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황제가 머물던 곳
‘덕수궁’이라 쓰여진 슬리퍼로 갈아 신고 탁자에 앉았다. 작지만 짜임새 있는 계단식 정원 너머로 함녕전과 덕홍전이 보이고 멀리 시청앞 고층건물들이 허공을 메우고 있다. 고종은 여기 정관헌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시곤 했다. 고종의 개인 다방이었던 셈이다. 강압적으로 을사늑약이 체결됐고, 자식들은 적국의 볼모로 가고, 아내는 처참한 죽음을 당했다. 한 나라의 왕이었지만 마음 내려놓을 만한 공간은 어쩌면 이곳이 유일했을지도 모른다. 한국식인 듯, 중국식인 듯 멋을 내 지은 정자에 서양식 샹들리에를 달았다. 이국적인 아름다움 저편에 그 당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조선의 모습이 보이는 듯도 하다. 어쨌든 찻집이 있으면 딱 좋을 만한 자리다. 여행자는 시원한 그늘에 앉아 볕이 드는 함녕전 안마당을 바라보며 100년 전 이곳으로 상상의 여행을 떠난다.
덕수궁 전체가 정관헌 같다. 조선의 전통 양식으로 지어진 중화문과 중화전이 있는가 하면 석조전과 석조전 서관은 서양식 건물이고, 함녕전은 조선의 전각이지만 계단과 같은 개량의 흔적이 보인다.
함녕전은 고종의 침전이었다. 대한제국 선포 후 석조전을 으리으리하게 지었지만 한번도 침전을 옮긴 적은 없었다. 고종은 이곳에서 생활하고 이곳에서 승하했다. 함녕전 옆은 덕홍전이다. 이곳은 손님을 접견하던 곳이다. 덕홍전과 함녕전 뒤쪽 소나무 사이로 낸 계단을 오르면 앞서 소개한 정관헌이 있다.
◆경운궁, 파란만장해지다
덕수궁의 원래 이름은 경운궁이다. 처음부터 궁으로 지어졌던 것도 아니다. 세조의 큰손자인 월산대군의 개인 저택이었다. 월산대군의 아버지인 도원군이 세자로 책봉됐다가 20세에 죽자 세자빈이었던 한씨가 출궁할 때 나라에서 지어줬다. 즉 세조가 며느리를 출가시키며 준 집이다. 과부가 된 세조 며느리 한씨와 그 두 아들인 월산대군과 자을산군은 궁에서 나와 이 집에서 살았다. 그런데 세조의 아들 예종이 재위 13개월 만에 승하하면서 운명이 바뀌었다. 원손인 제안대군의 나이가 어려 왕위에 오르지 못했고 여기 살고 있던 자을산군이 왕으로 책봉된 것이다. 왕이 된 자을산군은 어머니와 함께 다시 궁으로 들어갔고 결국 월산대군 혼자 집에 남았다.(자을산군의 시호는 성종이다.)
100년이 더 흘러 1593년 임진왜란 때다. 의주로 피난 갔던 선조가 돌아와 이곳에 임시거처를 두며 행궁 역할을 한다. 이때부터 면적이 늘어나기 시작해 관청들도 하나 둘 궁 안으로 들어왔고, 선조는 1608년 서거할 때까지 이곳에서 정무를 봤다. 광해군도 경운궁 서청에서 즉위했다. 1611년 창덕궁 보수가 완공되자 거처를 그곳으로 옮겼다. 그렇지만 광해군은 창덕궁에서 2개월간 살다가 다시 이곳으로 왔다. 이후로도 몇 번의 이동이 있었고 인목대비 폐위 후 이곳 경운궁에 유폐되면서 궁도 퇴락한다.
또 세월이 흘러 1896년 고종의 아관파천 이후 다시 궁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1897년 고종이 거처로 삼으면서 다시 전각이 건립됐고, 같은 해 대한제국 선포와 함께 이곳에서 황제즉위식을 하며 정궁이 됐다. 1907년 고종이 순종에게 양위한 뒤 이름을 ‘덕수궁’이라 하였다. 그러나 대한제국은 번성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궁도 다시 퇴락하며 수모를 겪는다.
◆석조전, 대한제국을 듣다
지난해 덕수궁은 또 한번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석조전 복원과 함께 관람 예약이 줄을 이었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받으며 관람인원을 제한하는 것이 다소 불편하게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왜 문화재 해설이 필요한지, 가 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그만큼 우리는 석조전과 대한제국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궁 안에 자리잡은 이 뜬금없는 서양식 건물이 어떻게 지어졌고 이 안에 살다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땠는지 듣다 보면 빠져들게 된다.
