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서울역은 달랐다. 통화가 널을 뛰어도 해외로 떠나야 하고 돈을 보내야 하는 이들에게 달러의 힘은 강력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몇달 전 환전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울며 겨자먹기로 돈을 꺼내드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일반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강달러와 환율전쟁'은 어땠을까. 기자는 지난 10월 말 환전의 거리, 명동과 서울역으로 향했다.
◆명동 환전상인 "강달러가 뭐예요?"
달러강세가 계속되던 지난 10월22일, 서울 중구 명동을 찾았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1050원대 중반으로 지난 7월 1000원대와 비교해 50원 이상 뛰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3분기 중 외환시장 동향'에 따르면 3분기 말 현재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055.2원으로 2분기 말 1011.8원보다 4.1% 상승했다.
이 상승폭은 지난 2011년 3분기 중 달러화 대비 원화가치가 9.4% 절하된 이후 3년 만에 가장 큰 폭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의 달러화 강세가 원화가치 하락을 부추긴 것. 시장에서는 이를 '슈퍼달러'라고 칭할 정도로 최근 달러화는 경쟁국들에 비해 초강세를 보였다.
하지만 명동 곳곳에 위치한 환전소는 원/달러 환율의 상승에도 뜨뜻미지근한 반응이었다. 중국인을 상대로 꽤 거액을 바꿔주던 환전소의 한 주인은 달러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강달러가 뭐야? 우리는 그런 거 잘 몰라. 그냥 그날그날 시세보고 거래하는 거지. 달러거래도 얼마 없어"라며 손사래를 쳤다.
열에 아홉이 그랬다. 이날 기자가 만난 환전소 관계자들은 최근의 달러강세가 환전소 운영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이들은 이곳에 오는 손님들 대부분이 관광객이라고 밝혔다. 그날 하루 쓰고 내일 떠나는 이들이 많은데 특히 관광객의 90%가 이른바 '요우커'로 불리는 중국인관광객이라고 전했다. 달러를 사용하는 이들은 동남아관광객으로 그마저도 100~200달러 등 소액 환전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환전소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규모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목이 좋은 환전소에서는 소액 혹은 거액의 돈을 바꾸려는 관광객과 상인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이들은 캐리어를 끌고 나타나기도 했으며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으려는 듯 화폐다발을 손에 들고 주변을 살피기 바빴다. 기자는 오후 내내 환전소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달러를 바꾸려는 이는 만나지 못했다. 대신 강달러의 위력을 달러가 아닌 위안화에서 찾을 수 있었다.
중국인을 대상으로 여행업에 종사한다는 40대의 한 남성은 거액을 환전하고 남은 거스름돈 1000원에 황당하단 듯 웃으며 가게를 나왔다. 그는 "지난 9월 초만 해도 1500만원을 바꾸면 9만위안을 줬어요. 그런데 지금은 8만7000위안이에요"라며 "몇만원이 거스름돈으로 남았는데 이제는 달랑 1000원 한장 주네요"라고 말했다. 이 남성은 "위안화도 몇달 새 많이 약해졌다"며 "그럼에도 은행보다는 50만원가량 더 얹어주니까 환전소를 찾게 된다"고 덧붙였다.
최근 위안화는 약세를 거듭하고 있다. 달러화의 강세로 경쟁국의 통화가치가 떨어지면서 일본에 이어 '철옹성' 중국까지 위안화가치가 하락한 것이다. 현재 달러당 위안 환율은 6.14위안으로 6위안을 가까스로 넘겼던 연초와 비교하면 위안화가치는 올 들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신이 난 건 중국인관광객. 중국 여학생들은 환전소 간판에 기재된 오늘자 환율을 셈하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마침내 결정을 내린 듯 환전소로 들어선 이들은 우리 돈으로 50만원가량을 환전한 후 근처 쇼핑거리로 향했다. 요우커가 많아지면서 환전소의 풍경도 변했다. 명동 중심에 위치한 A환전소의 한 관계자는 우리말로 묻자 "한국말 못해요"라고 손을 저었다. 그는 요우커를 대상으로 하는 특화된 환전상이었다.
이전까지 명동을 휩쓸었던 일본인관광객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강달러에 엔저현상이 계속되면서 일본인들이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됐다고 환전소 관계자들은 귀띔했다.
◆서울역, 신혼여행객 '울상' 기러기아빠 '눈물'
반면 강달러의 위력은 서울역에서 찾을 수 있었다. 지난 10월21일 서울역 B은행 환전센터에서 만난 이들은 조금이라도 싼 값에 달러를 바꾸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전했다. 며칠 후 괌으로 신혼여행을 떠난다는 김미영씨(가명·32)는 "지난주부터 환전을 하려고 했는데 계속 오르더라고요. 뉴스에서 계속 달러강세라고 하니까 차라리 빨리 환전하는 게 낫겠다 싶어 달러가 조금 떨어진 오늘 환전하려고 나왔어요"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럴 줄 알았으면 7월에 할 걸 후회돼요"라고 덧붙였다.
'기러기아빠' 조희곤씨(가명·51)도 걱정이 늘었다. 미국에 유학 가 있는 두 딸과 아내를 생각하면 점점 기세를 더하는 달러강세가 야속하기 그지없다. 조씨는 매달 3000달러를 송금한다. 지난 7월만 해도 1010원대 환율 기준으로 303만원이 들었지만 3개월 새 317만원(22일 1055원 환율 기준)으로 10만원 이상 부담이 늘었다. 원/달러 환율이 1070원까지 육박했던 지난 10월10일을 기준으로 하면 20만원가량 불어난 셈이다.
이에 조씨는 "환율변동 추이에 민감하지 않은 기러기아빠는 아무도 없다"며 "연말에 1000원대가 붕괴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는데 이쯤 되니 환율을 예측한다는 것도 무의미하다. 기러기아빠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얼마에 바꿨다. 싸게 환전했다'는 글을 보면 부럽기만 하다"고 말하며 씁쓸해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