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이라고 하면 상속이나 돈을 떠올리기 쉽상이지만 사랑을 말하는 유언만큼 소중하고 아름다운 유언은 없을 것이다. 가수 신해철은 4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 유언이 없었다.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심폐소생술을 받은 뒤 아산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3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지만 6일 동안 의식을 찾지 못하다가 뇌손상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을 떠날 때 유언을 하지 못했지만 건강하게 살아있을 때 남긴 유언이 있다. 지난 2011년 7월 케이블TV MBC에브리원의 <부엉이>(부부가 엉켜사는 이야기) 시즌2에 출연했을 때 아내에게 남긴 영상 유언장이 그것이다.

"만약 내게 재난이 닥쳐서 내가 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됐을 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혹시 못다 하고 떠나게 될 것이 두려워 남기는 이야기 편지, 내 유언장입니다"라고 소개하며 "집안 친척 중 급사한 분들이 몇 있는데 갑자기 돌아가신 분은 가족들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못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누구도 예측 못한 죽음… 신해철이 남긴 사랑의 유언들

불과 3년 뒤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을 보면서 우리가 현재 건강하게 잘 살고 있더라도 언제 무슨 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날지 아무도 모르기에 평소 유언을 남겨두는 것의 필요성을 느낀다.

영상 유언장에서 신해철은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도 당신의 남편이 되고 싶다. 당신의 아들, 엄마, 오빠, 강아지 그 무엇으로도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다.

신해철이 프러포즈할 당시 아내 윤원희씨는 암투병 중이었다고 한다. 병원 측으로부터 아이를 갖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음에도 그는 아내와 결혼해 사랑의 순수함을 보여준 바 있다. 아내는 "남편이 내 병을 고칠 수 있게 도와준 생명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아내보다 먼저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가 청년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조언으로는 지난 7월 JTBC의 <비정상회담>에서 한 말이 회자된다. "흔히 꿈은 이뤄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 있고 그 꿈이 (이뤄진다고 해서) 행복과 직결된 것은 아니다. 네가 무슨 꿈을 이루는지에 대해 신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행복한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엄청난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러니 꿈을 이룬다는 성공의 결과보다는 자신의 행복이 더 중요한 거라 생각한다."

그가 출연한 마지막 방송은 JTBC의 새로운 프로 <속사정 쌀롱>의 첫회로, 지난 10월9일 녹화됐다. 원래 10월26일 방송 예정이었지만 그가 10월17일 병원에서 수술받고 며칠 뒤 임종함에 따라 결방됐다가 유가족과 소속사에서 허락해 지난 11월2일 방영됐다.

여기서도 그는 아내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결혼할 때 내가 잘 웃길 수 있는 여자, 나에게 잘 웃어주는 여자, 내가 쉽게 행복함을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며 "아내는 작은 일에 감사하고 작은 노력에도 웃어준다. 그래서 그런 사람과 결혼했다"고 말했다.

이 프로에서 신해철은 자신이 "독설가는 아닌데 예쁜 말은 금방 사라지고 독설은 뼈처럼 오래 남는 것 같다"며 안티팬으로부터 독설가라고 공격받아온 것에 대한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신해철이 직접 작사 작곡한 수많은 명곡 중 마치 유언처럼 된 곡이 있다. 지난 2010년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노래 중 뜨지 못해 아쉬운 곡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민물장어의 꿈'을 꼽으며 "이 곡은 내가 죽으면 뜰 것이다. 내 장례식장에서 울려 퍼질 곡이고 노래 가사는 내 묘비명이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생전유언인양 그대로 됐다.

그의 빈소에는 '민물장어의 꿈'이 울려 퍼져 조문객들의 가슴을 울렸고 여러 음원사이트에서 1위에 올라 무려 15년이 지난 뒤 차트를 석권하는 기록을 남겼다. 많은 청년들이 마니아처럼 그를 따르는 것은 단순히 그의 노래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만든 노래에 담긴 삶에 대한 그의 철학을 좋아한 것이다.


 

고 신해철 영결식 /사진=머니투데이 이기범 기자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유언을 남긴 사람들

사람들이 생전유언을 남길 때는 나름대로 자신의 인생에 크게 영향을 준 부분이나 지나온 길에서 특별히 소중했던 기억을 바탕으로 말하는 경향이 있다.

'소중한 사람'이라는 노래로 사랑을 받았던 가수 길은정은 생전에 암투병 중일 때 "수의 대신 KBS <빅쇼> 무대에서 입었던 미색 드레스를 입혀달라"며 "장례식은 검소하게 치르고 화장해서 납골당에 안치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진통제를 맞아가며 매일 라디오방송을 진행했고 숨지기 바로 전날까지도 방송을 진행해 듣는 이들의 가슴을 울렸던 길은정은 10년간의 암투병 끝에 4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60년대 최고의 청춘스타였던 신성일, 엄앵란과 함께 <맨발의 청춘>에 출연해 크게 인기를 얻은 트위스트김의 생전유언은 "청바지를 입혀달라"는 것이었다. 개성 넘치는 성격파 배우로 인정받으며 7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렸던 그는 트위스트 춤과 청바지를 유행시킨 장본인이다. 4년 넘게 뇌출혈로 투병하다 2010년 11월 74세에 숨을 거뒀다.

