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 /사진=KBS 2TV '대화의 희열2' 방송화면 캡처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 /사진=KBS 2TV '대화의 희열2' 방송화면 캡처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자신의 사업 인생에 대해 털어놨다. 대학교 1학년 때 첫사업을 성공시킨 것부터 시작해 17억 빚을 졌다가 재기하기까지 과정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 했다.
백종원은 2일 밤 10시45분 첫방송된 KBS 2TV '대화의 희열2'의 '꿈의 맛' 편에 출연했다. 그는 어린 시절 사업가 기질이 있었다. 사과 재배보다 손이 많이 안가는 표고버섯 장사를 생각하는 등 돈의 흐름에서 최고의 효율점을 찾아내는 재능을 보였다. 초등학교 때는 소풍에서 리어카 6대 분량의 공병을 수거해 방위성금으로 기부했다고 말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장사에 대한 철학을 갖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졸업 후 시작한 첫아르바이트에서다. 당시 그는 타고난 수완으로 차에 대한 정보를 모두 외워 2주 만에 중고차 6대를 팔았지만 운행 거리와 사고 유무가 조작된 차량인 줄 모르고 판매했다는 이유로 고객에게 뺨을 맞았다. 백종원은 "장사에 대한 책임, 소비자에 대한 책임, 제품에 대한 자신감, 소비자 신뢰 회복, 장사 철학이 처음 생겼다"고 회상했다.


이후 백종원은 본격적으로 상권과 사업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포장 배달이 갓 생겨난 대학교 1학년 때 그는 서울 압구정동 아파트단지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백종원은 배달 아이디어를 생각해내 직접 전단지를 작성하고 아파트에 돌렸다. 200장의 전단지를 돌리고 나니 주문이 폭주했다. 백종원은 "내가 떠올린 전략에 반응이 온 게 쿵쾅거리더라. 그런 게 장사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이후 할머니가 백종원에게 가게를 맡겼고 호프집 운영 수익으로 가게를 인수해 장사를 성공시켰다.

백종원은 1993년 친구의 제안으로 인테리어사업과 쌈밥집사업을 동시에 운영했다. 쌈장부터 대패 삼겹살, 볶음밥을 개발해 쌈밥집이 자리를 잡았지만 백종원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목조주택 건축자재 독점수입건을 제안받아 건설회사를 개업했다. 그러다 IMF로 인해 자재비가 상승하자 위기를 맞았고 어음으로 인건비를 막는 상황까지 갔다. 일수에 손을 대면서 17억의 빚까지 지게 됐다.

백종원은 "어음으로 인건비를 지급했고 은행 대출로 해결하려 했는데 불가했다. 약속 날짜는 다가오는데 도저히 돈이 나올 구멍이 없었다. 이 어음이 기업 상대였으면 부도를 고민했을 텐데 개인한테 가는 거 아니냐"며 "채권자들 놓고 쌈밥집에서 무릎 꿇고 '이 식당 하나 남았는데 나눠가져도 얼마 안된다'면서 '기회를 준다면 이 식당으로 일어나서 꼭 갚겠다. 자신 있다'고 했다. 만장일치로 어음을 연장했다. 급한 건 일수로 막았고 빚이 17억이 됐다. 그때 일은 못 잊는다. 제일 창피했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고 낙폭이 정말 컸다"고 털어놨다.


백종원은 "극단적 생각을 했다던데"라는 유희열의 질문에 "하면 안되지만 했었다. 금전적으로 힘든 것보다 자존심이 상처를 입었다"며 "직원들을 잘 챙겼다고 생각했는데 아끼는 친구들이 와서 얼굴 바꿀 때 모멸감을 느꼈다. 물론 내가 잘못했지만 정말 많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집안의 도움을 받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시골에서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건 맞고 증조부가 만석꾼에 조부가 사립학교를 운영했다"면서도 "많은 분들이 집이 여유로워서 도움을 받았을 거라고 하는데 집에서 외식업을 너무 반대했다. 아버지는 내가 망한 줄도 몰랐다. 사업한 것도 독립하고 싶어서고 자존심이 세서 빌릴 생각도 안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백종원이 새로 시작한 사업은 포장마차사업이었다. 새벽 4시 시장에서 장을 보고 오전 6시 음식 준비를 하며 하루 4시간 밖에 자지 못하는 날이 2년간 이어졌다. 또 서빙부터 장보기 요리까지 혼자 다 해내야 했지만 "사업이 내 생각대로 돌아가니까 재미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그 이후 이자를 감당하기 시작했다. 부를 누려서 행복한 게 아니라 이자 감당하기 시작하니까 행복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