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때 보도연맹원이라는 이유로 불법적으로 체포 감금돼 사형을 당한 민간인의 유족들이 낸 재심청구를 법원이 받아들였다.
창원지법 마산지원 형사부는 “지난 1950년 8월에 숨진 박 모 씨 등 보도연맹원 10명의 유족이 제기한 청구에 대해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고 29일 밝혔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숨진 피고인들이 법원이 발부한 사전 또는 사후 영장 없이 불법적으로 체포·감금당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재심 결정 이유를 밝혔다.
그동안 법원은 보도연맹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유족의 손을 들어준 적은 있었지만, 재판을 거쳐 사형을 당한 이들에 대한 재심 개시 결정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도연맹은 1949년 좌익 운동을 하다 전향한 사람들로 조직한 반공단체로, 정식명칭은 ‘국민보도연맹’이다.
1948년 12월 시행된 '국가보안법'에 따라 좌익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전향시켜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취지로 결성됐다. 대한민국 정부 절대 지지, 북한정권 절대 반대, 인류의 자유와 민족성을 무시하는 공산주의 사상 배격·분쇄, 남·북로당의 파괴정책 폭로·분쇄, 민족진영 각 정당·사회단체와 협력해 총력을 결집한다는 내용을 주요 강령으로 삼았다.
1949년 말에는 가입자 수가 30만 명에 달했고, 서울에서만 2만 명에 이르렀다. 사상 낙인이 찍힌 사람들을 대상으로 반강제적으로 운영됐다고 알려진다. 지역별 할당제가 있어 사상범이 아닌 경우에도 등록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정부와 경찰은 초기 후퇴 과정에서 이들에 대해 무차별 즉결처분을 단행했다. 지금까지도 정확한 해명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편, 박씨 등 경남 마산지역 보도연맹원 400여명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중순부터 8월 초순 사이 헌병과 경찰의 소집통보를 받고 마산시내 한 극장에 모였다 모두 영장 없이 체포돼 마산형무소에 수감됐다.
이들은 구금된 상태에서 국방경비법의 이적죄 혐의로 마산지구계엄고등군법회의 재판을 받았다. 결국 이들 가운데 141명은 1950년 8월18일 사형을 선고받고, 같은 달 말 사형이 집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