1897년 대한제국 선포 후 석조전 건립이 계획되고, 1900년 착공해 1910년 준공됐다. 영국인 하딩에 의해 설계됐는데 설계만 2년이 넘게 걸렸다. 그들은 조선인에게 낯설었을 이 괴상한 건물이 어떻게 지어질지를 이해시키기 위해 나무로 정교한 샘플을 만들어 보였다고 한다.
석조전은 그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신고전주의양식으로 지어졌다. 즉 그리스풍이다. 이런 형식은 조선의 궁으로써 더 낯설게 느껴진다. 중화전 옆에 그리스식 건물이라니…
어쨌든 석조전은 용도에 따라 크게 세부분으로 나뉜다. 1층은 접견실, 대식당 등의 공적 공간이고 2층은 황제의 침실, 서재 등 사적 공간이다. 그리고 지층은 시종들이 생활하던 곳이다. 1층에 들어가면 로비가 있고 접견실이 있는데 그 모습이 상당히 화려하다. 속고만 살아온 도시인들은 ‘이거 진짜야? 호텔 로비 같은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들 수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사실과 매우 근접하다. 복원은 그 당시 신문, 잡지 등의 기사와 그림 등을 바탕으로 이뤄졌고, 박물관 수장고에 방치돼 있던 유물들을 자료에 의거해 원래 있던 곳에 가져다 놓았다.
각 방에는 ‘의심쟁이’들을 위해 복원의 근거가 된 자료 사진들을 함께 게시했다. 황제와 황후의 침실은 감히 기사로 나지 않았으니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었다. 그런데 그 당시 가구를 납품했던 영국의 메이플사가 카탈로그에 석조전 침실 자료를 내보였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침실까지 복원이 이뤘졌다. 그렇다고 상궁이나 시종이 지내던 방까지 기사에 나왔을 리가 없다. 그런 방들은 억지로 꾸며놓지 않았다. 박물관으로써 전시실로 꾸며 놓았다.
고종이 계획한 건물에 정작 당신은 기거한 적이 없다. 순종이 일본에서 방문할 때 임시 거처로 사용했을 뿐이다. 1933년 이후에는 미술관, 국제회의장, 박물관 등으로 사용되다 지난해 원래의 모습을 복원하며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이와 함께 잊혀졌던 대한제국의 역사를 들어 볼 구실이 생겼다. 고종은 나라를 빼앗긴 무능한 왕이 아니었다. 고군분투했던 대한제국 황제의 이야기를 석조전에 가면 들을 수 있다.
[여행 정보]
● 덕수궁은 시청 앞에 위치해 별도의 주차시설이 없으므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대중교통
지하철 시청역 - 2번 출구
시내버스 시청앞 하차
2015년 7월 중 고궁, 왕릉 입장 무료
기간: 7월 1일 (수) ~ 7월 31일 (금)
대상기관: 서울시내 4대궁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종묘, 조선왕릉(여주 영릉 포함)
덕수궁
문의: 02-771-9951 / http://www.deoksugung.go.kr /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덕수궁
매표 및 입장시간: 오전 9시 ~ 오후 8시 (매주 월요일 휴관)
입장요금: 대인 1000원 / 24세 이하 청소년, 65세이상 어르신, 장애인, 국가유공자 등 무료
5대궁 통합관람권: 대인 1만원(구매일로부터 3개월간 사용 가능)
상시관람권: 대인 1만원(구매일로부터 1개월간 해당 궁 무료 입장)
덕수궁 해설: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11회 운영 (국어, 영어, 중국어, 일어 - 시간 및 자세한 사항은 사이트 확인)
석조전 관람: 지층을 제외한 1,2층은 인터넷 예약으로만 입장할 수 있으며 65세 이상 어르신과 외국인은 매회 예약 없이 선착순 입장 가능.(평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총 10회, 주말 총 14회 운영)
특별관람 - 주제가 있는 해설은 2개월 마다 다른 주제로 진행된다.(특별관람 오전 9시 30분, 오후 3시 / 7,8월 주제: 석조전과 황실사람들)
● 음식
돌담길: 덕수궁 안에 있는 카페이자 기념품 판매점이다. 연못 앞에 위치하고 있어 덕수궁의 운치를 느끼며 차 한잔을 맛볼 수 있다.
아메리카노 3000원 / 유자차 4000원 / 옛날팥빙수 5000원
진주회관: 콩국수로 유명한 식당으로, 점심시간이면 여름보양식을 찾는 직장인들로 일찍부터 긴 줄을 선다. 다른 메뉴도 있지만 점심시간에는 콩국수 주문만 가능하다.
콩국수 10,000원
문의: 02-753-5388 /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1길 26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