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일 케이벨로에서 만난 김도형 트레이닝센터장. /사진=박정웅 기자 |
최근 엘리트와 생활 체육을 통합해 이제는 즐기는 스포츠로서 저변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은 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비선수 출신이 ‘업’으로서 관행의 ‘벽’을 넘는다는 것은 ‘바위에 계란치기’ 격이었다. 마치 여성이 ‘유리천정’을 깨는 것처럼.
그럼에도 사이클에서 벽을 깬 이가 있다. 바로 김도형(33) 케이벨로 트레이닝센터장이 그 주인공이다. 11일 서울 강동구 케이벨로빌딩에서 김 센터장의 ‘입지전’적인 얘기를 들어봤다.
김 센터장은 이십대 중반에 사이클에 입문했다. 생애 첫 팀은 국내도 아닌 해외 팀이었다. 2011년부터 2년 동안 말레이시아의 트렝가누 프로사이클팀에서 활약한 것. 연습생(테스트 라이더) 기간을 거쳐 듬직한 올라운더로 팀원들과 도로를 누볐다. 그 결과, 팀을 아시아 랭킹 상위권에 올려놨다.
김 센터장의 ‘두 바퀴’ 인연은 비선수 출신치고는 상당하다. 또한 드라마틱하다. 사실 그의 친형(김태형)은 사이클 선수 출신이다. 서울체고와 한국체대를 졸업했다. 도로(도로사이클)에서 굵은 성적을 거둔 박성백이 그의 형과 선후배 사이란다.
◆박성백이 깨운 도로사이클의 ‘참맛’
이런 인연이라면 김 센터장은 사이클 쪽에 진작 한쪽 다리라도 걸쳐놨을 법했다. 하지만 당시 잘 나가던 형과 그의 후배의 경기를 ‘강 건너 불 보듯’ 했단다. 또 남들 다 한다는 자전거 동호회 활동도 없었다. 그런 그가 업으로 사이클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이야 미지근한 게 당연지사.
실은 형처럼 그 또한 자전거 ‘유전자’를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2004년 집에 있던 ‘투르 드 홋카이도’ 영상을 우연히 봤던 게 ‘화근(?)’이었다. 영상이 허벅지 근육에 불을 댕긴 것. 동네 형처럼 지낸 박성백의 우승 장면에 말문이 막히고 숨이 멎었다는 얘기다.
“신세계였습니다.” 관심에도 없던 자전거를 왜 시작했냐는 질문에 그의 대답은 의외로 짧았다. 그는 “심장이 뛰었다”면서 “그동안 봤던 트랙 경기와는 ‘차원’이 달랐다”고 했다. 역동적인 도로 경기가 그를 사이클 안장에 오르게 한 것.
군 제대 후 사이클에 대한 욕망은 더욱 커졌다. 일반 직장을 다니면서 짬짬이 사이클을 탔다. 즐기는 것을 맘껏 해보겠다는 다짐까지 세웠다. “자전거를 타고 싶으면 동호회에서 타면 될 것이지 굳이 왜 선수냐”라는 핀잔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또 “즐기는 것을 이길 수 없을 거”라는 응원도 있었다.
“‘한번뿐인 인생, 한번 해보고 싶은 것을 해보자’ 이런 생각이 강했어요. ‘해보는 것’도 어설프게 하지 말고 제대로 해보자 라는 각오도 있었고요.”
◆후쿠시마와의 인연, 그리고 선수생활
김 센터장을 안장에 올린 이가 박성백이다면 그를 선수 세계로 이끈 건 일본인이다. 2000년대 박성백과 아시아 도로를 주름잡은 후쿠시마 신이치가 그의 두 번째 인연이다. 첫 프로팀 입단을 위해 말레이시아를 건너 간 것도 후쿠시마의 ‘콜’이 있었기 때문이다.
후쿠시마는 동아시아 선수로만 구성된 단일팀으로 유럽 무대에 진출하는 구상을 짠 것. 아시아 사이클로 ‘넘사벽’인 유럽을 넘겠다는 뜻이다. 박성백은 경쟁자이면서 동료인 후쿠시마에게 김 센터장의 ‘무모한 도전’ 소식을 전했다.
“후쿠시마는 당시 일본의 베테랑이었지만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에 도전하는 그의 정신은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후쿠시마와의 인연으로 마침내 그는 국제사이클연맹(UCI) 등록 선수가 됐다. 말레이시아에서 후쿠시마와 2년을 함께 달렸다. 2013년 후쿠시마의 소개로 일본 무대로 이적했다. 기존 팀보다 기량이 한수 뛰어난 팀이었다.
“후쿠시마는 역시나 의욕이 넘쳐요. 유럽의 한 팀에서 코치로 활동하면서 아시아의 젊은 선수를 발굴하고 있어요. 저보다 띠 동갑 이상의 나이지만 대단한 선배입니다. 유럽 무대에 진출할 아시아 팀 빌딩은 언젠가 빛을 발하겠죠.”
| 인연으로부터 받은 경험을 되돌리는 사이클 인생 2막을 시작한 김 센터장. /사진=박정웅 기자 |
◆받은 도움 되돌리는 사이클 인생 2막
김 센터장은 3년간의 해외 활동을 마친 뒤 5년간(국민체육진흥공단, 서울시청, 코레일) 국내 무대도 밟았다. 지난해에는 선수 ‘안장’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유럽의 사이클 채널을 보면 또 심장이 크게 뛴다고 한다.
“어렵게 시작한 선수생활, 그리고 8년간의 활동에서 느낀 점은 많습니다. 예기치 못한 부상에 선수 활동을 접는 경우도 있고요. 어렸을 때부터 삶의 절반 이상을 사이클에 쏟았는데…. 안타까운 면도 많이 봤죠.”
안장에서 스스로 내려온 뒤 공부에 매진했다. 재활, 부상 후 대처, 컨디션 관리. 배울 것도 많았다. 대학교 세미나나 스포츠 재활 클리닉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이제 그의 ‘사이클 2막’은 보다 즐거운 ‘두 바퀴’ 문화에 꽂혔다.
현재 그는 케이벨로 회원이나 사이클 후배, 동호인에게 경험을 나눈다. 피팅, 사이클링, 영양, 스트레칭, 재활훈련, 통증관리 등 안장에 타고 오르는 모든 궁금증을 풀어준다. 좋아서 한 사이클, 그리고 필요해서 공부한 내용이다 보니 교육 반응이 좋을 수밖에.
“어설픈 경험만으로 티칭을 할 순 없죠. 스스로 좋아했고 또한 절실했던 것, 그 경험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이 저의 사이클 인생 2막입니다. 박성백과 후쿠시마 선수한테서 받은 선물을 이제야 되돌려주는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