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맞벌이 직장맘 김유리씨는 올 설부터 새로운 시도를 하기로 가족과 합의했다.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차례음식 대신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사와서 나눠먹으며 명절을 보내는 것이다. "그래도 전통은 따라야지"라며 반대하던 시부모님도 맞벌이하느라 명절노동이 고되다는 자식들의 뜻을 꺾을 수가 없었다.
#. 형제 네명과 자식·조카 일곱명, 각자 배우자와 부모님까지 모이면 열여섯명 대가족인 김씨는 최근 형제들이 상의해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설 차례를 폐지하고 제주도로 2박3일 가족여행을 가기로 한 것이다. 차례 지내는 비용으로 비행기표와 호텔을 예약하고 맛있는 음식을 사먹으려 보낼 생각에 김씨는 결혼 후 처음으로 명절이 기다려졌다.
| /사진=머니투데이 |
설·추석 명절의 집안일이 '명절노동'이라 불린지 오래다. 온종일 가족들 세끼를 차리고 치우다가 연휴가 다 지나가버리고 직장인에게는 1년에 두번 있는 장기휴가가 고된 노동으로 스트레스만 주는 분위기다.
이런 이유로 최근 몇년 사이 차례문화가 확 바뀌었다. 맞벌이부부가 대다수인 도시생활자들은 평소 편리하게 이용하던 외식생활 대신 불필요하게 많은 음식을 만들고 버리는 것 역시 낭비로 느껴진다.
지난 추석 연휴에는 '명절을 없애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현대사회 들어 차례나 제사의 의미가 퇴색했는데도 음식의 종류와 만드는 방식은 변화하지 않는 데다 만들고 치우기 바쁜 탓에 가족간의 화목한 대화는 커녕 불화마저 초래한다.
벼룩시장이 최근 직장인 115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62.8%는 '다가오는 설 연휴가 부담되고 스트레스다'라고 답했다. 명절이 싫은 가장 큰 이유는 '선물과 세뱃돈 등 경제적 부담'(47.2%), '음식 장만 등 집안일'(18.6%), '가족과 친지들의 잔소리'(18.6%) 등이다.
올해로 결혼 5년차인 직장맘 최솔이씨는 "가족들이 다같이 화합해 음식을 만들고 정리하면 힘들더라도 즐거울 수 있겠지만 여전히 가부장적인 집안문화 때문에 여성들은 일하고 남편 형제와 시아버지들은 일손을 돕지 않는 불평등이 명절갈등을 더 부추긴다"고 말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앞으로 세대교체가 진행될수록 지금의 명절문화가 차츰 사라지고 차례나 제사도 명맥만 유지하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30년 후에는 차례·제사가 아예 사라질 것으로 내다보는 사람도 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차례보다 가족간 정을 나누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차례상도 변화가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