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5’로 대변되는 국내 보일러업계가 울상을 짓는 이유다. 현재 보일러시장 점유율 추정치를 살펴 보면 경동나비엔, 귀뚜라미, 린나이코리아가 20~40% 안팎으로 빅3를 형성하고 있고 대성쎌틱이 10%로 그 뒤를, 롯데기공이 마지막을 차지하는 모양새다.
◆ 따뜻한 날씨… 매출 ‘뚝뚝뚝’
우선 ‘빅5’의 가장 큰 고민은 매출이다. 한번 얼어붙은 매출이 좀처럼 회복세를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경동나비엔은 지난해 매출액 4289억8500만원, 영업이익 134억6400만원을 기록했다. 전년동기 대비 매출액은 3.6%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31.9% 급감했다. 장사를 잘하고도 실속은 없었던 셈. 같은기간 당기순이익은 93억8000만원으로 전년도 111억2900만원에 비해 15.7% 줄었다.
업계 2위인 귀뚜라미는 지난해 매출이 2864억6300여만원을 기록, 전년(3237억9500여만원) 대비 11.5% 줄었다. 영업이익은 111억7500여만원으로 전년보다 33% 감소했으나 당기순이익은 430억1000여만원으로 13.8% 늘었다.
그나마 린나이코리아는 사정이 좀 나은 편. 린나이는 지난해 3084억4800여만원으로 2811억9400여만원을 기록한 전년보다 매출이 9.7% 늘었다. 대성쎌틱에너시스를 통해 보일러사업을 펼치고 있는 대성산업과 롯데기공 역시 다른 보일러업체와 마찬가지로 외형 성장세가 주춤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실적 부진이 주택·건설 경기와 비슷한 곡선을 그리며 움직이는 보일러시장의 특성 때문으로 분석한다. 아파트 건설경기가 크게 위축되면서 가정용 가스보일러의 B2B시장 매출이 크게 줄어든 데다 지난 겨울 날씨마저 도와주지 않았다.
보일러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내수시장 정체에 따른 신규 수급 물량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날씨까지 따뜻해 어려움이 많았다”며 “보일러는 업계특성상 12월에서 2월까지 겨울기온이 연 매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그 사이 반짝 추위가 있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날씨가 따뜻해 지역난방 도시가스 사용량이 현저하게 줄었고 전체 매출이 줄었다”고 말했다.
이에 각 업체는 앞다퉈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등 타개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이마저도 갖가지 문제가 산재한 상태다. 국내 업체들의 진출이 활발한 러시아의 경우 최근 루블화 가치 하락으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고, 중국시장에서도 더 이상 국내 보일러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게 됐다.
한·중 FTA 타결로 한국은 중국산 보일러에 대한 관세를 당장 철폐해야 하는 반면 한국산 보일러는 중국 내수시장에서 현재 10%인 관세가 매년 1%포인트씩 내려가 10년 뒤에나 관세가 완전히 사라진다. 중국시장을 새로운 타깃으로 삼아 생산규모를 늘리고 수출을 기획했던 한 보일러업체는 한·중 FTA로 역차별 논란에 휩싸이면서 대대적인 계획 수정에 나서기도 했다.
보일러업계 관계자는 “업체마다 새로운 수요를 발굴하기 위해 중국 등 해외시장 공략에 주력했으나 원화 강세와 FTA 등이 이어지면서 악재가 겹쳤다”며 “태양열 시스템, 친환경 보일러 등 신기술 개발로 또다른 자구책을 찾으려 하지만 쉽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 글로벌사 국내 진출에 ‘벌벌벌’
글로벌 보일러업체들의 한국시장 러시도 국내기업들에겐 적잖은 위협이다. 전세계 13개 생산기지, 20개국이 넘는 곳에 판매 법인을 두고 있는 세계 1위 보일러기업인 바일란트는 이미 국내에 법인을 설립하고 판매 준비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 아니다. 중국에 공장을 두고 있는 보쉬 등 다른 보일러업체들도 국내 수출을 위한 인증 절차를 밟기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글로벌 업체들이 속속 국내시장에 진입한다면 머지않아 국내 보일러시장이 해외제품의 각축장이 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에 따라 판매율을 높이기 위한 가격 경쟁에만 열을 올릴 게 아니라 국내업체 스스로 기술 개발과 품질 경쟁에 힘써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보일러업계 종사자는 “국내 보일러시장은 품질보다는 매출과 판매량 경쟁에 치중돼 있다”며 “그 결과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보일러시장이 형성되고 이는 다시 경영 압박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로 돌아오는 구조”라고 털어놨다.
이어 “하위권 업체는 비슷한 업체를 인수해 몸집을 키우거나 판매망을 확보하는 등 유통채널을 넓히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며 “결국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제품은 장기적으로 시장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 역시 국내 보일러업계가 처한 상황에 대한 해결책으로 ▲품질 경쟁력 강화 ▲수출 품목 다변화 ▲정부 제도 개선 및 정책 지원 강화 등을 제시했다.
업계 한 전문가는 “기본적으로 올해 실적 역시 전년과 비슷한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다만 수년째 침체를 겪은 국내와 달리 대외환경은 언제든지 긍적적으로 전환될 수 있어 패러다임 변화가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삼진 악재에 발목잡힌 보일러업계가 이 위기를 터닝 포인트로 삼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8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