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전세난’, ‘급격한 월세전환’에 서민들의 부채병(病)이 깊어지는 가운데 정부가 ‘주사기’를 꺼내들었다.

지난 6일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이 취임 후 첫 카드를 꺼냈다. ‘서민 주거비 부담 완화방안’이다. “국민주택기금을 통해 전·월세대출 및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낮춰주겠다”는 것이 골자다.

그런데 시장 반응이 영 시큰둥하다. 원인 모를 고열 증상에 해열제만 쓰는 것처럼 당장 이자 부담 완화에는 효과가 있어도 근본적인 치료 효과는 얻기 어렵다는 것. 일각에서는 오히려 전세난을 가중시켜 부동산시장의 '약골(弱骨)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사진=뉴스1 손형주 기자

◆서민 주거비 부담 완화, 대출 금리 인하에 그쳐

국토교통부는 오는 27일부터 전세 보증금 마련을 위한 ‘버팀목대출’ 금리를 현행 1.7~3.3%에서 1.5~3.1%로 0.2%포인트로 낮춘다.

신혼부부·청년층 1인 가구에 대한 지원 범위도 확대한다. 신혼부부 전세대출 지원요건을 부부합산 연소득 5500만원 이하에서 6000만원으로 상향 조정한다. 청년층 단독세대주에 대한 지원 가능 연령도 만 30세 이상에서 만 25세 이상으로 확대키로 했다.

월세대출도 대출금리를 내리고 지원대상을 확대한다. ‘저소득층 월세대출’의 금리는 현재 2.0%에서 1.5%로 0.5%포인트 낮춘다. 아울러 월세대출은 변동금리인 점을 고려해 기존 계좌에도 금리 인하를 적용키로 했다. 지원 요건 역시 문턱을 낮춰 만 35세 이하 취업준비생의 경우 부모의 소득 요건을 3000만원 이하에서 6000만원 이하로 완화한다. 또한 부부합산 소득 4000만원 이하인 ‘취업 후 5년 이내 사회초년생(만 35세 이하)’이 추가되며 연세(年貰) 형태로 거주하는 세입자에 대해 연납 대출(360만원)도 허용한다.

주택 구입자를 위한 ‘디딤돌대출’ 지원도 강화키로 했다. 현행 2.6~3.4%의 대출 금리를 2.3~3.1%로 0.3%포인트 낮춘다. 더불어 청약저축 장기가입자에 대한 우대금리 지원은 확대했다. 기존에는 청약저축 가입 후 2년(24회 납입) 이상일 경우 0.1%포인트, 4년(48회 납입) 이상일 경우 0.2%포인트의 우대금리를 적용해줬지만 앞으로는 1년(12회 납입) 이상 0.1%포인트, 3년(36회 납입) 이상 0.2%포인트로 바뀐다.


이와 함께 전세보증금을 보호하기 위한 ‘임차보증금 반환보증’ 지원을 강화한다. 최근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상승하면서 ‘깡통 전세’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전세 보증금을 보호하기 위한 반환보증의 가입대상 및 취급기관을 확대한다. 내달부터 개인에게 적용되는 보증료율을 0.197%에서 0.15%로 0.047%포인트(약 25%) 낮추고, 가입 대상은 아파트의 경우 LTV(주택담보인정비율) 90% 이하에서 100% 이하로 확대한다. 또한 서민·취약계층의 보증료율은 0.158%에서 0.09%로 낮추고 보증료 할인대상이 되는 서민·취약계층의 범위는 연소득 4000만원 이하, 신혼부부, 한부모·다문화 가정 등으로 넓히기로 했다.

손태락 국토교통부 주택토지실장은 “매매시장 회복세를 이어가되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시중금리 하락효과 등을 반영해 임대차 시장 리스크 완화와 서민 주거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보완방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전세난 심화’가 정부의 속뜻?

이번 국토교통부의 ‘서민 주거비 부담 완화방안’에 대해 시장에선 “약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대출자들의 금리 부담이 줄어든다는 측면에선 긍정적이지만, 이는 지난 3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대출금리의 인하’ 외엔 별다른 의미를 찾기 어렵다는 것. “전월세대책 큰 소리 치더니 고작 이거?”라는 반응 일색이다. 이에 국토부도 “범정부 차원의 서민 금융지원 종합대책은 추후 별도로 발표할 예정”이라며 서둘러 진화에 나선 모습이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 연구위원은 "그간 정책금융상품의 경우 금리인하의 반영 속도가 느린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신속하게 대응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면서 "다만 조정된 금리가 크게 낮은 것도 아니어서 대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추가적인 대책 발표를 기대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이상영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의 전월세대책이 ‘임차인’에게만 초점을 맞춘 미봉책이라고 지적했다. 임대 물량 공급이 늘어날 수 있도록 임대인 중심의 지원책이 뒤따라야한다는 주장이다. 전체 임대시장에서 개인 임대인 비중이 80%이상인 만큼 선진국처럼 임대인에게 혜택을 줘야 전월세시장 안정화가 이뤄진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과거처럼 집값이 크게 오르던 시절에는 임대인에게 특별한 인센티브가 필요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급변했다”며 “장기 임대를 주면 상속증여세를 낮춰준다든가 보험 혜택을 주는 등 공급이 증가하도록 유도해야 전월세시장이 안정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정부가 “전세난 심화를 방치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승섭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감시팀 부장은 “전월세 인상률 제한 등 근본적인 대책 없이 대출금리를 낮추는 것은 자칫 전셋값을 더 올리게 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며 “전세난에 시달린 세입자를 주택 구매로 유도하기 위한 것이 이번 대책의 속뜻일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7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