대장경 연구학자들을 거들고 지식을 쌓아가며 '팔만대장경 지킴이'의 길을 걸었던 성안스님은 팔만대장경 연구원들에게 생전유언으로 "나중에 내가 죽으면 목판을 하나 사서 같이 태워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성안스님은 지난 4월 승용차를 타고 88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덤프트럭이 들이받는 사고로 갑작스레 입적했다.

얼마 전까지 역대 다양성 영화 흥행 1위를 지켰던 이충렬 감독의 <워낭소리>는 농사짓는 촌로가 가족처럼 지내는 소와의 소소한 일상을 다룬 독립 다큐멘터리영화로 약 30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평생 농부로만 살다가 이 영화에 출연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 최원균 할아버지의 생전유언은 "소 옆에 묻어달라"였다. 85세인 지난해 10월 폐암으로 사망했을 때 영화에 함께 출연했던 소를 이장해 고인의 뜻대로 나란히 워낭소리 공원묘지에 묻었다.

◆유언 한마디로 관광명소 '우뚝'

특이한 생전유언 탓에 관광자원화 된 사례가 있다. 바로 콜럼버스의 무덤이다. 스페인 세비야대성당 중앙에 위치한 콜럼버스의 무덤은 4명이 관을 떠받들고 서 있는 형태다. 콜럼버스는 스페인 여왕 이사벨의 후원을 받아 인도로 가는 새로운 해상무역로를 개척하던 중 서인도제도를 발견했다. 원주민의 금을 빼앗고 많은 사람을 노예로 끌며 스페인에 돌아온 그는 여왕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이후 다시 항해를 떠났지만 인도를 찾는 데 실패하고 대신들에 의해 사기꾼으로 몰려 처형될 위기에 몰렸다. 재산과 제독 직위를 압수당하고 비참하게 노년을 보낸 콜럼버스는 "죽거든 신대륙에 묻어다오. 죽어서도 스페인 땅에 발이 닿고 싶지 않다"고 생전유언을 했다.

후손들은 그의 유언대로 그의 시신을 신대륙인 쿠바에 묻었다. 1989년 쿠바가 스페인령에서 벗어나자 유골이 훼손될 것을 우려한 후손들은 유골을 다시 스페인으로 가져와 매장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의 유언을 존중해 관을 땅에 묻지 않고 네개의 조각상이 관을 드는 특이한 형태의 무덤을 만들었다. 결국 그의 무덤은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관광명소가 됐다.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생전유언으로 남긴 이도 있다. <로마의 휴일>로 하루아침에 스타덤에 올라 세계 여성들의 우상이자 남성들의 연인이 된 할리우드 스타 오드리 헵번이다.


20세기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자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나눔의 삶을 실천한 여배우 오드리 헵번이 서울 도심 주요 버스 정류장에 깜짝 등장해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사진제공=오드리 헵번 어린이재단

그녀는 유니세프 친선대사가 된 후에는 굶주림과 병으로 죽어가는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구호활동에 주력했다. 수단, 에티오피아, 방글라데시, 엘살바도르, 소말리아를 비롯해 세계 수십개국의 구호지역을 다녔다. 60세가 넘은 나이에도 무리하다 건강이 악화돼 직장암 진단을 받았다. 그녀는 자녀들에게 생전유언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읽어줬는데 인류애로 충만한 그의 아름다운 마음씨에 어울리는 유언이다.

"아름다운 입술을 가지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봐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라.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갖고 싶으면 하루 한번 어린이가 손가락으로 네 머리를 쓰다듬게 하라.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으면 결코 너 혼자 걷고 있지 않음을 명심하며 걸어라. 사람들은 상처에서 치유되어야 하고, 낡은 것으로부터 새로워져야 하고, 병에서 회복되어야 하고, 무지함으로부터 교화되어야 하며, 고통으로부터 구원받고 또 구원받아야 한다. 결코 누구도 버려서는 안된다. 기억하라. 네가 도움을 주는 손이 필요하다면 너의 팔 끝에 있는 손을 이용하면 된다. 네가 더 나이가 들면 손이 두개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한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다."

생전유언은 임종을 앞두고 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거나 의식이 분명할 때 가족이나 주변사람들에게 자신의 죽음 이후에도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말을 남기는 것이다. 운명은 알 수 없고 미래는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사망 전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혼수상태에 처할 경우를 대비할 필요가 있는 점에서 생전유언을 준비해둬야 한다. 당신은 어떤 생전유언을 남기고 싶은가.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