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어떻게 식민지배와 6·25전쟁으로 인한 자산파괴를 단기간에 극복하고 세계 10대 경제대국과 민주화를 달성했을까. 삼성전자는 어떻게 반도체와 휴대폰에서 세계 1위가 됐고 방탄소년단은 어떻게 빌보드차트 1위에 올라 K-Pop 열풍을 전 세계로 확산시켰을까.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한 것으로 당연시됐던 일이 기적처럼 현실이 되는 배경엔 무엇이 있을까. ‘홍찬선의 패치워크 인문학’에선 그런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던 우리의 인문학적 바탕을 찾아본다. -편집자-
“일본 정부는 징용공(徵用工)이란 표현이 아니라 구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문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아베 신조 일본총리는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그동안 일본 정부가 사용하던 ‘징용공’(징용노동자)이란 용어 대신 불쑥 ‘옛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라는 새로운 말을 꺼냈다. 한국 대법원이 지난달 30일 “신일철주금(옛 일본제철)은 한국인 징용피해자 4명에게 각각 1억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한 데 대한 방어논리다.
아베 총리의 말은 일본이 대한제국을 군사력으로 불법적이고 강제적으로 점령한 뒤 한국 사람을 강제징용으로 끌고 갔다는 역사적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다. 당시 일제의 <국가총동원법 국민징용령>에는 ‘모집, 관청의 알선, 징용’이 있었는데 이번 소송에 참여한 한국인은 ‘모집에 응한 노동자’라며 ‘징용’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과연 그럴까.
◆징용이란 천자가 불러다 쓰는 것
징용이란 말은 <서경> ‘순전편’ 28장에 나온다. “순 임금이 나이 서른에 요 임금의 징용을 받아 쓰이고 삼십년 동안 섭정에 있다 제위를 물려받아 50년 동안 천자로 다스리고 돌아가셨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따라서 징용의 본래 뜻은 덕과 능력을 갖춰 천자의 부름을 받을 정도로 영광스러운 일이며 천자는 징용으로 선발한 인재에게 높은 자리(貴)와 많은 경제적 보상(富)을 해줬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제국주의 정부는 이런 뜻을 가진 ‘징용’을 악용했다. “일본이 미국·중국과 전쟁하느라 전쟁물자와 인력이 부족해 천왕이 조선사람을 부르니 영광스럽게 생각해 따르라”며 강제와 사기를 동원, 한국인을 징용한 것이다. ‘황국신민’이니 천왕의 부름에 당연히 응해 일하는 의무만 강조했을 뿐 징용에 따라야 하는 부귀는 고사하고 임금마저 거의 주지 않았다.
일본 정부도 이런 ‘징용’을 사실로 인정해 그동안 ‘강제로 끌고 온 한국인’을 ‘징용공’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번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징용’이란 용어를 계속 사용할 경우 자신들에게 불리할 것으로 판단, ‘옛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라는 해괴망칙한 말을 만들었다. 역사 왜곡과 역사 지우기에 조직적으로 나선 것이다.
한반도 대신 ‘조선반도’라는 말을 굳이 쓴 것도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을 은근슬쩍 강조하기 위한 꼼수는 아니었을까. 일제는 대한제국을 강제로 점령한 뒤 ‘대한’이라는 말을 쓰지 못하도록 하고 이미 없어진 ‘조선’을 되살림으로써 대한제국 지우기에 나섰던 행태를 되풀이한다.
◆배상은 1965년 다 마쳤다?
아베 총리의 이런 말 바꾸기 자체가 일본의 배상책임을 인정한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아베 수상의 ‘옛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라는 출처불명의 망언과 함께 “일본이 더 이상 보상피해 책임이 없다”고 말한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맺은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지급한 경제원조에 이미 (강제 징용 피해자) 보상이 포함됐다”고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거듭 주장했다.
아베 총리와 고노 외무상의 이런 말을 보면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떠오른다. 알다시피 아돌프 아이히만은 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대규모 유태인 학살을 자행한 핵심전범이다. 아이히만은 전쟁이 끝난 뒤 아르헨티나로 도망갔다가 1960년 5월11일 이스라엘로 끌려와 재판받은 뒤 교수형에 처해졌다. 문제는 그가 재판과정에서 한 말이다. 그는 “여러 범죄들을 교사하기는 했지만 살인행위를 직접 행한 적이 없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아이히만 재판과정을 모두 참관한 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라는 책을 쓴 한나 아렌트는 잘못된 일을 저질렀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은 채 유태인 학살 같은 있어서는 안 될 나쁜 일을 태연하게 저지르는 ‘악의 평범성’을 고발했다. 일본은 일제강점기 때 한국사람을 ‘징용’으로 미화하며 강제로 끌어다 전쟁터에서 죽게 하고 탄광공장 등에서 강제로 노동을 시키면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 것, 게다가 그런 일을 저지르고서도 그런 일에 대해 사과하기는커녕 정부가 나서 조직적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악의 평범성’을 자행했다고 할 수 있다.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
‘악의 평범성’에 취한 사람에게는 강한 충격이 필요하다. 불행하게도 일본은 전범으로서 문책당하기 전에 6·25전쟁이 일어나며 ‘사과와 책임’에서 해방됐다. 미국에 달라붙은 일본은 오히려 그들이 저지른 역사적 과오를 은폐하고 왜곡했다.
한국의 ‘한글전용’과 ‘일제강점기 역사 제대로 가르치지 않기’는 일본의 이런 역사은폐와 왜곡을 도와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글사랑’을 내세워 한자를 가르치지 않음으로써 한자로 된 우리 역사, 특히 한문으로 된 일제강점기 자료를 볼 수 없게 만들었다. ‘徵用工’을 ‘옛 조선반도출신 노동자’라고 바꿔 불러도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전혀 감도 못잡는 실정이다.
가해자인 일본은 한자와 한글을 모두 익혀 우리 역사를 빤히 들여다보며 마음대로 왜곡하는데도 우리는 한자와 일본어를 모르니 앉아서 당하고 억울하다며 소리만 지른다. 그것도 일시적으로….
자기 조상이 싸놓은 똥을 치우지 않고 가리려고만 해서는 그 똥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일본인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이 잘못하고 있다’고 억지를 쓰는 것은 한국을 제대로 깔보는 것이다.
한국 정부와 역사학자, 언론인과 국민은 일제강점기 때 징용·징병을 선동했던 일본 신문보도와 정부자료를 찾아 제시해야 한다. 별로 어렵지도 않다. 반드시 해야 할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악의 평범성’에 사로잡혀 사는 것일 수 있다. 목소리만 높이는 것에 그친다면 두려움을 숨기려고 짖어대는 강아지처럼 일본의 얕보기에 계속 당할 수밖에 없다.
옛 것과 과거 여러 사례를 제대로 알아야 새로운 상황을 정확히 알고 올바로 대처할 수 있다. 바로 온고지신과 패치워크(짜깁기)가 필요한 이유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사람을 도울 뿐이다. 노력하지 않는데 도와주는 하늘은 그 어디에도 없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66호(2018년 11월14~20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