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배려석./사진=머니투데이

지난주 금요일 퇴근길 지하철 1호선에는 직장인과 학생들로 북적였다. 발 디딜 틈도 없는 공간에서도 단 한자리는 비어있었다. 기자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임산부 배려석에는 여전히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입니다’는 문구가 빛나고 있었다.
다음 칸을 가봤다. 전 칸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인파가 몰려있었지만 두자리 중 한곳은 비어있었다. 한자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둘려 쌓여 꿋꿋이 내일의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었고 나머지 자리에 앉아 있던 시민은 누가 봐도 임산부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다른 칸은 어떨까. 궁금한 마음에 발을 뗐다가 이내 마음을 접었다. 이미 많은 기사에서 부족한 시민의식을 꾸짖고 있었고 강제가 섞인 배려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서울지하철 1호선. 두 사진은 같은 칸, 많은 시민들이 있지만 임산부 배려석은 비워져있다./사진=심혁주 기자

이날 임산부 배려석 앞에 서있던 직장인 김모씨(30대·남)는 “임산부 배려석이라 자리를 비워뒀다. 굳이 앉고 싶지 않다. 만약 저기 앉으면 괜히 눈치가 보일 거 같다”며 “평소에도 노약자석이나 저 자리(임산부 배려석)는 앉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는 2013년부터 ‘임산부 배려석’을 도입했다. 1~8호선 객차 한칸당 2좌석으로 총 7140석을 배려석으로 지정했다. 임산부 역시 교통약자임에도 노약자석은 노인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식 때문에 별도로 좌석을 지정한 것이다. 그럼에도 칸의 양 끝에 위치한 노약자석과 달리 승객이 모이는 중앙에 자리한 임산부 배려석은 ‘비워두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6년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임산부의 10명 중 6명만이 ‘임산부로 배려를 받은 적 있다’고 답했다. 임산부가 받은 배려는 주로 좌석양보(59.4%), 근무시간 등 업무량 조절(11.5%) 등이었다. 6명의 60%즉 10명 중 3.6명이 좌석양보를 받은 적 있다고 답한 것이다. 일반인들은 임산부를 배려하지 못한 이유로 10명 중 7명 이상이 ‘임산부인지 몰라서, 방법을 몰라서’라고 답했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있는 시민./사진=심혁주 기자

◆ "임산부 오면 양보" vs "아예 비워둬야"
임산부배려석을 임산부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배려시점’에 대해선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크게 두가지 주장으로 갈린다. 한쪽은 ‘자리에 앉아 있다가 임산부가 탑승하면 양보하면 된다’는 의견으로 자리를 계속 비워두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논리다. 다른쪽은 ‘무조건 비워둬야 한다’고 말한다. 초기임산부는 구별이 힘들뿐만 아니라 누가 자리에 앉아 있으면 임산부들이 양보받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12월 자신을 철도 공무원이라고 밝힌 A씨는 자신의 SNS에 “임산부 배려석에 남자만 앉아만 있으면 민원을 넣는 이상한 사람이 늘고 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신고가 들어와) CCTV로 보면 텅텅 비어있고 물론 다른 자리도 많이 있는데 남자가 그 자리에 앉았다고 해서 폭탄 문자를 보내는 사람이 갑자기 늘었다”라고 밝혔다.

A씨는 “여성들이 앉았을 경우에는 문자가 하나도 안 오는건 왜일까”라면서 “듣자하니 이상한 여성사이트들의 단체문자 활동 소행이라고 하던데 정말 화가 난다”고 분노를 표했다.

‘임산부배려석에 일반승객이 앉아있다’는 관련 민원은 지난해 12월 1236건에서 올해 5월27일 기준 4674건으로 크게 늘었다. 다만 민원이 들어온다고 해서 공사 측이 특별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교통공사 민원센터 관계자는 “임산부배려석 관련 민원이 들어오면 해당 지하철 전체 안내방송을 통해 ‘임산부배려 캠페인’을 시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왼쪽부터 임산부 배려석, 임산부 배지.사진=심혁주 기자, 뉴시스

“임산초기 임산부는 일반인과 구별이 힘든데 어떻게 구별하고 자리를 비켜주겠나.”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둬야 한다는 측의 주장은 이렇다. 겉으로 티가 많이 나지 않는 임신 초기 임산부들은 말도 못하고 그대로 서서 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

앞서 보건복지부에서 조사한 결과 일반인들이 임산부를 배려하지 못한 이유로 10명 중 7명 이상이 ‘임산부인지 몰라서, 방법을 몰라서’로 꼽았다. 이들이 규정하는 임산부가 배가 불러온 임산부라면 많은 초기 임산부들은 배려 밖으로 내쳐질 수밖에 없다. 

한 산부인과 의사는 “임산부는 초기와 말기에 조심해야 한다. 초기에는 (임신)안정기에 접어들기 전이므로 특히 조심해야 하고 말기에는 중심을 잡는 것 자체가 힘들기 때문에 안정을 취해야 한다. 그래서 보통 임신부가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하면 중기에 가라고 말한다”고 설명했다.

대전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에 놓여진 인형./사진=대전도시철도공사 제공

◆의무 아닌 배려지만… '부드러운 개입' 필요
사실 임산부 배려석은 말그대로 ‘배려석‘이지 의무석이 아니기 때문에 그곳에 앉는다고 강제적으로 끌어낼 수는 없다. 온전히 시민의식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다만 강압이 아닌 부드러운 개입으로 시민들이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게 유도하는 것은 가능하다. 부산광역시와 대전광역시에서 시행하고 있는 임산부 수신기, 배려석 인형이 정부가 할 수 있는 적절한 개입 중 하나다.

부산시는 무선발신기를 가진 임산부가 지하철에 타면 좌석에 달린 수신기에서 신호를 받아 핑크빛 불빛이 깜박이는 좌석을 도입했다. 이는 배려시점을 둘러싼 논쟁에서 양측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해결방법이다. ‘임산부인지 몰라서, 다른 일에 집중하느라‘ 양보하지 못한 시민들, 초기임산부, 양보요청이 민망한 모든 임산부들에게도 좋은 정책이 될 수 있다.

반면 대전시는 사소한 개입으로 변화를 이끌어냈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으려면 자리에 있던 배려석 인형을 치워야하는데 인형을 치우고 앉기 민망해 자연스럽게 자리를 비워두게 되는 시스템이다.

대전도시철도공사 관계자는 “지난해 배려석 인형을 시행했는데 시민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실제로 임산부 관련 민원이 줄었고 칭찬민원도 가끔 올라온다”며 “사실 시행 초기에는 인형 분실문제가 극소수로 발생했지만 지금은 (분실사고는) 거의 없고 잘 시행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