장전문가 예상치 17을 크게 밑돈 수준이다.
◇ 푸틴이 꺼내든 인도주의 지원 카드… 의도는?
이처럼 미국과 EU에 대해 맞대응 경제제재에 나선 푸틴이 ‘우크라이나 동부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 들어 그 의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푸틴과 러시아는 지난 12일 서방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에 착수했다. 러시아 수송대가 트럭 280대에 2000톤의 구호물품을 싣고 우크라이나로 향한 것이다.
모스크바 당국은 구호물품은 주로 식료품이라고 밝혔다. 곡물 400톤, 설탕 100톤, 이유식 62톤, 의약품 및 의료기기 54톤 등이다. 화물에는 1만2000개의 침낭과 69대의 이동식 발전기도 포함됐다.
앞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11일 조제 마누엘 바호주 EU 집행위원장과의 전화통화에서 국제적십자사와 공조해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 인도주의 지원단을 파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서방 국가들은 푸틴의 의도를 순수하게 보지 않고, 러시아가 인도주의 지원단 파견을 명분으로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투입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인도주의 지원을 핑계로 우크라이나에 군사 개입하려는 의도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바호주 집행위원장은 인도주의 조치를 포함한 어떤 명목 하에서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일방적 군사행동을 취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푸틴에게 전달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우크라이나의 동의 없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에 개입하는 것은 국제법 위반으로 수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 월가 “우크라 사태, 큰 혼란 야기하지는 않을 것”
푸틴의 말 한마디에 우크라이나 사태가 ‘긴장’과 ‘완화’를 오가고 있지만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시장에 큰 혼란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월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동안 지정학적 우려가 매도세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심각한 상황이 전개되지 않는 한 시장이 점차 우크라이나 충격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는 것이다.
록웰 글로벌캐피탈의 수석 시장이코노미스트인 피터 카딜로는 “푸틴과 러시아의 의도에 대한 불확실성이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증시가 크게 하락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며 “실제 어떤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존스트레이딩 인스티튜셔널 서비스의 글로벌 시장전략가인 유세프 압바시는 “투자자들이 점차 지정학적 우려에서 벗어나 다시 시장을 보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4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