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현·만석보터, 125년 전 ‘혁명의 그날’ 생생
| 김명관 고택과 뒤뜰에 곱게 핀 영산홍. /사진=박정웅 기자 |
전봉준 동상은 지난해 4월24일 녹두장군의 순국 123주년을 기념해 세워졌다. 이 자리는 1895년 전봉준이 구금됐다가 처형된 전옥서(한성부 중부 서린방)터다. 동상과 가까운 곳에는 또 다른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있었다. 2015년 11월 남도의 한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스러졌다.
|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 소개된 전봉준(왼쪽), 손화중, 김개남 장군. /사진=박정웅 기자 |
<녹두꽃>은 한국 드라마에선 드물게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해 화제를 모았다. 더구나 올 초 동학농민혁명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돼 녹두장군과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5월11일은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이다. 전봉준의 동학농민군이 1894년 5월11일(음력 4월7일) 전북 정읍의 황토현에서 조선 정규군(전라감영군)에게 크게 승리한 것을 기념한다.
|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의 말목장터 감나무와 탐방객들. /사진=박정웅 기자 |
◆정읍 황토현서 만난 전봉준
“들꽃들아/ 그날이 오면 닭 울 때/ 흰 무명띠 머리에 두르고 동진강 어귀에 모여/ 척왜척화 척왜척화 물결소리에/ 귀를 기울이라”(안도현의 <서울로 가는 전봉준> 일부)
| 동학농민혁명기념관(구관)의 전봉준 동상과 농민군 부조 조형물. /사진=박정웅 기자 |
오랫동안 황토현전적지로 소개된 곳은 동학농민혁명기념관구관 쪽이다. 박정희·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의 ‘유시’(諭示)로 갑오동학혁명기념탑과 기념관이 조성됐다. 아이러니한 것은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독재자의 뜻에서 동학이 세상의 빛을 본 점이다.
| 동학농민혁명기념관(구관)의 황토현전적지 정화기념비 뒷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이름이 훼손됐다. /사진=박정웅 기자 |
2004년 맞은편에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1894년 2월 고부군수 조병갑의 수탈과 학정에서 벗어나고자 말목장터에서 봉기한 이래 만석보 혁파, 황토현전투, 전주성 점령, 우금치전투 등 동학농민혁명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특히 1893년 11월 전봉준과 동학농민군 지도자들이 작성한 사발통문(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33호)이 눈에 띈다.
| 동학농민혁명의 기본 정신을 잇댄 3.1운동, 대한민국헌법을 설명하는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의 전시물. /사진=박정웅 기자 |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역사의 아이러니
동학농민혁명은 ‘민란’으로 폄훼됐다. 학계에 따르면 희생자수는 40만명에 이른다. 당시 조선 인구가 1800만명 수준이었다. 이후 ‘동학’이라는 두 글자는 오랫동안 금기어 취급을 받았다. 현대사를 관통한 ‘4·3’이나 ‘5·18’처럼 동학은 ‘난’에서 ‘운동’을 거쳐 ‘혁명’이 됐다.
| 고부봉기의 원인이 된 옛 만석보터 일대. 현재 보는 없어진 채 터(만석보유지비)만 남았다. /사진=정읍시 |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했는가. 1898년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이 사형선고를 받았다. 재판장은 조병직, 배석판사는 주석면과 조병갑이었다. 그 탐관오리 조병갑이 배석판사였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또 있다. 동학을 수면 위로 올린 두 전직 대통령에 앞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과 잇댄 얘기다. 이승만은 1946년 이른바 ‘정읍발언’에서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처음으로 공식 언급했다.
| 비가 오는 날씨에도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을 찾은 탐방객들. /사진=박정웅 기자 |
◆피향정, 반면교사의 두 얼굴
정읍 태인에는 피향정(披香亭)이 있다. 호남 제일의 정자를 자랑한다. 보물 제289호로 정면 5칸, 측면 4칸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이다. 신라 때 최치원이 태인현감으로 재임 중 세웠다고 전하나 초창연대는 알 수 없다.
| 피향정에서 바라본 하연지제. 여름에는 연꽃이 장관을 이룬다. /사진=박정웅 기자 |
피향정 뜰에는 선정비들이 줄지어 서있다. 그중 가장 왼쪽에 있는 게 고부군수 조병갑의 부친인 조규순의 영세불망비다. 고부군은 현재 정읍과 태인 일대를 아울렀다. 태인현감을 지낸 조규순은 덕을 웬만큼 베풀었다. 조병갑은 부친 선정비에 비각을 세우려고 고부군민으로부터 1000냥을 뜯었다고 한다.
| 피향정 뜰에 있는 조병갑 부친 조규순의 선정비(왼쪽). /사진=박정웅 기자 |
선정비 오른쪽에는 정반대의 인물을 기린다. 독립운동가인 일완 홍범식 선생이다. 1907년 태인군수(현감)으로 선정을 베푼 홍 선생은 “내 아들아 너희들은 어떻게 하든지 조선사람으로 의무와 도리를 다해 빼앗긴 나라를 기어이 되찾아야 한다. 죽을지언정 친일을 하지 말고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말아라”면서 경술국치 당일(1910년 8월29일) 자결한다. 벽초 홍명희가 그의 아들이다.
| 피향정 뒤편 사거리. 정석의거리 이정표가 눈에 띈다. /사진=박정웅 기자 |
◆정읍 여행팁
정읍시가 ‘2019~20 정읍방문의 해’를 선포했다. 정읍에는 동학농민혁명과 관련한 여행지 외에 다양한 여행명소가 있다. 우선 사시사철 한폭의 한국화를 만나는 고택을 눈여겨보자. 산외면의 김명관 고택이 그곳이다. 드라마 <녹두꽃>의 촬영지다. 극중 전주여각의 송자인(한예리 분)이 머문 고부임방이다. 국가 중요민속자료 제26호인 김명관 고택은 1784년(정조 8년)에 건립한 주택으로 일명 아흔아홉칸집이다. 현재는 여든여덟칸이 남았다.
| 드라마 '녹두꽃'에서 고부임방 촬영지로 등장한 김명관 고택. /사진=박정웅 기자 |
| 무성서원 병오창의기적비를 둘러보는 탐방객들. /사진=박정웅 기자 |
정읍 시내에는 쌍화차거리가 있다. 정읍경찰서 맞은편에 있다. 유치장 면회객 등 경찰서 민원인 대기공간으로 쌍화차집이 있었는데 장사가 잘 돼 여러 집이 생겼다고 한다. 강릉의 카페거리처럼 음료를 매개로 한 정읍의 특화거리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91호(2019년 5월7~13일)에 실린 기사입니다.