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야구계의 큰 별이 졌다. 한국 선수의 해외 프로야구 진출을 개척하고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단일시즌 유일한 4할 타자로 남은 백인천 전 감독이 충남 천안 단국대학교병원에서 15일 오전 6시41분 별세했다. 향년 83세.
마지막까지 그다웠다. 전날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실려 왔고 한때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심폐소생술 끝에 맥박이 돌아왔고 중환자실에서 하루를 더 버텼다. 네 차례나 뇌경색으로 쓰러지고도 그때마다 다시 일어섰던 사람답게,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쉽게 놓지 않았다.
백 전 감독의 야구 인생에는 유독 '최초'와 '유일'이 따라붙는다. 한국에 프로야구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 일본 무대에 진출해 타격왕에 올랐고,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돌아와 감독과 선수를 겸하며 지금까지 누구도 넘지 못한 0.412를 남겼다.
도전은 1962년 시작됐다. 농업은행에서 뛰던 스무 살의 그는 일본프로야구 도에이 플라이어스와 계약했다. 한일 국교 정상화 이전이었다. 돌아갈 리그도, 앞서간 선배도 없는 길이었다. 그 길에서 19시즌을 버텼다. 1969경기에 출전해 1831안타, 209홈런, 212도루를 남겼고 1975년 다이헤이요 클럽 라이온스에서 타율 0.319로 퍼시픽리그 타격왕에 올랐다. 한국 야구가 아직 프로리그조차 갖추지 못했던 시절 일본 최고 무대에서 정상급 타자로 인정받았다.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일본에서 보냈다는 이력은 그가 한국 야구와 멀리 있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국내에 프로 무대가 생기기 전, 더 큰 리그에서 살아남아 한국 야구인의 가능성을 먼저 증명한 시간이었다.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 그는 MBC 청룡의 초대 감독 겸 선수로 돌아왔다. 40세를 앞둔 나이에 71경기에서 250타수 103안타를 때려 타율 0.412를 기록했다. 안타와 득점, 2루타에서도 리그 1위에 올랐다. 44년이 흐른 지금까지 KBO리그에서 한 시즌을 4할 이상으로 마친 타자는 그가 유일하다.
0.412의 의미는 기록에만 있지 않다. 백 전 감독은 자서전에서 당시 "프로야구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취지로 회고했다. 일본에서 20년 가까이 쌓은 경험을 갓 출범한 리그에 그대로 쏟아부었고 그가 보여준 야구는 한국 프로야구의 기준이 됐다.
지도자로서도 이정표를 세웠다. 1990년 LG 트윈스 초대 사령탑을 맡아 창단 첫해 정규시즌 1위와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삼성 라이온즈 감독 시절에는 이승엽에게 외다리 타법을 전수했다. 훗날 KBO리그 통산 467홈런을 친 타자의 출발점에도 그의 손이 닿아 있었다.
젊은 야구팬들에게 백인천은 밈으로 익숙하다. '요시 그란도 시즌'. 2008년 일본 프로야구 중계에서 나온 여섯 글자다. 그해 이승엽은 심각한 부진에 2군까지 다녀왔다. 뒤늦게 터진 시즌 첫 안타가 홈런이었다. 타구가 담장을 향하자 해설석의 백인천은 "갔어, 갔어"를 거듭 외쳤고 공이 넘어가는 순간 그가 뱉은 말이 사람들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실제로는 "역시, 하나 둘 셋이야"였다는 해석도 있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그는 생전에 답하지 않았고 이제 물어볼 사람도 없다.
그러나 그 장면은 밈으로만 기억되지 않는다. 영상에 담긴 것은 노야구인의 어눌한 감탄이 아니었다. 깊은 부진에서 빠져나온 제자의 홈런을 누구보다 애타게 기다렸던 스승의 기쁨이었다. 정제된 해설보다 먼저 터져 나온 환호였기에 오래 남았다. 이후 누리꾼들은 간절히 바랐던 무언가가 터질 때마다 '요시 그란도 시즌'을 외쳤다.

백 전 감독은 '노력자애'(努力自愛)를 좌우명으로 삼았다. 스스로 노력하는 일을 사랑해야 고통을 이겨내고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스무 살에 혼자 건넜던 현해탄도, 40세를 앞두고 세운 4할도, 네 번 쓰러지고 네 번 일어섰던 투병도 결국 같은 말로 설명된다.
KBO는 고인의 장례를 KBO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지난해 별세한 이용일 전 KBO 총재 직무대행에 이어 두 번째다. 빈소는 천안 단국대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7일 오전 8시다. 백 전 감독이 세상을 떠나면서 프로야구 원년 6개 구단 초대 사령탑 가운데 박영길 전 롯데 감독만 남았다.
언젠가 0.412라는 숫자는 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처음 걸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한국 야구의 한 시대를 만들었던 백인천은 그렇게 자신의 긴 야구 인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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