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사건. 사진은 제68주년 4.3 희생자 추념식. /사진=뉴스1
제주 4.3사건. 사진은 제68주년 4.3 희생자 추념식. /사진=뉴스1

오늘(3일)은 제주 4·3 사건이 일어난 지 71년 되는 날이다.
제주 4·3 사건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를 계기로 제주에서 무장봉기가 시작되자 이승만 정권이 이를 '북한의 사주를 받은 폭동'이라며 무자비한 토벌을 벌인 사건이다. 이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6·25 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컸던 비극적 사건으로 기록됐다.

1948년 4월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는 경찰과 서청의 탄압중지,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 등을 요구하며 경찰지서와 서북청년단 등을 습격했다. 그러나 당시 미 군정 경무부는 이를 공산계열 분자들의 만행이라고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제주도는 같은해 5월10일 열린 선거를 거부했다. 그러자 정부는 그해 10월 제주도 경비사령부를 설치해 본격적인 진압작전에 나섰다. 

특히 정부는 이후 11월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1954년 9월까지 대규모 진압작전을 벌여 수많은 양민을 학살했다. 희생된 주민은 2만5000~3만명 가량으로 추정된다.

이후 수십년간 제주 4·3사건 '폭동'으로 불렸으나 1980년대 후반부터 시민사회단체와 학계를 중심으로 이를 민중항쟁, 민주화 운동으로 규정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이에 2000년 ‘제주 4 · 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출범해 본격적인 진상조사가 시작됐다.


2003년 5월 진상규명위는 진상보고서를 내고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 반대와 연계된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가 있었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하게 주민들이 희생됐다”고 발표했다.

이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같은 해 10월 4·3사건과 관련해 사건 발생 후 처음으로 국가 차원의 잘못을 공식 사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