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는 지난 2011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105~108달러 내외에서 움직였다. 그랬던 국제유가가 크게 출렁인 것은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셰일가스·오일혁명으로 인해 에너지소비국이었던 미국이 생산국으로 변화한 데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생산량을 줄이지 않으면서 국제유가의 가격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난 6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의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격은 배럴당 47.93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날 두바이유가격은 전날보다 2달러 넘게 내리면서 배럴당 48.08달러에 장을 마쳤다. 다음날인 7일 런던석유거래소에서는 2월 인도분 브렌트유가 장중 배럴당 50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100달러가 넘던 세계 3대 유종의 가격이 모두 40달러대로 진입한 것이다.
국제유가가 급락하자 세계가 혼란에 빠졌다. 특히 ‘오일머니’를 자랑하던 중동과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은 경기가 크게 악화됐다. 투자심리도 흔들렸다. 국제유가 하락은 물가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 이로 인해 디플레이션(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이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우리는 지금까지 국제유가의 상승만을 걱정했다.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의 특성상 국제유가가 오른다는 것은 곧 물가상승을 뜻했고 경기악화가 동반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국제유가 하락이 우리에게도 재앙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그 이유는 뭘까.
◆ 유가하락, 긍정적인 건 맞는데…
전문가들은 세계경제가 흔들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으로선 “호재가 맞다”고 설명한다. 정부의 견해도 동일하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7일 경제장관회의에서 “최근 국제유가의 하락은 공급요인에 의한 것이며 이는 우리 경제에 큰 호재”라고 평가했다.
한국개발연구원 등 5개 국책기관이 같은 날 경제장관회의에서 발표한 ‘유가하락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유가가 1달러 내릴 때마다 우리 경제에는 9억달러의 비용절감 효과가 발생한다.
통상적으로 국제유가의 하락은 물가를 안정시키고 실질가처분소득(개인소득 중 소비·저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소득)을 올리는 동시에 제조업의 생산비용을 낮추는 등 긍정적 영향을 가져온다. 반면 에너지 수출의존도가 높은 신흥국의 경기에는 악영향을 끼친다.
정부가 연초부터 ‘선수’를 치고 나온 것은 저유가시대를 맞아 우리나라가 수혜를 보는 것이 아니라 되레 세계경기 둔화의 흐름에 휩쓸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서다.
연초 코스피지수는 저유가에 따른 경기둔화 우려와 더불어 그리스의 유로존 탈출(그렉시트) 우려로 약세흐름을 보였다. 코스피지수는 1900선을 하회한 데 이어 1876.27포인트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지난 7일에는 다시 1900선을 회복했지만 아직은 안심하기 이르다.
국제유가의 하락이 호재라면 왜 우리 주식시장에는 반영되지 않는 걸까. 이에 대해 조병현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유가의 하락이 신흥국 자산에 대한 회피심리를 자극하는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여러가지 정치적인 사안이 얽히면서 유가하락이 곧 러시아의 디폴트 우려 확산이라는 명제와 거의 동일하게 간주된다는 것. 또한 신흥지역의 산유국들도 펀더멘털 악화라는 우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조 애널리스트는 “유가하락에 대한 본질적인 우려는 단기적인 디플레이션 압력 부담이 먼저 다가오기 때문”이라며 “저유가가 중장기적으로 수요상승 등 경기회복을 유발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당장 디플레이션 압력에 직면한 국가의 경우 적극적인 정책대응을 통해 이와 관련된 우려를 진정시키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재용 하나대투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두가지 장벽인 미국의 금리인상과 중국 생산자물가의 반등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주식시장에 유가하락의 우호적 영향력이 생각보다 늦게 반영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국제유가 하락이 선진국과 공업신흥국에는 긍정적이지만 이보다 앞서 원자재 수출 신흥국과 관련 기업에는 위험으로 작용한다”며 “신흥국의 총수요가 어느 정도 회복되기 이전까지는 국제유가 급락에 따른 섣부른 낙관론을 경계한다”고 밝혔다.
◆ 수혜업종, 중소형주·소비재 종목
그렇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조 애널리스트는 “국제유가 하락의 근본적인 문제는 유가가 떨어짐으로써 기업의 성장성에 대한 우려가 형성된다는 점”이라며 “단기적으로 성장성에 대한 프리미엄이 부여되기 용이한 코스닥이나 중소형주 중심의 접근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전통적인 유가하락 수혜주도 살펴볼 필요는 있다. 글로벌시장에서는 국제유가가 반등추세를 보이는 시기로 올 하반기를 꼽는다. 이를 감안하면 당분간은 유가하락 수혜주가 잘 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외에 소비재관련 종목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정우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4분기 평균 유가는 75달러 수준으로 과거 10년 평균 75달러와 일치한다”며 “올해 유가가 50달러대 중반에서 안정화되면 원유소비 비중은 3%대로 하락한다”고 밝혔다.
그는 산술적으로 봤을 때 유가하락으로 OECD 국가의 소비는 0.5~0.7%포인트 상승하는데, 우리나라의 소비재 수출주력품목인 IT와 자동차에 대해 올해 다소 낙관적으로 보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박중제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국내 에너지·소재·산업재기업 가운데 유가하락에 따른 수혜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종목은 주로 시멘트, 제지, 페인트, 항공업종”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주의해야 할 종목도 있다. 정유·화학 등 전통적인 유가하락 피해주다. 박 애널리스트는 “정유·화학산업은 유가하락 자체가 매출액 감소요인으로 작용한다”며 “다만 최근 유가하락이 수요가 아닌 공급요인에 의해 나타난다는 점에서 과거보다 매출액 감소율이 훨씬 제한적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