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한 수일까. 호화로운 사옥 매입에 그칠까.
현대차그룹이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 매각 입찰에 10조5500억원을 써내는 ‘통 큰 베팅’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현대차로서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한전부지의 매입이 절실했지만 증권가에서는 10조원대 베팅은 주주가치 훼손은 물론 단기, 중기적으로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시장 예상치 2배… 증권사 단기영향 불가피
지난 18일 한전은 서울 삼성동 부지 입찰 결과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구성된 현대차그룹 컨소시엄이 낙찰자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10조5500억원을 써내 경쟁 응찰자였던 삼성전자를 크게 앞질렀다. 이는 부지 감정가인 3조3346억원보다 3배 이상 높은 금액이며 시장 예상치인 4~5조원보다도 2배 이상 많은 금액이다.
예상치를 크게 상회한 ‘깜짝’ 입찰가에 현대차 경영진을 제외한 모두가 놀랐다. 특히 이날 시장에서는 현대차 3인방을 비롯한 현대차그룹주 대부분이 7~9%가량 급락했다. 현대차그룹의 낙폭에 코스피지수도 1940선으로 후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대차그룹 시가총액도 크게 떨어졌다. 한전부지 낙찰 전후를 기준으로 8조원이 넘게 증발했다. 하루 동안 10조원을 쓰고, 8조원이 날아간 셈이다.
이날 금융정보제공업체 와이즈에프엔에 따르면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의 시가총액은 18일 기준으로 총 128조8354억원이다. 한전부지 낙찰 전날인 137조1705억원과 비교해 8조3351억원이 줄어든 것이다.
계열사별로 현대차의 시가총액이 가장 큰 폭으로 쪼그라들었다. 현대차의 전일 시가총액은 48조203억원이었으나 현재 시가총액은 43조6147억원 수준. 하루 만에 4조4056억원이 줄었다.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주요 계열사도 크게 빠졌다. 어제만 해도 각각 23조9164억원, 27조1589억원이던 시가총액은 1조8646억원, 2조1415억원 하락한 22조518억원, 25조174억원으로 집계됐다.
증권사들도 앞다퉈 현대차 목표주가를 내렸다. 순현금 보유량이 많은 탓에 재무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이나 기회비용의 측면에서 상당기간 부정적인 인식이 우세할 것이란 전망에서다.
먼저 전문가들은 현대차그룹에 재무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분석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지만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가 확보한 현금성자산과 만기 1년 미만의 단기금융상품은 6월 말 기준으로 총 29조4856원이다. 현대차가 17조6558억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기아차와 현대모비스가 각각 5조7276억원, 6조122억원의 현금을 확보하고 있다. 이 금액이면 현대차그룹은 계약일로부터 1년 이내 납부해야 하는 한전부지 인수대금을 치르는 데 문제가 없다.
부지 매입비용을 제외한 건립비 및 제반비용 또한 30여개 입주 예정 계열사가 8년간 순차 분산 투자할 예정으로 개별사에 적용되는 부담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류연화 아이엠투자증권 에널리스트는 “3사의 현금성 자산과 현금 창출 능력을 볼 때 장기적으로 부담이 되는 수준은 아니다”면서 “개발 비용도 여러 계열사가 분담할 것으로 보여 재무적인 이슈는 단기에 그칠 것”으로 판단했다.
◆중장기적 평가, ‘기회비용 VS 무형가치’ 엇갈려
문제는 주주들의 동의 여부와 기회비용 측면에 있다. 기업은 현금 보유를 통해 미래기술에 대한 개발 등 투자와 배당 등의 주주친화정책을 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번 투자결정은 재무구조에 미칠 타격은 제한적이나 기회비용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고 애널리스트는 “대다수 주주들의 광범위한 동의를 배제한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진행됐고 그 규모가 경영에 영향을 미칠 만큼의 천문학적 수준이라는 점에서 수익창출의 목적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이번 결정으로 현대차가 향후 배임소송 가능성과 정부 정책에 기대를 모았던 주주친화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깨질 가능성에 주목했다. 고 애널리스트는 “투자자들은 현대차의 막대한 사내유보금이 투자와 배당 재원으로 쓰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며 “하지만 입찰결과 발표로 외국인 투자자 등 투자자들이 실망감을 표하면서 실망매물이 크게 출회됐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컨소시엄을 구성한 현대차 3인방에 단기충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홍진호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13조원이라는 거금을 주주환원 강화 혹은 성장을 위한 재원으로 활용한 것이 아닌 단순한 ‘호화스러운 사옥 매입’에 사용했다고 비춰졌을 것”이라며 전일 대규모 투매 원인을 설명했다.
다만 홍 애널리스트는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현대차 3사의 이익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며 “주가조정은 대부분 마무리됐으며 추가하락이 발생할 시 저가매수로 접근하는 전략이 유효하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한전부지 매입으로 무형가치가 창출돼 기회비용 등의 부정적 평가가 상쇄할 것이라는 진단도 나왔다. 서성문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부지매입에 따른 무형가치와 시너지 창출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통합사옥의 필요성 ▲브랜드가치 상승 등을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